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인가 자꾸만 목구멍에 뜨거운 덩어리가 걸린다. 거창한 슬픔이 터진 것도, 못 견딜 불행이 닥친 것도 아니다. 그냥 아주 평범한 일상의 모서리에 마음이 툭 걸릴 때마다, 제멋대로 눈물이 차오른다.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보다가, 혹은 밥통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걸 멍하니 바라보다가, 심지어는 신발 끈을 묶으려 허리를 숙였다가도 울컥한다. 이 울컥함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습격 같아서 도무지 방어할 재간이 없다.
며칠 전에는 퇴근길 편의점에서 '1+1' 행사 중인 초콜릿 우유를 고르다가 문득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더 준다는 그 너그러운 제안이, 마치 세상이 나에게 "너 오늘 진짜 고생 많았으니까 하나 더 먹고 기운 내"라고 등을 토닥여주는 것만 같아서였다.
계산대 앞에 서서 카드를 내미는데, 점원이 무심하게 "봉투 필요하세요?"라고 묻는 말에 울컥함이 목까지 차올랐다. "아니요, 그냥 들고 갈게요"라고 대답하는 내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걸 들켰을까 봐, 얼른 우유 두 개를 양쪽 주머니에 쑤셔 넣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우유 팩은 금세 식어갔지만, 주머니 속의 그 묵직한 무게감이 어쩐지 든든해 피식 웃음이 났다.
처음엔 내가 너무 피곤해서 그런가 싶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건 단순한 피로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삶 자체가 주는 무게’에 대한 몸의 정직한 반응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아를 갈아타며 사는 일.
누군가의 엄마였다가, 서툰 신입 사원이었다가, 밤이면 다시 미래를 담보로 무언가를 배우는 학생이 되는 일. 그 사이사이마다 나는 나를 조금씩 떼어내어 세상에 통행료처럼 지불하고 있었다. 내 이름 석 자보다는
‘누구 엄마’나 ‘김 대리’로 불리는 게 더 익숙해질수록, 정작 진짜 ‘나’는 갈 곳을 잃고 마음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잊고 있던 ‘작가’라는 이름을 대면했을 때 터져 나온 건 기쁨이 아니라 형언할 수 없는 서러움이었다. 서점 한 귀퉁이에서 우연히 발견한 문장 하나가 가슴에 박혔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근사한 문장을 가진 사람이다." 그 글귀를 마주한 순간, 심장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었다.
"아, 맞다. 나 이런 사람이었지. 나 이렇게 예쁜 마음을 글로 옮길 줄 아는 사람이었지."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동안 모른 척 지나왔던 고단함이 한꺼번에 역류해 버렸다. 남들 다 하는 고생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꾹꾹 눌러 담았던 감정의 찌꺼기들이 ‘진짜 이름’ 하나에 반응해 터져 나온 것이다.
요즘의 나는 참 위태로우면서도 우습다. 버스 엔진의 진동에도 마음이 흔들리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심한 표정에도 가슴이 저린다. 그러다가도 길가 편의점 앞에 쌓인 눈더미 사이로, 누군가 장난스럽게 만들어 둔 비뚤어진 눈사람 하나를 보면 마음이 금세 말랑해진다. 단추 대신 박힌 돌멩이가 꼭 내 처지 같으면서도, 이 추위 속에서 꿋꿋이 서 있는 꼴이 제법 기특해 보여 "야, 너도 참 고생이 많다"라며 혼잣말을 내뱉는다.
삶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벅찬 것인가 싶다가도, 영하의 날씨를 견디며 제 자리를 지키는 저 눈사람처럼, 이 지루한 일상을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사실은 우리 모두가 위대한 곡예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울컥함은 어쩌면 내 마음이 나에게 보내는 마지막 신호일지도 모른다. 너무 애쓰지 말라고, 지금도 충분히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고, 가끔은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 숨어 엉엉 울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서글프고도 따뜻한 위로 같은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쏟아질 것 같은 마음을 억지로 밀어 넣지 않기로 했다. 흐르면 흐르는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그저 놔둔다.
입김이 하얗게 퍼지는 길 위에서 눈물을 닦고 나면 신기하게도 세상이 조금 더 선명해 보인다. 이 울컥함이야말로 내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내 삶을 지극히 사랑하고 싶어 하는 가련하고도 씩씩한 몸부림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삶이 나를 건드리고 간 자리마다, 비로소 나만의 정직하고 단단한 문장들이 다시 돋아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