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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ie Aug 17. 2020

티백이라고 무시하지 마세요

편하고 맛있게 차를 우려내는 방법

제목은 저렇게 썼지만, 보통은 티백(Tea Bag)을 무시한다기보다는 '티백 차로 마셨을 때의 기억이 별로라서' 티백을 피하는 경우가 좀더 많다.


그러나 처음 차를 접하는 경로는 대부분이 티백이다. 아주 높은 확률로 동서의 스테디셀러 현미녹차, 혹은 립톤의 베스트셀러 '옐로우라벨'일 것이다. 홍차를 '꽤' 맛있게 우리는 법에서 쓴 적이 있지만, 나의 '옐로우라벨'과의 첫 경험은 쓰디썼다. 현미녹차는 약간 애매하긴 해도 괜찮았지만. 역시 우리 것이 최고인가


차를 좋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잎차(= 루스 티, loose tea)로 눈을 돌리게 되긴 하지만, 아무래도 다구가 좀 필요하다 보니 사무실 등에서 쉽게 마시기는 어렵다. 게다가 잎차를 우려 마시는 것은 나에겐 여유와 힐링의 시간인데, 대체 사무실에서는 그런 분위기가 안 난다. 영국인들은 심지어 전쟁을 치르는 중에도 티타임을 가졌다지만 난 영국인이 아니니까.


그 때 좀더 쉽게 마실 수 있는 것이 티백이다. 예쁜 브랜드의 로고와 차의 이름이 적힌 티 꽁지가 달려 있는 소포장 티백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사실 대용량으로 보리차 끓일 때 툭툭 던져 넣던 종이백도 티백이다.


티백 모양들이 다 다르다. 티 포르테(좌), 마리아주 프레르 모슬린 티백(중), 보리차(우)


요즘은 다양하게 많이 나오긴 하지만 예전에는 가장 쉽게 접할 수 있었던 형태가 종이 티백, 혹은 다소 고급진 느낌의 모슬린 티백이었다. 대표적으로 마리아쥬 프레르나 TWG의 티백은 다들 모슬린 티백이다.


왠지 모슬린 티백을 사용하고 나면 아까운 나머지 아니, 실제로 비싸기도 훨씬 비싸다! 뭐라도 한 번 더 우려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지만, 보통은 한 번 우리고 나면 그 티백의 생명은 다한다고들 한다. (차의 종류에 따라 좀 다를 순 있음)


역사적으로 보면 20세기 초 뉴욕의 차 상인 토마스 설리번이 잎차를 비단 주머니에 싸서 샘플로 보낸 것에서 티백이 유래했다고 하니, 티백 자체는 당시로서 꽤 고급스러운 제품이었을 것 같다.


그러던 것이 면직물, 합성 섬유, 종이 펄프로 티백을 만들고 그 안에 저렴한 차 위주로 넣어 공급하게 되면서 '티백 = 싸고 편하지만 그다지 고급은 아닌 차'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그러나 사실 티백도 잘만 우려내면 맛있다. 포인트는 물을 붓는 방법, 그리고 우려내는 시간이다.


머그에 티백을 넣고 뜨거운 물을 주르륵- 부은 다음에 티백을 한동안 방치했다가 철퍽철퍽 앞뒤로 흔든 뒤 티백을 버리고 마신다. 보통 많이 쓰는 방법이다. (표현에서 이미 부정적 기운이 느껴지는 듯?)


티백 위에 바로 뜨거운 물을 부으면 차의 쓴 성분이 빠르게 우러나온다. 차의 쓴 맛은 차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성질이기도 하지만, 과다할 경우 차의 맛을 해치기도 한다. 보통 추천하는 것은 물을 먼저 붓고, 티백을 살짝 담그라는 것. 들이붓는 뜨거운 물줄기와 티백이 안 닿는 게 중요하다. 얇고 성긴 티백의 경우 세찬 물줄기를 맞고 아주 가끔 찢어지기도 하는데, 그러면 티백의 간편함은 이미.. 망했어요


우려내는 시간은 보통 티백 포장지에 적혀 있다. 차에 익숙하지 않다면 포장지에 적혀 있는 것보다 약간 짧은 시간을 우리는 것도 괜찮다. 기준 시간보다 오래 우려낼 수록 차의 맛이 써진다. 쓴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크게 상관이 없을 수 있는데, 그다지 추천하지는 않는 편.


만약 깜박 잊고 시간을 넘겨 버렸다면 한 번 마셔보고, 영 별로다 싶으면 물을 더 섞거나 우유를 타면 된다. 마시는 방법은 다 있다.


비록 차의 양은 쥐똥만큼이지만 그림도 있는 친절한 니나스(좌), 취향에 따른 추천으로 배려 깊은 샹달프(우)


요즘은 티백에 고급 잎차를 넣어서 비싸게 파는 제품도 많아지고 있고, 그렇기에 티백이라고 잎차보다 별로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간편함으로 인해 티백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다고 하니, 디자인이 재미있고 예쁘며 맛도 좋은 티백이 계속 나오게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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