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을 삼키는 것조차 칼날을 삼키는 듯한 통증에 결국 무너진 아침이었다. 약을 먹어도 도통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독한 목감기. 3월 3일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학원 갈 채비에 바쁜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도저히 아르바이트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신입사원으로 들어간 회사는 비수기라 일감이 적어 권장 연차를 쓰라는 공지가 내려왔다. 청천동에 있는 지사로 가면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다지만, 그곳은 학원과 거리가 너무 멀어 지각이 뻔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은 출결이 생명이다. 지각이나 결석이 잦아 출석률이 부족하면 국가고시 응시 자격 자체가 박탈된다. 지사로 가서 벌이를 늘릴 수도, 그렇다고 공부를 놓을 수도 없는 줄타기 같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벌이는 줄었지만,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생계급여 신청도 하지 않은 채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열심을 좋게 봐주신 어느 사단법인에서 뜻밖의 지원금을 보내주셨다. 차가운 빗줄기 속에서 만난 기적 같은 온기였다.
멈춤, 그리고 꾸지람 속의 깨달음
창밖에는 잿빛 하늘에서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빗소리를 들으며 며칠 전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스승님께 혼났던 기억을 떠올렸다.
"시집도 조금씩이나마 계속 팔리고 있고, 어쨌든 일도 하고 있고, 분명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데 왜 자꾸 징징대느냐. 이미 너에게 주어지고 있는 복들을 먼저 생각하라."
스승님의 매서운 꾸지람은 아픈 목보다 더 쓰리게 가슴에 박혔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비수기라 쉬게 된 덕분에 이 지독한 감기를 돌볼 시간을 벌었고, 지사를 포기한 덕분에 소중한 배움의 출석을 지켜내고 있다. 부족한 통장 잔고는 이름 모를 이들의 선의로 채워졌다. 모든 것이 절망이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모든 순간이 지탱받고 있었다.
통증 너머를 바라보는 법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강제로 침묵하게 된 오늘, 역설적으로 내 안의 감사함은 더 또렷해졌다.
현재의 통증: 이것은 무리한 일정에 대한 경고이자, 잠시 멈춰 서서 내 주변의 '복'을 세어보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나를 찾는 여정: 요양보호사 공부는 단순히 취업만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누군가의 약한 부분을 보듬기 전,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타인의 선의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겸손의 과정이다.
달콤한 쓴맛의 여운
다시 약을 데우며 생각한다. 39세, 불혹의 문턱에서 겪는 이 진통은 내 삶의 상급 학교로 가기 위한 필수 과목일 것이다. 아들이 고등학교라는 새 도화지를 준비하듯, 나 역시 빗소리에 조바심을 씻어내고 다시 붓을 든다.
연차로 얻은 이 짧은 휴식은 퇴보가 아니라, 스승님의 말씀처럼 내게 주어진 복을 정리하는 고요한 예비종이다. 쓴 약을 삼키며 다짐해 본다. 내일은 징징거리는 투정 대신, 묵묵히 내딛는 걸음으로 나의 가치를 증명하겠노라고. 비록 목소리는 나오지 않지만, 내 마음은 어느 때보다 당당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