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예비 사회복지사의 하루

by 뽀송드림 김은비

새벽의 잔열이 채 가시지 않은 주방,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가 정적을 깨우며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달궈진 팬 위에서 달걀 프라이가 지글거리며 고소한 향을 내뿜으면, 비로소 집안의 공기가 온기를 띠기 시작한다. 어제 실습처에서 어르신들의 식사를 챙기던 그 조심스러운 손길 그대로, 나는 내 아이의 밥그릇을 채운다. 노란 노른자가 터지지 않게 정성껏 얹고, 그 곁에 갓 구운 스팸 한 조각을 놓는다. 내 자식의 배가 든든해야 비로소 나의 하루도 당당하게 출발할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은 세상 모든 어머니의 가장 낮은 기도다.

"엄마, 출근해야지? 늦겠어, 얼른 먹어."

잠이 덜 깬 아들의 무심한 듯 다정한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든다. 이제는 아이가 엄마의 출근길을 걱정하고 등을 떠민다. 엄마의 출근이 곧 밥줄이고 용돈이라서 그런 걸까 싶기도 하다.

거울 앞에 서서 헝클어진 머리를 정돈하고, 다이어리와 필통, 작은 지갑, 파우치가 담긴 가방을 어깨에 메면 '엄마'라는 외투 위에 '직장인'의 갑옷이 입혀진다. 현관문을 나서며 나직이 읊조리는 "오늘도 무사히"라는 주문은 나를 지탱하는 힘이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커피 한 잔으로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모니터 속 활자들이 화살처럼 쏟아진다. 오전 업무는 실습처에서의 육체노동과는 또 다른, 머리를 쥐어짜는 긴장의 연속이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벨과 쌓여가는 결재 서류들 사이에서 나는 철저히 유능한 직장인이어야만 한다. 동료들과 섞여 밥을 먹는 점심시간조차 나의 머릿속은 온통 저녁 수업 내용으로 가득하다. 식당 구석에서 휴대폰으로 강의 공지사항을 확인하며 한 입이라도 더 챙겨 먹으려 애쓰는 모습은 흡사 전투 중인 병사와도 같다.

오후 1시부터 3시까지는 그야말로 시간과의 전쟁이다. 3시 퇴근을 위해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혹여나 작은 실수 하나가 발목을 잡아 등굣길을 늦출까 봐, 보고서를 두 번 세 번 검토하는 나의 눈매는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빛난다. 오후 3시, 퇴근을 알리는 시곗바늘과 함께 가방을 챙긴다. 회사 문을 나서는 순간, 직장인의 허물을 벗고 다시 엄마의 시간으로 진입한다. 다행히 학교가 집에서 멀지 않은 도보 거리라는 사실은 바쁜 일과 중 나에게 허락된 작은 선물 같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주방으로 향한다. 곧 학교에서 돌아올 아들이 먹을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도마 위에서 경쾌하게 울리는 칼소리는 아침의 그것과는 또 다른 리듬을 만든다. 정성껏 차려낸 찌개와 밑반찬을 식탁 위에 올리고 나서야 비로소 나도 식탁 한 귀퉁이에 앉아 늦은 끼니를 해결한다. 따뜻한 밥 한 술에 허기를 달래고 서둘러 양치를 마친다.

개운해진 기분으로 책상 앞에 앉아 전공 서적을 펼친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적막한 거실을 채운다. 30분이라는 짧은 틈새지만, 연필로 밑줄을 긋는 손끝엔 묘한 긴장과 확신이 서린다. 어제의 실습처에서 품었던 의문들이 책 속의 문장과 만나 해답으로 변하는 찰나, 나는 고단한 직장인에서 누군가의 삶을 보듬을 준비 과정을 거치는 학생으로 다시 태어난다. 집을 나서기 전, 책상 위에 아들을 위한 짧은 메모 한 장을 남긴다. "저녁 맛있게 먹어, 엄마 학교 다녀올게." 가방을 고쳐 메고 학교를 향해 걷기 시작한다. 내 발걸음 위로 쏟아지는 저무는 붉은 노을은 오늘 하루를 치열하게 버틴 나에게 주는 훈장이자, 이제 막 시작될 나의 '3부 인생'을 환하게 비추는 조명이다.

강의실 문을 열면 서늘한 바깥공기와는 대조적인 훈훈한 열기가 훅 끼쳐온다.

[사회복지 법제]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습니다." 교수님의 첫마디가 가슴에 박힌다. 실습처에서 보았던 어르신들의 환경, 그분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들이 차가운 법 조항 속에 어떻게 명시되어 있는지 배우기 시작한다. 딱딱한 법전의 문구들이 어제 내가 닦아드렸던 어르신의 주름진 손등 위에 겹쳐질 때, 졸음은 달아나고 배움의 희열이 온몸을 감싼다.

이어지는 [정신건강 사회복지] 수업은 몸의 상처보다 깊은 마음의 병을 들여다본다. 인간의 정신적 역동과 환경이 어떻게 맞물리는지 배우며, 진정한 복지사로 거듭나는 길이 얼마나 험난하고 고귀한지 깨닫는다.

이렇게 두 과목의 오리엔테이션이 끝났다.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돌아오는 길, 눈은 피로로 뻑뻑할지언정 가슴속엔 낱낱이 기록된 하루의 보람이 묵직하게 들어차 있다. 하지만 나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시간, 나는 거실 한쪽 작은 책상의 스탠드를 켠다. 이제 오늘 하루의 마지막 이름, '작가'가 깨어날 시간이다. 낮 동안 포스트잇에 휘갈겨 쓴 업무의 고단함, 강의실 구석에 적어 내려간 복지 철학, 그리고 실습처에서 마주했던 어르신의 젖은 눈망울...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감정의 조각들을 문장으로 엮어낸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 고단한 일상이 단순한 노동으로 휘발되지 않도록, 내 삶에 '의미'라는 숨을 불어넣기 위해서다.

새벽 1시 반, 드디어 노트북을 닫고 오늘의 마침표를 찍는다. 아침에는 따뜻한 밥을 짓는 엄마로, 낮에는 치열하게 생존하는 직장인으로, 저녁에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학생으로 살지만 이 깊은 밤, 나는 이 삶을 관조하고 기록하는 작가로 살아 낸 다음에서야 나의 긴 하루가 비로소 끝을 맺는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면 삭신이 쑤시는 통증과 밀려오는 졸음이 엉겨 붙는다. 하루 5시간 남짓한 짧은 수면이지만, 이 시간만큼은 세상 그 누구보다 평온한 안식이다. 이 고단한 일상의 조각들이 모여 누군가의 삶을 따뜻하게 지켜줄 힘이 될 것이고, 이 기록들이 모여 언젠가 나의 '인생 책'이 될 것임을 믿기에 나는 비로소 깊은 잠 속으로 기분 좋게 잠을 청한다. 네 개의 이름을 짊어진 나의 어깨는 무겁지만, 그 무게는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아름다운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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