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만 봐도 우린 통해
마냥 휴학을 하기에도, 그렇다고 졸업까지 학교를 계속 다니기도 싫었던 대학교 3학년 무렵,
우연히 학교에서 진행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있는 호텔학교에서 3개월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6개월 동안 관련 분야에서 인턴십을 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그 호텔학교는 꽤나 비싼 학비를 요구했고, 그런 학비를 선뜻 감당할 만큼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으나 당시에 나는 이상할 정도로 두바이에 가고 싶었다. 다신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절호의 찬스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부모님을 설득해서, 그렇게 마냥 두바이로 훌쩍 떠나봤다. 부모님의 자금 사정을 그렇게 신중하게 고려할 만큼, 당시의 나는 성숙하지 못했기에 그렇게 떠나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혼자 비행기에 올라탔다.
어두컴컴한 새벽,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공항에 도착했을 때의 후덥지근하고도 차가운 공기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덥수룩한 수염에 까무잡잡한 옷을 입은 낯선 사람들과 공항 곳곳에 퍼져있는 독특한 냄새,
그리고 오지 않는 내 수하물
저가항공을 탔기 때문이었을까, 내 수하물은 그날 도착하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렸는데 오지 않아 직원에게 물어보니, 수하물은 다음 날 도착한다고 했다. 모든 것이 낯선 상황에서 찾아온 변수 때문에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아, 수하물이 내일은 오긴 할까? 내일 당장 갈아입을 옷도 없는데 어떻게 하지?
그렇게 인생에서 두 번째로 느껴보는 막막함이 시작되었다.
요리고등학교에 처음 입학을 했을 때 나는, 요리를 못했는데..
두바이에 대책 없이 온 지금 나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나라에서 모인 세계의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자리에서도 나는 선뜻 참여할 수 없었다. 방에서 조용히 과제 혹은 영어공부만 했을 뿐..
그렇게 한두 달이 훅 지나고, 머릿속으로 영작을 하지 않고도 간단하게나마 바로 영어로 회화를 할 수 있게 된 무렵, 한 중국인 친구와 친해지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엠버(Amber).
엠버는 나와 참 비슷한 점이 많은 친구였다. 남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성격은 아니지만, 본인의 신념은 확고했고, 혼자서 시간을 잘 보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쉬는 날에 쇼핑몰에 가서 열심히 돈 쓰기 좋아하는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그 학교에 이상하리만큼 부유한 친구들이 많았다.) 그녀는 동네 마트에 가서 장 보는 것을 즐겼고, 노포 감성의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는 것도 너무나 좋아했다. 아주 마음에 들어.
우리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마트에 가서 장을 보며 하루의 고단함을 풀어냈다. 장을 보고 와서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배부르면 동네 산책을 했다.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영어로 세세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까지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대화가 막히는 상황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배려왕 그리고 감성쟁이였기 때문에, 반짝거리는 두 눈으로 '괜찮아, 말하지 않아도 너 마음 다 알아.(초롱초롱)'라고 말하며 서로를 위로해주곤 했다.
엠버는 최대한 건강하게 먹기 위해 노력하는 친구였다.
우리가 자주 가는 마트의 수산물 코너에서 저렴하게 판매하는 연어머리를 사서 구워 먹거나 맑은 탕을 끓여 먹는 것을 좋아했고(볼때기 살이 아주 맛있다며, 꼭 살을 발라서 내 수저 위에 얹어주곤 했다.), 연자육(연꽃씨)을 활용해 만든 달큼한 수프를 자주 만들어 주었다. 또한 야들야들한 토마토계란볶음도 밥상에 자주 등장했다.
그중에서도 달큼한 연자육 수프의 맛을 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흔하지 않은 연자육과 은이버섯이 들어가는데, 약간의 점도가 있는 국물에 부들부들한 은이버섯 그리고 달큼한 연자육의 맛이 매우 독특했다.
"엠버, 너의 요리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 같아."
낯선 땅에서, 낯선 음식을 통해 느껴보는 편안함이라니.
7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 엠버가 어디에서 뭘 하고 사는지 그리워진다. 지금의 나처럼, 그때의 우리를 추억하며 잘 살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