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함은 좋은 동기부여가 된다
어머니, 우리 ○○이는 칼질이 너무 안 늘어서 걱정이랑께요. 요리 못하는 촌닭 우째야 쓸까요.
고등학교 1학년 시절,
광주광역시에서 수도권에 있는 조리고등학교로 유학(?) 간 우리 딸내미, 학교생활 잘하고 있는지 궁금하셨던 어머니에게 담임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그렇게, 엄마에게 나의 처참한 요리 실력이 드러났다.
요리 좀 못하면 어때? 밥만 잘 먹으면 되지.
아니. 내가 다녔던 조리고등학교에서만큼은, 요리 수업 못 따라가는 것만큼 꼴통 짓거리도 없었다.
아, 엄마 한 테만큼은 정말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할머니가 투박한 손으로 무쳐 주신 나물 맛에 매료되어, 요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중학교 시절, 우수한 성적을 가지고 있었기에 소위 말하는 "안정적인 직장"을 찾기 바라는 어머니는 나의 꿈을 반대하셨다. 그러나 "본인이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기술" 한 가지만 있다면, 평생 밥벌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아버지는 나의 단순한 꿈을 지지해 주셨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 철없는 나는 그렇게 어머니를 설득해서 수도권에 위치한 (학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것일지도?) 유명 조리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우와, 다들 요리왕 비룡이다.
수도권 고등학교에 입학한 촌닭은, 한 학기 동안은 매일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매일 밤 눈물이 나오는 이유는 너무나 명확했다.
1. 다들 칼질을 너무 잘한다.
2. 나는 칼을 어떻게 잡는지도 잘 모른다.
3. 실습 선생님은 음식을 가장 늦게 만드는 학생에게 사랑의 매를 준다.
4. 나는 실습시간마다 사랑의 매를 맞는다.
5. 전국에서 모인 친구들은 이미 요리대회도 나가 봤을 정도로 요리실력이 수준급이다.
6. 나는 할머니가 무쳐주는 나물 맛을 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이 학교에 왔다.
7. 즉, 나는 지금 너무 즉흥적이고 무모한 일을 한 것만 같다.
광주에 너무 내려가고 싶어서 매일 밤 끅끅대며 울었고, 울다 지쳐 잠들면 꿈에서는 집 앞 10분 거리의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내가 나왔다. 처음에는 엄마에게 전화로 징징대다 보면 정말 광주로 내려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반응은 냉담했다.
너 이렇게 징징댈 거면 엄마한테 다시는 전화하지 마.
그 말을 듣고, 밀려오는 서운함과 동시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이제 엄마한테 전화하지 않아야겠다. 스스로 이 시간을 흘려보내야겠다.
매일 실습시간마다 이것이 음식인지, 쓰레기인지 뭔지 싶은 무언가를 만들어 내다보니, 내 옆에서 나와 비슷한 속도로 비슷한 수준의 음식을 만들어 내는 친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물론 그 친구는 나 덕분에 늘 꼴등은 면했다.)
여느 때와 같이 시간을 초과해서 음식을 후다닥 제출하러 갔는데, 그 날 만큼은 그 친구보다 빨리 음식을 제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뭔지 모를 자신감이라는 것이 생겼다. 아주 조금은.
고등학교 1학년 1학기에 나는 광주 집에서 '좋아하는 요리를 만드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고 발표하는' 과제를 했다. 사실 '좋아하는 요리'는 딱히 아니었는데, 크림스파게티를 만들었더란다. 양식 조리시간에 Roux(루)를 활용해 크림소스를 만드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떨리는 손으로 밀가루와 버터를 달달 볶은 White Roux(화이트루)에 우유를 부어 크림소스를 완성했다. 아참, 베이컨도 넣고 비장의 무기인 집에 방치되어 있던 브로콜리도 넣었다.(엇 너무 크게 썰었나? 에라 모르겠다.)
아차차, 면을 안 삶았다.
솥단지에 물을 끓이고, 소금을 적당히 넣어 간을 면수의 간을 맞춰 줘야지. 그리고 벌벌 떨리는 손으로 스파게티 면을 한 움큼 잡아넣어 삶기 시작했다.
어이쿠, 15분이 지나 버렸네.
면을 후다닥 건져 집에 있는 접시에 나름 갖춰 담고, 그 위에 크림소스를 부어 주었다.
완성!
수업시간, 내가 만든 '크림스파게티'를 나름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그래도 친구들과 한 자리에서 요리 실력으로 경쟁하던 것과는 다르게, 여러 우여곡절의 시간은 결과물에 드러나지 않았으니 나름 봐줄만하다고 생각했다. 이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것이더냐.
당시 내가 발표를 다 끝내고, 자리에 앉았을 그때였다. 앞자리에 있던 소위 말해 요리로 이름깨나 날리던 그 남자아이가 옆 친구에게 소곤대던 그 한마디를 잊을 수 없다.
야 저것 봐ㅋㅋㅋㅋ
누가 크림파스타를 저렇게 만드냐, 면 위에 그냥 소스를 부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에 이명이 들릴 만큼 무안했고, 화도 났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신랄하게 나를 비웃어준 이 친구가 너무나 고맙다. 내 인생에서 절실함이란 것을 처음 느껴볼 수 있었던 큰 계기가 되었고, 나는 그로부터 1년 반 만에 6개의 조리자격증을 취득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