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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ie Sep 02. 2020

엄마의 유자차는 차가 아니에요

차가 아니지만 차라고 하는 차

어린 시절 기억하고 있는 외갓집은 정말로 멀었다. 자가용이 없던 시절, 멀고 먼 외갓집에 가는 방법은 덜컹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 뿐이었는데, 자고 또 자고 일어나도 아직 다 안 와서 계속 버스 안에 있어야 했던 - 그리고 계속 차멀미에 시달렸던 -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


그 고생을 겪고 나서 외갓집에 가면 그 곳에는 널찍한 텃밭 가득한 맛있는 옥수수, 상추, 그리고 뒤꼍의 높고 큰 유자 나무가 있었다. 누구나 고향집에 가면 의식과도 같이 반복하는 일이 있기 마련인데, 엄마는 항상 외갓집에 가자마자 1. 낮잠을 한숨 잔 후 곧 일어나 2. 유자 나무의 유자를 따기 시작했다. 마치 유자를 따기 위해 고용된 전문 인력처럼 엄마는 유자를 정말 잘 땄다.


「 역시 우리 OO가 오니까 유자가 제 몫을 하네, 아주 씨가 마르는구나! 」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는 외할머니의 말을 뒤로 하고 엄마는 자루 가득 유자를 따 왔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에는 유자를 씻고 소독하고 가늘게 자르고 설탕을 켜켜이 재었다. 그리고 겨우내 먹을 유자차를 몇 병이나 만들었다. 옆집 아주머니에게도 나누어 주고, 친척집에도 돌리고, 물론 내가 아프거나 감기 기운이 있을 때도 항상 유자차를 먹였다.




엄마의 유자차 뿐 아니라 생강차, 대추차, 오미자차, 쑥차, 보리차, 국화차 등 생각할 수 있는 대부분의 풀과 과일로 만들어진 많은 '차'를 마시며 살아온 내게 '사실 그것들은 정확히 말하자면 차가 아니에요' 라는 말은 다소 충격이었다.


보통 '차(Tea)'는 차나무의 싹이나 잎을 가공하여 만드는데, 차나무는 '카멜리아 시넨시스'라고 불리는 동백나무 계열의 특정한 나무이다. 즉 이 차나무에서 나온 '차'가 1%라도 들어가야 '차'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카멜리아 시넨시스Camelia sinensis


내가 줄곧 차라고 부르면서 마셔왔던 수많은 '차'중에서는 차가 아닌 것들도 많았는데, 이들의 정확한 명칭은 '인퓨전infusion' 혹은 '티젠tisane', 때로는 '대용차'이다.


'티젠'은 프랑스어인데 '약탕, (풀 등을) 달인 물'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차가 아닌 차들의 제조법을 떠올려 보았을 때 꽤 정확한 표현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차'라는 명칭이 '대용차'와 다소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지만, 국외의 경우 적어도 제품명에서는 분류가 명확한 편이다. 차가 블렌딩되어 있지 않은 허브 음료는 '인퓨전'으로 명시하고 있고, 만약 '차Tea'라고 표시된 경우에는 차가 약간이라도 섞여 있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 물론 국외, 적어도 영국에서는 일상 대화에서 '허브 인퓨전'과 '허브티'를 다 사용하긴 했다.


유자가 블렌딩된 유자차Tea (좌), 유자로 끓인 유자 인퓨전(우)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엄마가 따뜻하게 만들어 내온 유자차를 홀짝거리며 새로운 지식을 공유했다.


「 근데 이거 정확하게는 유자차가 아니래요. 」  

「 그럼 뭐라고 부르니?」

「 유자 인퓨전, 아니면 유자 티젠. 유자 대용차? 」

「 ... 그런 건 모르겠고, 난 그냥 유자차로 부를란다. 」

「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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