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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Aug 31. 2020

잘 뛰놀아야 맛있어집니다

홍차를 맛있게 만드는 마법의 점핑

제목을 쓰고 나니 문득 떠오르는 동화가 《헨젤과 그레텔》이다. 계모의 음모로 숲 속에 버려진 두 남매가 '과자로 만들어진 마녀의 집'을 발견하는데, 마녀는 두 아이를 살찌워서 잡아 먹겠다는 생각에 계속 먹을 것을 공급하다가 남매의 꾀에 넘어가 솥에 삶기고(!) 남매는 결국 자식이 없어졌는데 찾아보지도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아빠에게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동화에서 내가 꽤 흥미를 느꼈던 대목은 '맛있는 것을 많이 먹는다'가 '통통하게 살쪄서 잡아먹힌다'는 결과와 이어진다는 것이었는데, '홍차의 잎을 자유롭게 뛰놀게 한다'는 것이 결국 '차의 좋은 성분을 다 쥐어짜서 맛있게 마셔버린다'로 귀결되는 제목같아서 다소 찜찜한 감은 있다.




차를 마시는 방법, 특히 맛있게 마시는 방법의 기본 중 하나가 '찻잎의 점핑이 잘 되게 하는 것'이다. 점핑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아니고, 찻잎 위에 물을 세차게 부었을 때 찻잎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을 '점핑jumping'이라고 칭한다.


왠지 점핑이라기보다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느낌?


점핑이 되는 것은 찻잎이 물 속의 산소와 결합하여 부력 때문에 떠올랐다가, 대류 현상에 의해 위아래로 움직이게 되기 때문인데, 점핑이 되는 도중에 찻잎의 좋은 성분과 맛, 향이 골고루 우러나오게 된다. 그래서 점핑이 잘 되는 티포트에 물을 세차게 부어 주어야 하고, 산소가 많은 물을 쓰는 것이 좋다.


예전에 다구에 관한 글을 쓰면서 '둥근 모양의 도자기 티포트'를 추천한 적이 있다.

(참고글: 찻잔이 예뻐서 샀을 뿐인데)


워낙 다양한 모양의 티포트가 많지만 굳이 둥근 모양을 추천한 것은, 동글동글한 티포트가 가장 '점핑'이 잘 되기 때문이다. 삼각뿔 모양이나 네모 모양의 티포트는 상대적으로 점핑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적은 편이다.


점핑을 기본 개념으로 생각해 보면, 티백보다 잎차가 맛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잎차는 통째로 티포트 안에서 점핑을 할 수 있는 반면, 티백 안의 잎차는 티백 안에서만 점핑이 가능하다. 그래서 점핑의 공간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피라미드 모양의 티백 제품이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같은 잎차를 우린다고 해도 인퓨저 등에 넣어서 우린 잎차보다는 티포트에 넣어 우린 차가 점핑이 더 잘 되고, 좀더 좋은 성분이 많이 나오고 향과 맛이 풍부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인퓨저나 티백은 그 편리함에 있어서 잎차와 상대가 되지 않으므로 나름의 큰 장점을 갖고 있는 제품들이다.


아마드 티 피라미드 티백(좌), 동글동글한 코니쉬 웨어 티포트(우)


점핑하는 공간 뿐 아니라 물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차를 맛있게 우려내려면 산소가 많은 물을 쓰는 게 좋다. 정수기 물도 좋지만 수돗물로 우려도 충분히 맛있다. 다만 한 번 끓였던 물이나 오래 담아 두었던 물보다는 새로 받은 물을 쓰는 게 산소가 많아서 더 맛있게 우러난다. 물의 종류에 대해서는 추후에 한 번 따로 쓸 예정.


보글보글 끓인 물을 높은 곳에서 세차게 티포트를 향해 붓는다! 그런데 끓인 물이므로 너무 심하게 위에서 부으려고 하다가 다칠 수 있으니 그냥 적당히 높이 들어서 부으면 된다. 다만 지나치게 천천히 부으면 점핑이 상대적으로 잘 안 일어난다는 점.


중국의 차 쇼. 이렇게까지 높은 데서 부을 필요는 없다.. @Hello Tea Cup


이렇게 해서 찻잎이 한바탕 잘 뛰놀고 나면 예쁜 빛깔에 특색 있는 향을 풍기는 맛있는 차 한잔이 나온다. 요즘은 찻잎이 점핑하는 것을 보기 위해 투명한 유리 티포트를 많이 쓰는데, 보고 있다 보면 '차멍' 타임이 오기도 한다. 불멍만큼 효과가 있다 :D 다만 지속 시간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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