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실습 첫날, 몸으로 익힌 사랑의 온기

by 뽀송드림 김은비

차가운 소독약 냄새와 뜨거운 명찰의 무게

2월의 아침 공기는 여전히 칼날처럼 매서웠다. 두꺼운 외투 깃을 여미며 도착한 요양원, 현관문을 열자마자 훅 끼쳐오는 특유의 소독약 냄새와 묘한 정적은 집을 나서며 가졌던 설렘을 금세 팽팽한 긴장감으로 바꾸어 놓았다. 가장 먼저 마주한 관문은 코로나 검사였다. 면봉이 코끝을 자극할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렸고, 짧은 기다림 끝에 하얀 키트 위로 선명하게 나타난 한 줄의 '정상' 표시를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안으로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집에서 정성껏 챙겨 온 깨끗한 실내화로 갈아 신고, 풀기를 머금은 빳빳한 앞치마를 둘렀다. 가슴팍에 내 이름이 정자로 새겨진 명찰을 다는 순간, 어깨가 묵직해졌다. 나는 이제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어르신들의 일상을 케어하는 '실습생'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거울 속 내 모습이 낯설면서도 대견해 보여 슬며시 미소를 지어 보았다.


낯선 공간에서 피어난 찰나의 교감

감상에 젖을 틈도 없이 사회복지사 선생님의 엄격하고도 세심한 주의사항이 쏟아졌다. 어르신들께는 반드시 극존칭을 쓸 것, 사소한 행동 하나도 반드시 여쭤보고 움직일 것, 그리고 식사 케어 시에는 어르신의 입안이 완전히 비었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는 당부가 이어졌다. 특히 청소할 때 바닥에 남은 물기 한 방울이 어르신께는 치명적인 낙상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곳에서의 실수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어르신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다는 사실이 피부로 와닿았다.


내가 배정받은 3층은 주로 누워서 생활하시는 와상 어르신들이 계신 곳이었다. 침대 위에서 고요하게 시간을 보내시는 어르신들의 평온한 얼굴을 마주하니 마음이 절로 경건해졌다. 나는 휠체어를 타고 거실에서 TV를 보시는 어르신 곁을 조심스레 지나며 청소기를 돌렸고, 주방과 각 방의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털어내며 대걸레질을 시작했다.


허리를 숙여 반복적으로 바닥을 닦아내는 내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시던 어르신 한 분이 짧은 감탄사를 내뱉으셨다. 기력이 없어 긴 말씀은 못 하셔도, 유리알처럼 반짝이는 바닥을 보며 "깨끗해!" 하고 환하게 웃어주시는 그 한마디에 굽혔던 무릎의 통증과 팔의 고단함이 씻은 듯 사라졌다. 누군가의 생활공간을 치우는 일이 단순히 먼지를 제거하는 노동이 아니라, 어르신의 마음속 어둠까지 환하게 밝히는 숭고한 일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정성으로 차려낸 한 숟가락의 무게

긴장됐던 오전 일과를 마치고 찾아온 1시부터 2시 사이의 점심시간은 그야말로 꿀맛 같았다. 요양원 근처 식당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뼈해장국 한 그릇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식후 요양원 1층으로 돌아와 향긋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잠시 숨을 고르니, 오후 실습을 버텨낼 새로운 힘이 차올랐다. 창밖으로 비치는 2월의 햇살이 유난히 포근하게 느껴졌다.


오후에는 본격적인 식사 케어가 이어졌다. 음식을 삼키기 어려워 미음을 드셔야 하는 어르신 곁에 앉아 조심스레 눈을 맞추었다. 한 숟가락을 천천히 떠 드리고, 어르신이 오물오물 다 삼키실 때까지 눈을 떼지 않고 기다렸다가 다시 다음 수저를 건넸다. 또 다른 어르신께는 바삭한 김에 따뜻한 밥을 올리고 반찬을 정성껏 얹어 쌈을 싸 드렸다. 맛있게 식사하시는 모습은 영락없이 우리네 부모님 같아 자꾸만 목구멍이 뜨거워지고 마음이 뭉클해졌다.


저녁 무렵에는 어르신들을 위해 고소한 김자반 주먹밥을 동그랗게 빚었고, 식사가 끝난 뒤 이어진 산더미 같은 설거지와 손걸레질까지 묵묵히 마쳤다. 5시 반, 실습생들이 1층에 모여 실습일지와 출석부를 정리하고 교육원에 보낼 인증 사진을 전송하며 서로의 소감을 나누었다. 6시 정각, 함께 고생한 이들과 따뜻한 인사를 나누며 드디어 퇴근길에 올랐다.


스승님의 격려와 아들이 차려준 완벽한 보상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가장 먼저 스승님께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고 스승님의 인자한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오늘 하루 꾹 참아왔던 긴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스승님, 저 오늘 정말 잘 해냈어요. 어르신께서 바닥 깨끗하다고 칭찬도 해주셨고요." 아이처럼 재잘재잘 쏟아내는 내 목소리에 스승님은 허허 웃으시며 "첫날부터 정말 장하네. 고생 많았다"라며 따스한 격려를 보내주셨다. 그 목소리만으로도 오늘 하루의 피로가 절반은 녹아내리는 듯했다.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은 저녁 7시쯤, 스승님으로부터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새로운 출발, 축하해요."라는 문구와 함께 보내주신 노란 제주 감귤 선물. 제자의 서툰 첫걸음을 대견하게 여겨주시는 그 깊은 마음씨에 코끝이 찡해졌다.


지친 몸을 이끌고 아들과 함께 단골집 '신라반점'으로 향했다. 얼큰하고 시원한 짬뽕 국물과 달콤한 짜장면, 바삭한 탕수육 세트가 식탁 위에 펼쳐졌다. 실습 첫날이라고 사장님이 슬쩍 얹어주신 서비스 군만두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완벽한 보상이었다.


"엄마, 오늘 진짜 고생했어. 아침에 내가 쓴 메모대로 6시 반에 잘 일어났네?"


탕수육을 크게 한 입 베어 문 아들이 대견한 듯 물었다. 나는 오늘 요양원에서 있었던 일들, 어르신들의 표정, 내가 느낀 감정들을 하나둘 아들에게 들려주었다. "역시 우리 엄마네. 엄마가 가서 청소해 드리면 어르신들이 진짜 좋아하시겠다." 아들의 진심 어린 응원을 최고의 반찬 삼아 배불리 먹고 나니, 비로소 오늘 하루가 온전하게 완성된 기분이 들었다.


평일의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다시 돌아올 주말의 실습날에는, 오늘보다 조금 더 능숙하고, 조금 더 깊은 온기를 지닌 손길로 어르신들을 살필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2월의 깊은 밤, 첫 실습의 여운을 소중히 갈무리하며 기분 좋은 단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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