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거실 커튼 사이로 스며든 2월의 햇살이 어젯밤 깎아놓은 짧은 손톱 끝에 걸려 하얗게 부서졌다. 실전은 내일부터인데, 몸은 이미 실습지의 리듬을 타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국자 대신 '온도'를 재는 손길
주방으로 향해 가스불을 켰다. 내일부터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서야 하니, 아들이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국을 끓이고 싶었다. 평소라면 대충 썰어 넣었을 배추를 오늘은 유독 가늘고 잘게 썰었다. 치아가 약한 어르신들의 식사를 준비하듯, 숟가락 위에 부드럽게 얹힐 모양새를 고민하며 국자를 저었다.
"음, 냄새 좋다. 엄마, 벌써 일어났어?"
부스스한 머리를 한 아들이 기지개를 켜며 식탁으로 다가왔다. 평소 같으면 "더 자지 왜 나왔어"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했을 녀석이, 오늘은 내 옆에 찰싹 붙어 국 냄비 속을 들여다봤다.
"내일부터 실습이라며. 오늘은 좀 쉬지, 뭘 또 이렇게 정성스럽게 끓여."
"정성은 무슨. 너 먹으라고 끓이는 거지."
쑥스러움에 툭 내뱉었지만, 국을 떠서 아들 입에 넣어주기 전 나도 모르게 손등에 국물을 톡 떨어뜨려 온도를 확인했다. 그 찰나의 행동을 놓치지 않은 아들이 큭큭거리며 웃었다.
"와, 우리 엄마 벌써 요양보호사 다 됐네? 온도 체크까지 완벽한데?"
거실에서 펼쳐진 '기습 테스트'
아침 식사를 마친 뒤, 거실 소파에 앉아 실습 교본을 펼쳤다. 휠체어 이동법, 식사 수발, 욕창 예방... 눈에 익은 글자들이지만 내일 현장에서 마주할 실전이라 생각하니 문장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았다.
"엄마, 내가 어르신 할 테니까 한번 해봐요."
설거지를 끝낸 아들이 대뜸 소파에 축 늘어지며 연기를 시작했다. "아이고, 허리야. 선생님, 나 좀 일으켜줘요." 녀석의 장난기 섞인 연기에 헛웃음이 났지만, 나는 못 이기는 척 아들의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집어넣었다.
"어르신, 갑자기 일어나시면 어지러우니까 천천히 움직이실게요."
이론대로 무게 중심을 낮추고 아들을 일으키려는데, 생각보다 묵직한 무게에 "어이쿠" 소리가 절로 나왔다.
"엄마, 그렇게 하면 엄마 허리 다 나가요. 교본 다시 봐봐. 무릎을 더 굽혀야지!"
시험공부할 때도 안 보던 책을 아들이 대신 뒤적이며 훈수를 뒀다. 한바탕 실랑이 끝에 거실은 웃음바다가 됐고, 덕분에 딱딱하게 굳어있던 어깨의 긴장이 조금씩 풀려나갔다.
짧아진 손톱과 핸드크림의 향기
점심 무렵, 아들이 어젯밤 사준 핸드크림을 꺼내 발랐다. 매끄럽게 다듬어진 손톱 주변으로 은은한 향기가 스며들었다. 거칠었던 손등이 금세 촉촉해졌다.
"엄마, 그 핸드크림 향기 좋지? 그거 바르고 어르신들 손 잡아드리면 다들 좋아하실 거야. 엄마 손이 따뜻하니까."
공부하러 자기 방으로 들어가던 아들이 툭 던진 한마디가 가슴에 몽글몽글하게 남았다. 내일 이 시간엔 이 손으로 누군가의 마른 손을 맞잡고, 누군가의 굽은 등을 쓸어내리고 있을 것이다.
2월의 토요일 오후, 창밖의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집안을 채운 온기는 내일의 나를 든든하게 지탱해 줄 준비를 마친 듯했다. 실습 가방 옆에 놓인 아들의 비타민 음료가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이제 정말,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