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머리맡에 내려앉은 스탠드 불빛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아들의 졸업식이 있는 날 아침은 평소와 달랐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고, 굳이 깨우지 않아도 아들은 가뿐하게 몸을 일으켰다. 먼저 학교로 향하는 녀석의 뒷모습을 배웅하고 닫힌 문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거실엔 정적만이 감돌았고, 녀석이 앉아 있던 식탁 의자는 텅 비어 있었다. 그 텅 빈 공간이 왠지 모르게 묵직한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아들이 떠나고 난 후의 집안은 의외로 분주했다. 평소 출근 시간이라면 허둥지둥 옷을 챙겨 입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화장대 앞에 앉아 기초 화장품부터 평소보다 두 배는 더 공을 들였다. '오늘만큼은 아들에게 가장 예쁜 엄마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어서'였다. 거울 속 내 모습은 낯설면서도 설렜다. 베이스 메이크업을 얇게 펴 바르고, 눈매는 부드럽게 강조했다. 립스틱은 너무 튀지 않으면서도 생기 있는 코랄빛으로 골랐다. 자연스러우면서도 화사한 모습에 스스로도 흡족한 미소가 번졌다.
옷장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깔끔한 트위드 재킷을 꺼내 입었다. 식탁 위에 고이 놓아둔 꽃다발을 확인했다. 어젯밤 물을 뿌려두었던 꽃잎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더욱 보석처럼 반짝였다. 꽃다발 사이에 꽂아둔, 어제 꾹꾹 눌러쓴 카드를 다시 한번 어루만졌다. 녀석이 읽고 기뻐할 표정을 상상하니 마음이 간질거렸다.
느긋하게 준비를 마치고 도착한 학교 강당은 왁자지껄했다. 수많은 학부모와 졸업생들 사이에서 나를 찾아내 손을 흔드는 아들을 보았다. 졸업 가운을 입고 사각모를 쓴 모습. 3년 전, 어색하게 교복을 맞춰 입고 교문을 들어서던 어린아이는 없었다. 어느새 내 어깨를 훌쩍 넘어선 녀석의 듬직한 모습에 가슴 한구석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건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에 대한 진한 아쉬움과 앞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뒤섞인 묘한 울컥함이었다.
화면을 통해 교실에서의 마지막 모습과 졸업장을 받는 순간을 보았을 때, 눈앞이 잠시 흐려졌다. 화면 속 아이들은 카메라를 보며 크게 웃다가도 이내 서로를 껴안으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저 짧은 순간 속에 아이의 3년이 다 담겨 있구나.' 교가를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강당 천장을 뚫을 듯 울려 퍼질 때, 나는 그 웅장한 합창소리에 휩쓸려 참았던 눈물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말았다.
식이 끝난 후, 아들은 친구들과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서로의 옷에 사인해 주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남긴 사진들 속에서 아들은 가장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엄마, 여기 봐!" 하며 나를 끌어당겨 찍은 사진 속 내 표정은 울음이 터지기 직전의 촌스러운 미소였다. 하지만 그 어떤 사진보다 가장 솔직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졸업식의 전통적인 마무리인 짜장면을 먹으러 '신라반점'에 들어섰다. 튀긴 탕수육의 바삭한 식감, 칼칼한 짬뽕 국물, 그리고 검은 짜장 소스를 비비는 아들의 손길. 화려한 음식은 아니었지만, 이보다 더 완벽한 졸업식 뒤풀이는 없을 것 같았다. 녀석은 "이제 진짜 고등학생이네"라며 어른스러운 척 탕수육을 내 그릇에 놔주었다. 그 손길에서 녀석이 타준 커피처럼 달콤하고도 조금은 씁쓸한,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의 향기가 났다.
강당에서의 울컥했던 감정은 짜장면 한 그릇에 든든함으로 바뀌어 자리 잡았다. 녀석의 앞날을 축복하면서도, 문득 다가올 고등학교 생활의 치열함이 걱정되어 마음이 다시 무거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괜찮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온 지난 시간들처럼, 앞으로의 시간도 함께 잘 걸어갈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