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0의 습격, 주머니 속의 시

by 뽀송드림 김은비

07:20. 알람 소리는 어김없이 고막을 찌르고, 나는 부은 눈으로 거실로 기어 나간다. 이제는 나보다 훌쩍 커버린 중3 아들의 방 문을 두드리는 것으로 내 '첫 번째 출근'이 시작된다.


“아들, 일어나. 이제 중학교 졸업도 얼마 안 남았는데 유종의 미는 거둬야지.”


이불속에서 웅얼거리는 아들의 대답을 뒤로하고 주방 불을 켠다. 밥통 열기에 밴 단내와 차가운 아침 공기가 섞인다. 아들이 밥을 먹는 동안 나는 세수도 하는 둥 마는 둥 머리를 질끈 묶는다. 거울 속엔 초췌한 여자 하나가 서 있지만, 곧 고등학교에 올라갈 아들 뒷바라지에 내 얼굴 들여다볼 여유 따위는 사치다. 아이 가방에 물병과 간식을 쑤셔 넣고 내 출근 가방까지 챙겨 현관문을 나서면, 벌써부터 무릎이 삐걱거리는 기분이다.


정류장까지 걷는 길, 찬바람이 목덜미를 파고든다.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며 시계를 본다. 1분 1초가 아쉬운 이 시간, 드디어 육중한 몸체의 버스가 서서히 멈춰 선다. 사람들 사이에 끼여 손잡이에 매달린 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본다. 버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내 몸도 맥없이 흔들린다. 옆자리 학생의 가방 인형이 내 팔을 툭툭 친다. 저 아이도 내 아들처럼 어딘가로 실려 가고 있을 것이다. 삶은 어쩌면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 때쯤, 가방 깊숙한 곳에서 휴대폰이 짧게 몸을 떤다. 카톡 알림이었다.


[알림] 작가님, 출판사입니다. '시집' 도서가 방금 온라인 서점에서 판매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순간, 덜컹거리던 세상이 멈춘 듯했다. '아... 참, 나 시집 냈었지.' 중학교 졸업을 앞둔 아들 걱정에, 사무실 엑셀 숫자에, 저녁마다 학원에서 배우는 노인 욕창 방지 수칙들까지.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살다 보니 내가 시인이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밤마다 정성을 다해 고민을 하며 썼다 지웠다를 반복해서 나온 보석 같은 문장들이, 지금 누군가의 손에 닿아 읽히고 있다는 사실. 땀 냄새나는 만원 버스 안에서 나는 잠시 '누구 엄마'도 '김신입 씨'도 아닌, '작가'라는 이름의 산소를 한 모금 들이마신다.


하지만 버스 안내 방송이 회사 근처 정류장을 알리자, 환상은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버스에서 내려 회사 문을 여는 순간, 나는 다시 현실의 옷을 입는다. "김신입 씨, 어제 그 보고서 수치 맞는지 다시 확인해 봐. 오타 나오면 곤란해." "네, 팀장님.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쏟아지는 업무들. 오전 내내 엑셀 칸을 메우고 상사 눈치를 살피며 숫자의 늪에서 허우적댄다. 하지만 가끔 눈이 침침해져 고개를 들 때면 아까 본 카톡 메시지가 부적처럼 떠오른다. 그래, 나는 숫자만 채우는 기계가 아니라 문장을 빚는 사람이었다.


점심시간, 식당으로 향하는 대신 탕비실에서 믹스커피 한 잔을 타서 창밖을 본다. 지나가는 버스들을 보며 생각한다. 퇴근하면 나는 다시 저 버스를 타고 학원으로 갈 것이다. 거기선 또 '선생님'이라 불리며 누군가의 아픈 몸을 부축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기저귀를 가는 법, 굳은 근육을 주무르는 법,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손끝으로 느끼는 법. 시를 쓰는 것과 누군가를 돌보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둘 다 상대방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 상처에 약을 바르듯 알맞은 단어와 손길을 건네는 일이기 때문이다.


워킹맘으로, 김신입 씨로, 내일을 준비하는 돌봄의 손길로, 그리고 시인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자아를 갈아타는 이 고단한 버스 여행이 언제쯤 끝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아침 배달된 '판매 알림' 한 줄이 내 마음속에 작은 연료를 채워주었다. 시를 쓰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버티고, 시를 쓰는 마음으로 저녁에 환승할 학원 수업도 견뎌보리라 다짐하며, 다시 자판기 위에 손을 올린다.


밤 11시, 현관문을 열면 다시 '엄마'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이제는 괜찮다. 내 가방 안에는 복잡한 서류들과 학원 책들 사이에, 아직 아무도 읽지 않은 눈부신 시 한 구절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나는 오늘 하루 내 몸을 스쳐 간 힘겨운 소리들을 아름다운 노래로 바꾸기 위해 다시 펜을 잡는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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