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 Sep 17. 2020

근데 저, 어머니 아닌데요

가장 보통의 상태로서의 아이 엄마

요즘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큐레이션 서비스가 여러 분야에 퍼져 있어서, '왓챠'를 비롯한 꽤 많은 사이트에서  「당신에게 맞는 OO를 제안해 드리고 추천해 드립니다 」 라고 광고하고 있다. 생각보다 잘 맞는 경우도 있고, 무슨 헛소리인가 싶은 경우도 있었다.


그 중 유독 기억에 남는 큐레이션이 하나 있었으니, 동료들과의 점심 시간에 온라인으로 마트 쇼핑을 하다가 발견한 '당신에게 추천하는 제품'이다. 꽤 오랫동안 이용해 온 온라인 마트이니 나에 대한 정보도 많을 것이고 어쩌면 내가 매일 사는 제품 말고 더 가성비가 좋은 숨은 보석을 추천해 줄지도 몰라! 하는 생각에 한번 눌러 보았다.


몇 가지 성향 테스트 비슷한 것이 이어진 다음에, 뱅글뱅글 돌아가는 다트가 멈추더니 내게 몇 가지 제품을 추천해 주었다. 아래와 같은 멘트가 빵! 뜨면서 말이다.


오늘의 행운의 제품군은 "이유식"입니다. 프리미엄 퀄리티의 어쩌구 저쩌구


본 글의 내용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이유식 이미지


아니, 물론 아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유식에서 행운을 얻지 말라는 법은 없지. 자연에서 얻은 유기농 재료로 만들어진 이유식이 내 피부 건조증을 없애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미 비뚤어진 태도가 느껴진다


다만 나는 단 한 번도 이 마트에서 아이 관련 제품을 구매해 본 적이 없고, 아마도 이 제품군을 나에게 추천한 이유는 데이터에 기록된 나의 연령대, 그리고 성별. 다만 그 두 가지일 것을 나는 확신했다.




어렸을 때부터 둘째 가라면 서러운 노안이었던 나는 나이가 들면서는 오히려 어려 보이게 되리라는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 본 결과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그냥 내 나이로 보인다는 게 위안이다. (만약 내가 최강희 류의 서프라이즈 동안이었다면 아래와 같은 오해가 약간은 유예될 수도 있었겠지.)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디를 가든 '아이 엄마'로 가정한 상태에서 나를 대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 가정 자체는 그리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지만, 나를 다소 주춤하게 하는 것은  「 어머, 저는 아이가 있으실 줄 알았어요 」 라는 말 뒤에 따라오는 호기심의 눈빛이다. 때로는 호기심을 못 참고 물어오는 사람들도 꽤 많아서, 적당히 얼버무리며 대화를 마무리하곤 한다.


가끔은 친구에게 불평한 적도 있었다.


「 아니, 왜 다들 이 나이대의 여자는 아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요즘은 딩크도 많고 비혼도 많잖아? 」

「 싫으나 좋으나 그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네 나이대의 가장 보통의 상태라는 거겠지. 너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가 많지 않은 상태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걸로 추측하는 게 아닐까? 」


그러고 보니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예전에 들은 교육 중에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화법' 어쩌구가 있었는데, 거기서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이랬다.


'고객의 상황을 넘겨짚지 말라' - 예를 들어 30대 부부가 유아 용품 쇼핑을 하러 왔다면 어린 아이가 있는 집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녀가 있을' 거라고 미리 가정해서 대화를 걸지 말라는 것. (= 선물일 수도 있다)


당시 그 교육 내용에 대한 나의 감상은  「 저렇게 일일이 따지면 피곤해서 어떻게 사나 」 였는데, 지금에 와서 그 때의 말들이 문득 떠오른 것이다.




'아이가 없는 부부'가 내 나이대의 '가장 보통의 상태'가 되는 날은 금방 오지도 않을 것 같고, 그런 사회를 바라는 것도 전혀 아니다.


다만 생각해 본다. 사람들을 대할 때 저런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 분명 있구나. 내 삶에 닥쳐오자 비로소 느껴지는구나. 아니, 비단 '아이가 없는' 것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점들에 관해서도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이 바람나면 어쩌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