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luie Oct 27. 2020

아이가 없는 자의 소외감에 대하여

'너는 아이가 없어서 몰라' '나는 아이가 없어서 몰라'

제목을 써 놓고 보니 꽤 울적한 제목이다 싶어 바탕색을 주황색으로 해 봤다. 그러나 메시지와 바탕색의 톤앤매너가 맞지 않는 기분도 좀 들어서 이래저래 색상을 바꾸고 있다보니 '뭔 짓인가' 싶다. 마치, 소외감을 실제로 느낄 때 내가 실행하는 방어기제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외당하는 건가. 아닌 건가. 자연스러운 건가. 울적해야 하는 건가.


예전에 썼던 '근데, 저 어머니 아닌데요'와도 일맥 상통하는 내용이다. 다만, 그 때의 일이 살면서 예상치 않게 부딪치는 익명의 시스템이나 친밀하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겪는 일이라면 이건 좀더 나와 긴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주는 씁쓸한 소외감이다.




사실 이 '소외감'이라는 놈은 쌍방향인 듯 하면서도 일방향인 데가 있다. 누구도 나를 따돌리지 않았지만 왠지 내가 따돌림을 받는다는 느낌, 소외당한다는 느낌 -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다? - 은 누구든 살면서 한번쯤은 받아 본 적 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오랜만에 친구들의 모임을 갖게 되었고, 그 중 친구 S는 아기를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하지만 그래도 완전히 갓난 아기는 아니라서 아이를 데리고 나올 수는 있는 상황이라고 했고,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을 예약한 나는 그래도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그녀에게 전화해서 장소를 알려주며 말했다.


「 S야, 여기 아기 의자가 있다고 해서, 준비해 달라고 했어 - 너 필요할까봐. 」

「 아, 그래? 근데 O개월밖에 안된 애가 아기 의자에 앉을 수는 없지 (호호) 하긴, 넌 아이를 안 낳았으니 아기 개월 수 이런 개념이 없긴 하겠다. 」


이 의자에 앉을 수 있는 나이는 언제부터?!


분명 악의는 전혀 없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소외된 느낌이다. 나의 자격지심인가?! 하면서 넘어가지만 소외감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직 아이가 어린 친구들은 만나면 거의 아이 이야기를 하기 바쁘다. 요즘은 그래도 조금은 알아듣지만, 문센이나 육아템,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나는 자연스럽게 '병풍'이 된다. 인간은 원래 자기가 가장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하기를 반복하는 존재이므로 아이가 있는 엄마가 아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찌 보면 그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몰래 소외감이 더 커지는 건지도 모른다. 마치 기혼자의 모임에서 남편과 시댁 뒷담화가 꽃필 때 비혼 혹은 미혼자는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고 해서 친구들을 만나기 싫다거나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든다. 이런 기분이 드는 내가 너무 자기중심적인가. 친구들은 즐거워하는데 - 그렇다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흥미도 없으니 그 주제를 피해달라고 해야 하는 건가. 친구들이 배려가 없는 건가, 내가 없는 건가 - 이래서 라이프스타일이 다른 친구들은 점점 멀어진다고 하는 건가.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음에도, 때로는 나 자신이 스스로를 소외시키기도 했다. 일상에서도, 심지어 직장에서도 말이다. 내 업무의 특성상 여러 종류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컨텐츠를 발굴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때로는 엄마들을 위한 교육 상품에 의견을 내야 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분명 내 경력에 교육 컨텐츠를 연구하고 개발했던 전적까지 있고, 사범대는 아니지만 교육학을 정식으로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자녀 교육'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늘 조심스럽다. 설사 상대가 자녀 교육의 이론적 베이스가 없고,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의견을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아이가 없는 나는 주춤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그 경험은 증거 신뢰도로 따지면 케이스가 한 두 개밖에 없는데도.


「 전 이렇게 생각해요, 물론 전 아이가 없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요. 」 라고 일단 한 수 접게 된다. 정작 상대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아이도 없는 주제에, 뭘 안다고.'라는 시선을 받게 되는 것이 두려웠고, 그래서 기획 의도와 다르게 방향이 흘러가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기가 어려웠다.


이에 대한 직장인이자 기획자로서의 고민이 꽤 깊어갈 때쯤, 당시 상사였던 K부장이 나에게 툭, 던져준 한 마디가 내 숨통을 조금 트게 했다.


「 기죽을 것 없어. 유아교육과 교수님들도 애 없는 사람들 많아. 애 없다고 연구 못하냐.」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기획자로서의 의견은 기탄없이 내고 있지만, 아직도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소외시키는 일이 가끔 있다. 그럴 때마다 다시금 생각한다. 소외시킨다, 소외당한다는 것이 뭘까. 이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지점일까,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지점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