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의자, 그리고 묵직한 어깨-2

by 뽀송드림 김은비

졸업식 당일, 탕수육 향기가 채 가시지 않은 옷을 입고 나는 서둘러 학원으로 향했다. 졸업식장의 눈물과 웃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문제집을 펼쳐 든 내 모습이 낯설면서도 비장했다. 칠판에 적히는 낯선 전문 용어들은 자꾸만 미끄러지듯 머릿속을 겉돌았다. 공부와 일상을 병행하는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혹독했다. 옆자리에 앉은 수강생들의 진지한 뒷모습을 보며, 나는 어제 아들과 나눈 따뜻한 대화들이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로 칠판의 글씨에 몰입했다. 칼바람을 뚫고 집에 돌아오는 길,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졸업식의 화사함 대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졸업식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며칠간 찬 바람을 맞으며 분주히 다닌 탓에 결국 목감기가 찾아온 것이다. 욱신거리는 목을 부여잡고 주방으로 향했다. 집에 있는 원탕을 꺼내 정성스레 데웠다. 따뜻한 약 기운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차가운 현실에 얼어붙었던 하루가 조금씩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올해로 만 39세, 흔히 말하는 '불혹'의 문턱에 섰다. 내게 불혹은 외부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상태라기보다, 내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여 삶의 방향을 확고히 하는 시기였다. 졸업식 날, 훌쩍 커버린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느꼈던 감정은 단순한 아쉬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라는 역할 뒤에 숨겨두었던 나의 이름, 나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절박한 성찰의 시작이었다.


나는 따뜻한 탕약을 마시며, 망설임 끝에 낸 간이과세자 사업자등록증을 떠올렸다. 거창한 사무실도, 화려한 시작도 아니지만 그 종이 한 장이 주는 무게는 묵직하다. 그것은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내 이름 석 자로 세상을 살아가겠다는 독립 선언이다.


독립 선언과 동시에 나는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자격증을 취득하면 바로 주간보호센터에 취업하는 것이 내 현재의 명확한 목표다. 이 목표는 내 인생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누군가의 삶을 지탱하는 돌봄의 현장에서, 사람과 세상을 배우고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정직한 '현재의 계단'이다. 아들이 고등학교라는 낯선 교문을 넘어서듯, 나 또한 이 통증과 피로를 견디며 내 인생의 상급 학교로 진학하고 있다.


따뜻한 온기가 온몸으로 퍼지자, 씁쓸했던 탕약 맛이 달콤하게 느껴졌다. 어깨를 짓누르던 책임감은 어느새 꿈을 향한 날개가 되어 나를 부추긴다. 텅 빈 식탁 의자는 더 이상 허전함의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내 꿈이 채워지는, 가장 치열하고 뜨거운 사색의 공간이다. 나는 오늘도 묵묵히, 그러나 당당하게 나의 속도로 내일을 향한 단단한 걸음을 내디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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