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광의 ‘잘됐으면 좋겠다’를 재생 목록에 올리며 현관문을 나선다. 경쾌한 어쿠스틱 기타 리프가 이어폰을 타고 흐르자, 눅눅했던 아침 공기는 이내 싱그러운 리듬으로 바뀐다. 정류장까지 걷는 발걸음이 노래의 속도만큼이나 가볍게 튀어 오른다. 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사람들의 바쁜 얼굴 위로, 모든 게 다 잘됐으면 좋겠다는 선량한 주문을 슬쩍 얹어본다. 만원 버스 창가에 비친 내 모습도 오늘따라 제법 근사해 보인다.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차가운 엑셀 시트를 연다. 빽빽한 숫자와 복잡한 수식들이 모니터를 가득 채우지만, 귓가엔 여전히 아침에 들은 멜로디가 기분 좋게 맴돌고 있다. 한참 데이터와 씨름하던 중, 옆자리 대리님이 간식 꾸러미를 슬쩍 밀어주며 "오늘 수식 잘 풀리시나 봐요? 콧노래가 여기까지 들려요"라며 웃는다. "아, 들켰네요. 엑셀 칸들이 다 제 돈이었으면 좋겠어서요!"라고 받아치자 사무실에 작은 웃음이 번진다. 오류 메시지가 뜰 때면 잠시 미간을 찌푸리다가도,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 끝엔 어느새 리듬이 실린다. 업무 사이사이 나누는 이런 짧은 농담들이 퍽퍽한 일상의 틈을 다정하게 메워준다.
퇴근 후 발걸음은 자연스레 학원 강의실로 이어진다. 오늘은 신체 청결 실습이 있는 날, 짝꿍 언니와 세수시키기 연습을 하는데 손길이 너무 조심스러웠던지 언니가 작게 속삭인다. "선생님, 나 신생아 아니야. 좀 더 팍팍 닦아도 돼!" 그 말에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져 나와 한참을 킥킥거린다. 휠체어를 밀며 보폭을 맞추는 시간에도, "선생님, 제가 너무 과속하는 거 아니에요?"라는 내 농담에 언니가 "덕분에 드라이브하는 기분이라 좋네!"라며 시원하게 화답한다. 화려한 자격증보다 더 중요한 건 이토록 따뜻한 체온을 나누는 법이라는 걸, 우리는 서툰 실습 끝에 함께 나눠 먹는 귤 한쪽을 통해 배워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밤공기는 유난히 달큼하고 부드럽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코끝을 간지럽히는 진한 커피 향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주방에는 이번에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 예비 고1 아들이 서 있다. 용돈을 올려주기로 한 약속이 녀석을 움직이게 한 걸까. 녀석은 쑥스러운 듯 “엄마, 용돈 인상 기념으로 내가 쏜다!”라며 머그컵을 내민다. 설탕을 듬뿍 넣었는지 달콤하기 짝이 없는 아들의 커피 한 잔이 하루의 피로를 눈 녹듯 씻어낸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노트를 펼친다. 텅 빈 계좌 잔액보다 더 확실한 아들의 사랑이 있고, 내일 다시 활기차게 출근할 일터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다. 오늘 들었던 노래 제목처럼 나의 하루도, 아들의 꿈도, 그리고 우리가 함께 나눈 약속들도 모두 잘됐으면 좋겠다고 소망해 본다.
무엇보다 설레는 건, 내일이 아들의 졸업식이라 회사 휴무라는 사실이다. 출근용 가방 대신 아들에게 줄 꽃다발을 미리 챙겨두는 밤. 엑셀 수식이나 학원 과제 대신, 내일은 오롯이 아들의 새로운 출발을 박수 쳐주는 엄마의 역할에만 집중할 수 있어 마음이 넉넉해진다. 아들이 타준 커피를 마지막 한 모금까지 기분 좋게 비워내고 컵을 정리한다. 내 인생의 페이지는 누군가 적어둔 정답이 아니라, 오늘처럼 서툴지만 다정했던 순간들이 모여 완성되는 법이다. 다가올 날들 속에서 더 크게 웃고 있을 우리를 상상하며, 내일 아침의 특별한 휴일을 선물처럼 이불속에 품고 깊은 잠을 청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