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판 위의 낯선 이름, 커다란 물음표: '통합돌봄'

by 뽀송드림 김은비

화이팅을 외치고 난 뒤 갑자기 엊그제 실습처 사무실에서 본 것이 생각이 났다. 정수기 옆 알림판 구석에 핀으로 고정된 작은 용지 한 장이 내 시선을 붙들었다. ‘지역사회 통합돌봄’. 화려한 입구 유리창의 광고도 아니었고, 대단한 선포식의 현수막도 아니었다. 그저 실무자들의 손때 묻은 메모들 사이에서 소박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 문구.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후를."


솔직히 말하면, 나에게 그 단어는 너무나 생소했다. 통합돌봄이라니. 실습처에서 어르신들의 식사를 챙기고 프로그램을 보조하는 숨 가쁜 일상 속에서, 저 우아한 네 글자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 번에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그 생경한 단어가 엊그제 실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그리고 오늘 아침 레드 립을 바르는 순간까지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무실 모니터 앞에서 6과목의 수강 신청 전쟁을 치르며 내가 광클로 쟁취해낸 과목들을 다시 훑어본다. 의료사회복지론, 사회복지법제와 실천, 정신건강사회복지론... 엊그제 알림판에서 본 그 낯선 이름이 단순한 행정 용어가 아니라, 내가 앞으로 수없이 마주할 어르신들의 삶을 지탱할 실제적인 설계도라는 사실을 이제 막 깨닫기 시작했다.


"집에서 모시는 것이 정말 모두에게 최선일까?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후를'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어떤 준비를 마쳤을까?"


퇴근 후 식탁에 펼쳐진 요양보호 실기 기출문제집 위로 엊그제 센터에서 뵈었던 어르신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낮 동안은 센터에서 웃으며 프로그램을 즐기시지만, 해가 지고 '살던 곳'인 집으로 귀가하셨을 때 그분들의 밤은 과연 안녕할까? 알림판 위의 그 생소한 단어가 이 모든 현실의 빈칸을 채워줄 만큼 든든한 약속인 걸까?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을 위한 문턱 없는 주거 환경, 급할 때 달려와 줄 방문 의료 서비스... 정책은 장밋빛이지만, 현장에서 목격하는 디테일은 여전히 채워야 할 빈칸이 많아 보였다.



"엄마, 또 멍 때려? 수강 신청 다 했다며!"

아들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갓생 사는 엄마를 인정해 주는 아들의 응원 뒤로, 내가 공부하는 이유가 조금 더 명확해졌다. 엊그제의 궁금증을 일의 전문성으로 바꾸는 것. 이론은 정답을 가르치지만 현장은 끊임없이 변수를 던지기에, 나는 그 변수들까지 안아줄 수 있는 '진짜 전문가'가 되고 싶어졌다.

밤늦게 지워진 레드 립을 닦아내며 다짐한다. 엊그제 본 그 문구가 단지 예쁜 구호로 끝나지 않도록, 3학년의 이 치열한 수업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엑셀 업무와 전공 서적 사이를 줄타기하는 이 고단함이 언젠가 누군가의 평온한 노후를 설계하는 밑거름이 될 것임을 믿는다.

3학년의 밤은 낮보다 뜨겁고, 통합돌봄이라는 커다란 숙제는 이제 막 내 공부의 시작 페이지를 열었다.

생각을 하고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글을 쓰다보니 또 새벽지기 다. 그러다 보니 통합돌봄 시행이 이루어질 때 어떤 서비스를 하는 것이 좋을지...문득 생각이 떠오른다. 책꽂이에 끼어 둔 아이디어 노트에 적어놔야겠다.

어느새 쓰는 마음과 돌보는 마음으로 성장하는 것이 나의 목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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