잘못 들어선 길은 없다, 다만 길이 네 개일뿐
아침 6시 30분. 알람이 울리면 나는 잠 대신 네 개의 길을 본다.
첫 번째 길은 시래기 삶은 냄새로 시작되는 길이다. 마스크와 위생모를 쓰고, 하루 종일 곱창과 깐양, 볼살을 썰고 갈비를 손질하는 길. 냉기가 도는 공장 바닥 위에서 고된 육체노동을 하며, 나는 오직 '생계'라는 두 글자에 충실한 직장인이다. 스무 살의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 길이 없으면 나머지 세 길은 애초에 시작조차 될 수 없다. 이곳이 나의 견고한 출발선이다.
두 번째 길은 퇴근 후 씻지도 못한 채 허겁지겁 뛰어드는 야간 대학교의 길이다.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 떨구는 청년들과 함께 앉아, 나는 다시 '학생'이 된다. 스무 살에 놓쳤던 배움의 기회, 자격증 하나라도 더 따서 이 공장을 언젠가는 벗어나 보겠다는 간절함이 이 길을 걷게 한다. 강의실의 미지근한 공기는 시래기 냄새를 희미하게 지워주고, 나는 다시 성장의 가능성을 꿈꾼다.
세 번째 길은 현관문을 열었을 때 마주하는 사춘기 아들의 길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예측 불가능한 이 길은 종종 나를 울리고 웃긴다. 내가 이토록 힘겹게 하루를 버티는 이유이자, 동시에 가장 빨리 엄마라는 역할에서 도망치고 싶은 길. "엄마는 왜 이렇게 바빠?"라는 아들의 퉁명스러운 질문 속에 내포된 외로움을 읽어내려 애쓰는, 세상 가장 복잡한 정글이다.
마지막 길은 이 모든 것이 잠든 밤, 홀로 노트북을 켜고 걸어가는 브런치 작가의 길이다. 곱창과 시래기 냄새가 완전히 가신 자정 12시, 나는 이 복잡한 네 개의 삶을 단 하나의 문장으로 정돈하는 사치를 누린다. 이 글쓰기의 길이야말로 나의 출구이자 방어막이다. "잘못 들어선 길은 없다"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가끔은 너무 지쳐서 묻곤 한다. 내가 지금 네 갈래 길을 동시에 걷는 이 모습이 과연 '잘 된 삶'일까. 어쩌면 나는 하나의 길을 걷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길치가 아닐까 하고.
하지만 깐양을 썰던 내 손이 노트북 위에서 쉴 새 없이 자판을 두드리고, 그 글이 다른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다는 댓글을 볼 때마다 깨닫는다.
잘못 들어선 길은 없다.
이 네 개의 길 모두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복잡하고 고단하지만, 네 배의 경험, 네 배의 이야기, 네 배의 성찰을 가진 독보적인 나.
오늘도 아침 7시 30분, 나는 다시 시래기 냄새가 피어오르는 첫 번째 길로 향한다. 가슴속으로는 이미 나머지 세 길의 지도를 펼쳐 든 채.
나에게는 네 개의 길이 있고, 이 모든 길을 걷는 내가 바로 가장 잘 된 나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