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15. 토
바깥세상이 어떤지 알 수 없었지만, 내 공간은 아침부터 포근한 분주함으로 가득 찼다. 창밖의 빛이 드리우자마자 나는 빨래부터 돌렸다. 세탁기 특유의 웅장한 소리가 토요일 오전의 시작을 알렸고, 나는 깨끗해진 옷들을 베란다에 걸며 햇살의 냄새를 맡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정갈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전투태세로 돌입했다. 커피 머신에서 갓 내린 뜨거운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바삭하고 짭조름한 포카칩 한 봉지를 뜯었다. 그 단순한 단짠의 조합이 이 지루하고 치열한 노동을 견디게 해 줄 에너지원이었다. 오전 내내 오로지 사례관리론 과제에만 집중했다. 복잡한 개념들과 사례 분석을 엮어내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 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제저녁부터 잠을 줄여가며 이어온 고된 여정의 한가운데였다.
시간은 점심을 지나 오후로 접어들었다. 뱃속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자, 잠시 펜을 놓고 주방으로 향했다. 빠르고 간편하게 라면을 끓였다. 끓는 물과 수프, 면발이 합쳐져 내는 구수한 냄새가 좁은 부엌을 채웠다. 정신없이 라면을 흡입하고 있는데, 방에 있던 아들이 나왔다.
아들은 곧 외출할 채비를 하면서도, 냄비 가득 끓여놓은 어묵국에 밥을 말아 뚝딱 해치웠다.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씻고 옷을 갈아입는 아들의 바쁜 움직임과 그의 외출 준비는 내게 잠시 일상의 템포를 상기시켜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문을 닫고 나선 후에도 미련 없이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내게는 아직 끝내야 할 임무가 남아 있었다.
시민교육론과 지역사회복지론. 남은 과제들을 하나씩 해치웠다. 집중력이 바닥날 때마다 커피를 리필하고, 포카칩 대신 물을 마시며 버텼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에너지를 쏟아붓고, 마침내, 세 가지 과제 모두를 최종적으로 끝냈다. 노트북 화면에 '제출 완료' 메시지가 떴을 때, 어깨를 짓누르던 거대한 짐이 사라지는 듯한, 짜릿하면서도 조용한 해방감을 느꼈다.
해가 완전히 기울어 어둠이 깔릴 무렵, 나는 그제야 집 밖으로 나섰다. 해방 기념 외출이었다. 다이소에 들러 따뜻한 느낌의 사과허브티와 예쁜 보온컵을 신중하게 골랐다. 이제 이 컵에 허브티를 담아 마시며 편안하게 쉬어야지.
집으로 돌아오니, 아들도 그의 약속을 끝내고 돌아와 있었다. 고단했던 하루의 끝은 언제나처럼 식탁이었다. 우리는 토요일의 피로와 과제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 불판 위에 두툼한 삼겹살을 올렸다. 지글지글 기름이 튀는 소리, 고소한 냄새, 아들과 나누는 소소한 대화. 집콕하며 치열하게 보낸 하루의 끝에서, 우리는 가장 따뜻하고 평화로운 만찬을 즐겼다. 집은 나의 작업실이자, 나의 쉼터, 그리고 나의 삶이 온전히 담긴 공간이었다.
몰래 훔쳐본? 우연히 발견한? 아들의 일기
엄마의 집콕 과제 날 (feat. 삼겹살)
11월 15일 토요일? 나한테는 그냥 늦잠 자는 날이었는데, 엄마한테는 개 힘든 '과제 전쟁' 치르는 날이었음.
난 늦게 일어났는데, 엄마는 이미 새벽부터 일어나서 빨래 돌리고 널고 난리도 아니었음. 책상 앞에 딱 붙어 앉아서는 커피에 포카칩만 들이키면서 노트북이랑 싸우고 있더라. 와, 진짜 오전 내내 미동도 없음. 얼마나 심했냐면, 옆에서 내가 뭘 하든 관심도 없었음. 사례관리론이 뭐길래.
