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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Aug 11. 2020

최고급 홍차를 마시고 싶어

티백보단 잎차, 그리고 잎차에도 등급이 있다

이 차도 맛있고, 저 차도 맛있고, 그 차도 시도해 볼 만 하지. 여느 때와 같이 떠들고 있던 내게 친구가 물어왔다.

 「 세상에서 제일 비싼 홍차가 뭐야? 」 「 나도 안 마셔봐서 모르겠지만, 차나무가 자라기 어렵다는 영국에서 겨우겨우 소량 생산됐다는 그 홍차가 아닐까? 근데 비싸다고 꼭 맛있고 좋은 건 아닐걸. 」 「 이왕이면 고급 홍차를 마셔 보고 싶은데, 어떤 게 좋아? 」




와인도 그랑 크뤼, 크뤼 부르조아 등의 등급이 있는 것처럼 차도 결국은 농작물이기에 수확 지역, 시즌, 그리고 찻잎의 등급에 따라 나름의 그레이드가 분류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분류는 찻잎의 모양과 크기, 그리고 가공 상태에 따른 등급이다. 다만 이 그레이드가 반드시 고품질, 저품질의 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차의 카테고라이징에 좀더 가깝다고 이해하는 것이 맞을 듯 하다.


우선 가공 상태에 따라서 홀리프(Whole Leaf), 브로큰(Broken), 패닝(Fannings), 더스트(Dust) 등급으로 나뉜다. 우선 홀리프는 말 그대로 '전체 이파리'를 의미한다. 밭에서 따 온 찻잎을 그대로 두면 '홀리프' 상태이다.


그런데 채엽(= 찻잎 따기)이 인간이 하는 수작업이다 보니 따는 와중에 망가진 잎도 수두룩하게 생겨난다. 혹은 홀리프로 채엽하였지만 잎이 억세거나 해서 그 자체로 차를 만들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래서 홀리프를 '부수어 잘게 만든' 것이 브로큰 등급이다. 사실 브로큰 등급도 워낙 크기가 다양하고 생산하는 다원이나 브랜드에서 정하기 나름이긴 하지만 보통 부숴진 잎이 3mm 내외인 것을 브로큰 등급으로 본다.


여기 보면 '브로큰'이라고 되어 있다.


위에도 썼지만 '질 좋은 봄의 햇차'로 고급차임에도 불구하고 따는 과정에서 모양이 망가진 경우도 있기 때문에 브로큰 등급이라고 해서 홀리프보다 저품질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리고 브로큰보다 더 잘게 부수어졌거나, 거의 먼지같이 갈아져 버린 차를 각각 패닝, 더스트 등급으로 칭한다. 이쯤 되면 사실 상대적으로는 품질이 낮은 차가 많은 것이 일정 부분 사실이다. 그러나 매우 유명한 '포숑Fauchon'의 '애플 티'같은 경우에는 맛도 좋고 품질도 훌륭하지만 패닝 등급의 차로 만들어지는 등 꼭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얘는 패닝이긴 한데 거의 더스트 급의 크기를 가지고 있다..


패닝과 더스트 등급의 경우 대부분 티백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잘게 갈아져 있기 때문에 그만큼 빨리 잘 우러나기도 한다. (물과 맞닿는 표면적이 넓다 - 과학 시간에 뭔가 배웠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 어떤 원리에 의해서)


보통 '티백보다 잎차가  고급이다'라고 말하는  여기서  바가 크다. 티백은 거의 더스트 등급, 잎차는 적어도 패닝+브로큰 이상을 사용하기 때문. 하지만 요즘 고급 브랜드에서는 티백에도 잎차를 넣는 경우가 많으니 100% 사실은 아니다.




하지만 이 분류보다 더 많이 사용되고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것은 잎의 크기와 모양에 따른 분류 체계이다.


TGFOP 같은 걸 혹시 홍차 제품에서 본 적이 있는가? Tippy Golden Flowery Orange Pekoe의 줄임말이다.


(확 어려운 느낌이 드니 좀 쉰다)


들어간 영어 단어를 딱 보면 느낄 수 있듯이, 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기준이지만 암튼 무진장 되게 아주 완전히 최고 등급으로 좋다는 의미를 갖다 붙일수록 점점 길어진다. 저 앞에 Super, Finest가 붙기도 하고 끝에 “1”이 붙어 더더더 좋다고 하기도 한다.


포트넘 앤 메이슨 다즐링 FTGFOP(좌), 티 게슈벤더 SFTGFOP1(우)


이건 홀리프가 얼마나 어린 싹(Orange Pekoe)이냐, 파릇파릇하고도 연하냐, 그 중에서도 '우린 찻물이 금빛이 날 정도로' 어린 싹이냐 등등의 표현으로 보면 된다. 암튼 어리고 난 지 얼마 안되어서 신선하고 품질이 좋다는 거다. 무슨 영계 백숙 전쟁같은 느낌


image from 'Teaplays.com


찻잎의 구성은 위와 같은데, 보통 고급품에 많이 사용되는 것은 오렌지 페코(Orange Pekoe) 이상 등급이다. 페코(Pekoe)만 해도 상대적으로 중급으로 치고, 소우총(Souchong)은 홀리프로는 잘 쓰이지 않는 편이다. 그래도 꼭 고급품만 먹을 만한 것은 아니며,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서 큰 잎들도 얼마든지 잘 쓰이고 있다.


참고로 오렌지 페코는 오렌지 향이 난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그 명칭의 유래가 따로 있다. '페코'는 '백호'라는 뜻인데 흰 털이 난 새싹을 의미한다. (또 어린 싹 타령인가)


그리고 '오렌지'는 네덜란드의 오라녜 나사우 왕가(Oranje-Nassau)에서 왔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유럽에 최초로 홍차를 수입해 온 국가가 바로 네덜란드이기 때문. 그래서 실제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색이 오렌지색이기도 하다. 근데 어쩌다 보니 유럽 내 홍차의 종주국은 영국에 뺏긴 아이러니.




사실 무엇이건 고급과 저급이 있게 마련이고, 홍차도 워낙 오랜 기간 동안 인류의 사랑을 받아 온 만큼 그 '줄 세우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음료이다.


말하자면 어린 싹, 새순일수록 고급 취급을 받고 비싼 것은, 그만큼 숙련된 노동자가 따야 하며, 가공도 까다로우며 짧은 기간 안에 따야 한다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맛도 신선하고 좋기 때문이겠지만, 그 '맛과 향'은 취향이 많이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 자기 입맛에 맞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그게 객관적으로 고급 품질로 인정받는 홍차인지 아닌지는 차순의 문제라고 본다.


가끔은 저렴한 가격대에 자주 마실 수 있을 만한 취향 맞는 차를 새롭게 발견하면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마치 싸고도 내 피부에 딱 맞는 화장품을 찾았을 때 '돈 굳었다'라고 느끼는 심정과 비슷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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