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복도 벽면은 마치 거대한 성벽 같다. 그곳엔 석사, 박사, 수십 년의 현장 경력을 가진 전문가들의 화려한 프로필이 빽빽하게 박혀 있다. 그 견고한 이름표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훑을 때마다 가슴 한구석에 서늘한 바람이 지나간다. 작가도 많고, 사회복지사도 많고, 평생교육사도, 요양보호사도 이미 포화 상태인 이 정글에서 나 같은 ‘신입’이자 ‘학생’인 존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단 한 뼘이라도 남아 있긴 한 걸까.
이미 완성된 저 사람들 틈에서, 나는 대체 무엇으로 내 존재의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지 묻고 또 묻는다.
그 고민은 퇴근길 가방 속에서 엉망으로 뒤섞인 소지품들처럼 어지럽고 무겁다. 회사의 사무용품, 요양보호 교과서, 평생교육론 유인물, 그리고 작가의 낡은 노트까지.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렇다고 어느 하나 온전히 내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없는 이 파편들이 때로는 나를 정체불명의 잡동사니처럼 느껴지게 한다. 남들은 하나만 깊게 파도 성공하기 힘들다는데, 나는 이것저것 다 건드리며 결국 무엇 하나 제대로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어설픈 수집가’로 남는 건 아닐까 하는 현실적인 공포가 수시로 나를 덮친다.
가장 서글픈 건, 내가 가진 이름표가 늘어날수록 정작 ‘나’라는 사람의 형체는 점점 희미해진다는 점이다. 낮에는 회사의 요구에 맞춰 엑셀 칸을 채우며 소모되는 부속품이 되고, 밤에는 학원 강의실 구석에서 졸음을 쫓으며 타인의 노후를 공부하는 학생이 된다. 새벽엔 또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기를 쓰고 문장을 짜내지만, 정작 거울 속의 나는 누구의 이름으로도 온전히 불리지 못한 채 퀭한 눈을 하고 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이 되려고 이토록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걸까.’ 이 질문은 만원 버스의 거친 진동과 함께 심장 끝을 찌른다.
버스 창문에 이마를 대면 차가운 유리창 너머로 도시의 불빛들이 흐릿하게 번진다. 저 불빛 하나하나마다 나보다 앞서간 이들의 당당한 마침표가 붙어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왜 이리 느리고, 왜 이리 무겁고, 왜 이리 복잡하게 살아야만 하는지. 남들처럼 평범하게 한 가지만 하며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는 없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날들이 길어진다. 쉼표가 누락된 채 달리는 이 질주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니 기다리는 게 있기는 한 건지 알 수 없는 밤이 깊어갈수록 마음은 자꾸만 밑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전문가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확신에 찬 목소리를 내는데, 나는 늘 문장 중간에 멈춰 서서 쉼표조차 찍지 못한 채 헐떡거린다. 그들이 말하는 ‘자아실현’이나 ‘숭고한 가치’ 같은 말들이 가끔은 배부른 소리처럼 들려 씁쓸한 냉소가 터진다. 나에게는 그저 내일 당장 빠져나갈 생활비와 공과금을 위해 통장 잔고를 확인해야 하는 현실이 훨씬 더 절박하기 때문이다. 미래를 가불해 쓰는 신용카드도 없이, 오로지 오늘의 노동으로 채워 넣은 체크카드의 잔액만큼만 딱 그만큼만 허락된 삶의 중량이 때로는 숨이 막히게 무겁다.
이 이름표 정글 속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 칠수록, 정작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리는 이 역설이 지독하게 아프다. 세상이 ¹요구 1 하는 정답지에 내 오답 같은 삶을 꾸역꾸역 적어 넣는 일이, 가끔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아서 서럽다. 기록하지 않으면 증발해 버릴 것 같아 펜을 잡지만, 기록할수록 내가 얼마나 많은 짐을 지고 버티는지 확인하게 되는 이 밤. 쉼표가 누락된 삶은 결국 이런 막막함을 견디는 일인가 싶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오늘 밤도 책상 앞 스탠드를 켠다. 하지만 첫 문장을 떼기가 너무나 무겁다. 저 수많은 이름표 사이에서 나라는 존재가 희미해지지 않으려 애쓰는 이 사투를 과연 누가 공감해 줄까. 내일 아침이면 다시 '신입 씨'로, '학생'으로 불리며 나를 갈아 넣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화려한 이름표 뒤에 숨겨진 나의 서글픈 민낯을 말없이 응시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