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와 유교가 내게 남긴 것에 관하여
딩크의 결정을 내리기까지, 의외로 내게 초반의 장애물이 되었던 것은 남편(Y로 칭함)이 외동아들이라는 점이었다. 그것도 몸이 약하신 시어머니가 어렵게 낳고 키웠고, 사랑을 가득 받고 훌륭하게 커 주어 자랑스럽기 그지 없는 아들.
시어머니는 그런 이야기를 직접 하신 적은 없지만, 내 안에 비밀스럽게 남아 있던 주자와 유교 사상이 생각지도 못한 걱정을 하게 했다.
「우리가 딩크로 살게 되면 Y의 집안 대를 끊는 것이 아닌가. 외동아들과 결혼했다면 딩크로 살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이기적인 게 아닐까.」
유교 사상의 영향은 비단 나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친정 엄마는 말할 것도 없고, 몇몇 친구들마저 나의 비밀스런 걱정과 비슷한 이야기를 해 왔다.
「 너네 집이야 남동생이 있으니까 괜찮겠지만(?) 남편네는 곤란해 할 것 같은데, 괜찮아? 」
「 그러게.. 그런 어려움도 없지 않지 」
「 그래, 그 집안에 못할 짓이야. 설마 종갓집은 아니지? 」
「 다행히(?) 그렇진 않아 」
나는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지는 않으나 여성의 권리와 성 역할에 대해서 그래도 많은 생각을 해 왔고, 나름의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여겨왔다. 적어도 고정된 성 역할의 사회적 강요로 인해서 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꺾지는 않으리라, 혹은 나는 그런 것에는 눈을 적당히 감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니 나의 무의식 속에서 '대를 잇다' '아이를 낳아서 가문을 유지한다'는 것에 대한 걱정이 명확하게 떠오른 순간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여태 내가 생각해 왔던 스스로의 정체성과는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한 것 같았기에. 외동아들이면 어떤가? 하다 못해 종갓집 외동아들이라면, 그 사실이 나의 결정을 바꿀 수 있단 말이야?
그저 쉽게 '글쎄, 그런 건 난 상관 안 해'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성급히 결말지어 버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미 신경 쓰기 시작한 시점에서 그건 매듭을 지어야만 하는 질문이었다.
곰곰히, 좀더 냉정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지만, 적어도 임신과 출산의 결정에 있어서는 나의 입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을 사람은 나고, 그렇기에 더 중요한 결정권을 갖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자와 남자를 떠나서 어떤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관계가 나는 궁극적으로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이 경우에는 그럴 소지가 매우 커 보였다. 나중에 내가 남편을, 시댁을,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원망하지 않으리라는 자신이 없었다.
또한, 이것은 우리의 결정이다. 부부가 된 이상 임신과 출산의 문제는 아내와 남편이 공동으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문제이며, 저 생각은 오히려 Y의 주체적인 결정을 무시하는 말이 될 수 있다. 나의 일방적(?)인 죄책감이 우리의 결정에 영향을 약간 줄 수는 있겠지만, 결정적 요소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Y에게 직접 물어본 적이 있다. 혹시 내 의지가 강해 보여서, 그저 이 부분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외로 Y의 대답은 명확했다.
「우리의 삶에서는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결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을 생각하면 걱정은 되지만, 그 분들을 설득해야 하는 문제이지 결정을 뒤집는 것은 틀렸다고 생각해」
Y가 그렇게 말해 주어서 고마웠다. 끊임없이 타인의 진의를 의심하는 내 성격상 100% Y의 말에 확신을 갖고 그 마음이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으나, 적어도 우리는 부부로서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것을 믿고 갈 수 있게 되었달까.
조금 다르게 사는 것,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부부란 것이 그 선택에 대한 설명과 변명을 계속 해야 하는 점에서 다소 피곤하다고 쓴 적이 있다. 어쩌면 그게 어려운 것은 내가 '책임과 의무'라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책임과 의무, 그리고 그 권리까지 놓아버릴 정도로 내가 보헤미안적 기질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궁극적으로는 소시민에 가깝다. 그러니 내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어느 선까지 타협하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살아갈 것인가, 그게 앞으로의 선택에 주어지는 숙제라고- 지금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