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에 대해 변명해야만 하는 선택
DINK. Double Income No Kid.
처음 저 단어를 접했을 때는 중학생 때였다. 미국의 여피족에 대한 설명과 함께, 스포츠카를 굴리며 신나게 인생을 즐기는 다소 압구정 오렌지족(옛날 단어지만 이 이상 가는 표현이 없다)같은 사람들을 설명해 놓은 페이지에 등장한 단어였다.
그리고 그 페이지의 '딩크족' 묘사는 명확하게 부정적이었던 것도 기억한다. '우린 아이 없이 인생을 즐길 거에요!' '사회적 책임은 지고 싶지 않아요!' 등의 대사도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왜곡된 것일지도.
아무튼 세월이 흘러, 그렇게 미국의 신문물(!)을 책으로 접하던 아이는 결혼을 했고, 스스로 딩크의 길을 선택할 시점에 놓였다. 딩크로 살아가는 것이 특별한 점은, 나의 선택에 대한 변명과 설명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게 되면 '왜 아이를 낳았는지'에 대한 설명은 필요 없다. 그러려니 한다. 그러나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하면 '왜 아이를 낳지 않는지'에 대한 길거나 짧은 해명이 필요하다. 어떤 방식으로건.
그런 질문을 해 오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오지랖은 때로는 죄지만, 대부분의 경우 친하지 않은 사이에서의 사적인 질문들은 '약간의 호기심 + (뭔가 어색하니 말은 해야겠는데 창의적 주제가 안 떠오르는) 어색함 브레이킹 + 사회적 매너에 대한 다소의 무심함' 콤보의 결과물이니 말이다.
다만, 질문들을 받게 되면 어쨌거나 그에 대한 답변을 생각하게 된다.
아이는 갖고 싶지 않아요. 필요하지 않거든요.
내가 말했을 때, 엄마의 등짝 스매싱이 이어졌다.
「아니, 애가 필요해서 낳는 거니? 필요해서 낳는 거야?」
「그럼 왜 낳는 거에요?」
「결혼했으면 애를 낳아야 하는 거야」
다소 무논리라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의 논쟁 아닌 논쟁을 이어가지 않은 것은, '필요하지 않다'는 말 안에 들어 있는 의미를 엄마에게 설명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삶에 있어서 아이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 본능적인 내면의 요구가 전혀 없다는 것. 나를 낳아서 길러준 모성에게 그것을 이해시키기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리고 섣불리 설명하려고 들었다가는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입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물론 그 외의 이유도 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정말 힘들 것으로 예상되고, 회사의 일부 워킹맘들이 '회사 출근 - 회사 퇴근 - 육아 출근 - 육아 퇴근 - 다시 회사 출근'으로 이어지는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을 종종 본다.
그리고 육아가 나의 평화로운 일상을 완전히 바꾸어 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도 큰 것이 사실이다. Y는 충실한 남편이자 좋은 아빠가 될 것 같지만, 현대의 맞벌이 부부에게 육아란 둘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렵다는 것을 주변에서 보고, 언론에서 듣고, 머리로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기에.
이 문제가 다시 불거졌을 때, 엄마는 새로운 논리를 들고 왔다.
「아니, 그래도 애를 낳아야지. 네가 아무리 이루고 싶은 꿈이 있고 해도..」
「아니, 나 별로 이루고 싶은 게 있어서 안 낳는 건 아닌데」
「아니, 그것도 아니면 왜 안 낳아, 왜?」
「꼭 큰 꿈이 있어야 딩크를 택하는 건 아니잖아요」
또 등짝 스매싱을 당했다. 심지어 별로 직업적 야망도 없으면서 칠렐레 팔렐레 아이 없이 자유롭게 놀러만 다니겠다고 딩크를 하냐는 거다. 중학생 때 보았던 여피족과 딩크족에 대한 묘사가 떠올랐다. 그래, 이게 일반적인 딩크에 대한 시각인 거구나.
그러나 '난 단지 자유롭게 놀러 다니고 편하게 살고 싶어서 딩크를 택한 게 아니에요!'라고 소리치고 싶지는 않다. 수많은 고려 사항 중에 미래의 경제적 자유에 대한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니까. 아이를 키우는 것은 돈이 많이 들고, 사교육 비용까지 생각하면 - 잠시나마 교육 업계에 있었던 바 조금은 알고 있다 - 꽤 감당하기가 벅찬 액수다.
다만, 저 비난이 다소 억울한 것은 '아이가 없다고 해서 서울 사는 맞벌이 부부가 돈을 펑펑 쓰며 놀러다니고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약간의 여유를 얻을 수는 있겠지.
결국, 엄마와 논쟁할 수는 없겠지만 아이가 필요하지 않아서 낳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부부의 진실에 가장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부부가 딩크의 길을 걷게 되면서, 그 길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수많은 질문들이 있었다. 우리 내부로부터, 외부로부터. 우리 편으로부터, 또는 적대적인 사람들로부터.
앞으로 쓸 글들은 그 질문들에 대한 우리 부부 나름의 답이다. (정치인도 아니고 입장 표명은 필요없지만 적어도 생각의 정리는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