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한 살 위로 돋아나는 새살

by 뽀송드림 김은비

세상이 요구하는 단단한 껍데기를 쓰고 사느라, 정작 그 안의 살은 너무나 연해져 있었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그 연한 마음이 가끔 일상의 모서리에 툭 걸려 비명을 지를 때, 나는 그저 울컥하는 눈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는 이런 내가 참 버겁다고 생각했다. 남들처럼 무디게, 혹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툭툭 털어내며 살고 싶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안의 작가는 바로 그 '연한 살'에서 태어나고 있었다. 상처받기 쉽다는 건 그만큼 세상을 세밀하게 느끼고 있다는 뜻이고, 울컥한다는 건 여전히 마음의 문을 닫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버스 뒷자리에 앉아 창밖으로 흐르는 노을을 볼 때, 가슴 한쪽이 아릿해지는 건 내가 여전히 아름다운 것을 알아볼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밥통의 김이 모락모락 올라올 때 가슴이 꽉 차는 건, 그 소박한 온기가 주는 위로를 외면하지 않을 만큼 마음이 맑기 때문이다.


어쩌면 삶이란 대단한 성취를 이루는 과정이 아니라, 깎여 나가는 나를 수습하며 내 안의 부드러움을 끝까지 지켜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세상이 나를 '누구의 엄마'나 '신입 사원'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부를 때, 나는 내면의 일기장에 '나'라는 주어를 꾹꾹 눌러 적는다. 그 주어 하나가 나를 버티게 하고, 다시 신발 끈을 묶을 힘을 준다.


이제는 울컥함이 찾아와도 나를 탓하지 않기로 했다. "아, 내 마음이 지금 숨을 쉬고 싶어 하는구나" 하고 가만히 내버려 둔다. 눈물이 뺨을 적시고 나면, 신기하게도 세상을 보는 시야가 조금 더 투명해지는 기분이 든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고단함이 눈물에 씻겨 내려가며, 그 자리에 다시 부드러운 새살이 돋아나는 것 같다.


우리가 강하다고 믿었던 것들은 사실 얼마나 쉽게 부서지던가. 한겨울 얼어붙은 강물은 돌을 던지면 날카롭게 깨지지만, 봄볕에 녹아 흐르는 강물은 어떤 돌을 던져도 그저 깊게 품어 안을 뿐이다. 나를 지키기 위해 마음을 꽁꽁 얼려버리는 대신, 차라리 흐르는 강물이 되어 모든 아픔을 통과시키고 싶다. 부드러운 것은 부러지지 않고, 흐르는 것은 썩지 않는다.


나만 이런 게 아닐 거라고, 오늘도 나와 같은 버스를 타고 흔들리는 저 무수한 사람들도 각자의 부드러움을 지키기 위해 저토록 무표정한 얼굴로 견디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따뜻해진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지는 않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비슷한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모른 채 위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힘없이 고개를 떨군 낯선 이의 어깨가 남의 일 같지 않은 건, 우리 모두 무거운 갑옷 아래 각자의 연한 살을 숨기고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약함은 결코 부끄러움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내가 세상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며, 타인의 슬픔에 손을 내밀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도구다. 내가 아파본 적이 있기에 타인의 신음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내가 울어봤기에 타인의 젖은 눈동자를 알아챌 수 있다. 이 연약함이야말로 우리가 인간으로 남을 수 있게 하는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오늘 밤, 나를 위한 작은 문장을 적어본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고 길지 않아도 좋다. 그저 내 마음의 온도를 정직하게 담아낸 문장 하나면 충분하다. 그 문장이 나를 안아주고, 내일의 나를 다시 일상으로 안내해 줄 것이다.


"오늘도 참 잘 견뎠다. 너의 그 연약함이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었어."


나는 여전히 위태롭고 때로는 서글프지만, 이 부드러운 울컥함이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의 연약함을 사랑해 보기로 했다. 흉터가 남을지라도 다시 사랑하고, 다시 흔들리고, 다시 눈물 흘리는 이 삶을 축복하며. 가장 부드러운 것이 결국은 가장 단단한 세상을 이긴다는 믿음을 품고, 나는 내일도 부드러운 사람으로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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