점심때가 되니까 배가 고파서 냉장고 뒤졌음. 엄마는 그냥 라면 끓여 먹고 있었고. 난 그 냄새 무시하고 냉장고에 있던 어묵국 꺼내서 밥 말아먹었음. 이게 진짜 국룰이자 개꿀맛이지. 빨리 먹고 씻고 바로 약속 가야 돼서 겁나 바빴다.
내가 나갈 때도 엄마는 여전히 그 자리였음. '지역사회복지론' 이런 거 보면서 키보드를 따다닥 치고 있더라. "엄마, 나 나갔다 올게!" 하니까 고개만 끄덕하고 다시 화면에 시선 고정. '에휴, 오늘도 쟤는 강제 집콕이구나' 싶었지.
해가 다 지고 저녁때 약속 끝나서 집 들어왔는데, 분위기가 확 달라져 있었음. 엄마 얼굴에 드디어 '해방'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것 같았달까. 손에는 다이소 봉투가 들려 있었는데, 보니까 사과허브티랑 새 보온컵 샀다고 함. 자기한테 주는 보상이라나.
나 보자마자 "야! 드디어 끝났다! 삼겹살 굽자, 고기 파티 ㄱㄱ" 이러는데, 와. 진짜 그날 삼겹살은 역대급이었음. 하루 종일 컴퓨터 소리만 나던 조용한 집이 갑자기 불판 위에서 지글거리는 고기 냄새랑 소리로 가득 찼음. 엄마가 잠까지 줄여가며 세 가지 과제를 다 끝낸 그 치열함이 그 삼겹살 한 점에 다 녹아 있는 것 같았지. 뭐, 어쨌든 과제 끝낸 기념으로 내가 포식했으니까. 개이득!
엄마의 쿨내 진동 답장 (Feat. 과제 끝! 파티 시작!)
11월 15일 토요일? 나한테는 그냥 '강제 셧다운' 날이었다.
네가 늦잠 자고 있을 때부터 엄마는 이미 '전투 모드'였지. 빨래 돌리고 널고? 그건 그냥 '전투 준비 운동'이었어. 진짜 전쟁은 노트북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거든.
> "책상 앞에 딱 붙어 앉아서는 커피에 포카칩만 들이키면서 노트북이랑 싸우고 있더라."
맞아. 그때 내 뇌는 완전히 '과부하' 상태였고, 커피랑 포카칩은 내 '생체 배터리'를 잠시 뻥튀기시켜주는 유일한 장치였다. 옆에서 네가 어묵국 먹든, 춤을 추든, 그때의 엄마는 네 말대로 '사례관리론' 속의 주민 1일뿐이었지. 관심 없음!
네가 밥 말아먹고 씻고 나갈 때 "엄마, 나 나갔다 올게!" 하니까 고개만 끄덕했지? 그건 "시끄러워, 지금 머리 터지기 직전이야!"를 온몸으로 표현한 거였어. 네가 나가서 얼마나 좋았는데. (속마음: 드디어 방해꾼 퇴장!)
해방 만세! 그리고 삼겹살
근데 네가 저녁에 들어왔을 때 분위기가 달랐다고? 당연하지!
해방이다! 돈 쓰고! 고기 굽자!
다이소에서 산 사과허브티랑 새 보온컵? 그건 '성공적으로 과제를 마무리한 나'에게 주는 합당한 소비'였다. 나도 행복할 권리가 있거든!
그리고 삼겹살. 네가 "야! 드디어 끝났다! 삼겹살 굽자, 고기 파티 ㄱㄱ" 이 멘트 듣고 진짜 역대급이었다고 느꼈지? 그거 '하루 종일 굶주린 엄마의 영혼이 부르는 노래'였다.
네 일기 그대로야. 잠까지 줄여가며 세 가지 과제를 다 끝낸 그 치열함이 그 삼겹살 한 점에 다 녹아 있는 것. 그걸 네가 '개이득'이라며 포식해 줘서 엄마는 더 기분 좋았다. 그래, 너도 '승리의 고기'를 나눠 먹을 자격은 충분했지. 하루 종일 시끄럽게 안 굴고 집을 비워준 공로가 크니까.
다음번 엄마의 '과제 전쟁'이 시작되면, 너는 뭘로 엄마한테 '해방'을 선사해 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