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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ie Oct 09. 2020

마흔, 커피는 끝났다

어째서 나는 망설임을 끝내고 차를 사랑하게 되었는가

다소 도발적인 제목이지만, 그렇다고 커피가 뭐가 문제가 있거나 마흔이 마시면 안된다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게) 커피는 끝났다, 라고 쓰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다만 이것은 어떤 차(Tea) 애호가의 극히 개인적 삶의 에피소드이자 편린일 뿐임을 밝혀둔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럴 거라고 짐작하지만, 한때 나는 커피에 빠져 있었다. 커피프린스 1호점때문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커피를 제대로 내리는 법을 배우거나, 맛있는 커피가 있다면 지리산 산자락이라도 찾아서 마시러 가는 정도의 애호가는 아니었지만, 삶의 피곤함을 위로하고 기운을 북돋는 음료로서의 커피는 내 삶에 향기로운 터치를 더해 주었다. 강배전으로 볶아 진하고 쓴 맛이 확 올라오는 커피를 하루 종일 마시면서 지내는 것이 작은 즐거움이었다. 


그러다 예견되었던, 그러나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 찾아왔는데, 학창 시절부터 나를 조금씩 괴롭혀 왔던 위장병이었다. 수많은 여성들이 겪고 있다는 - 통계에 의하면 여성이 남성보다 1.5배 정도 더 많이 경험한다고 - 병이었지만 스트레스와 잦은 다이어트로 인해서 훨씬 더 심해졌던 것이다. 


출근길에 갑자기 느낀 급성 위통과 두근거림으로 병원을 방문했던 날, 의사는 내게 권했다. 


커피도 안 드시는 게 좋아요. 정 힘드시면 다른 음료를 찾아 보세요. 


물론 저 말을 듣고 바로 식습관을 고쳤다면 내 위장은 좀더 상태가 좋아졌을 것이다. 의사의 말만 잘 들어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다만 기호 식품을 끊는 것은 적절한 대체재가 나타나지 않는 한 정말 쉽지 않은 것이었다. 약간의 망설임과 역류성 식도염 사이, 그 어딘가에 나의 커피 라이프는 위태롭게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영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면서 내게 '차(Tea)'라는 음료가 성큼 다가왔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영국에서는 확실히 차를 많이, 그리고 자주 마신다. 물론 영국인들도 커피를 무척 많이 마시고 런던에는 카페도 엄청나게 많지만, 기본적으로 내 주는 음료는 항상 차였다. 지방 도시, 교외로 갈수록 더 했다. 


또 무엇보다 커피에 비해 차가 좀더 저렴했다. 그렇지 않아도 물가가 높은 영국 생활, 가난한 유학생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싼 제품을 사서 생활비를 아껴야 했고, 저렴한 가격에 비해 질이 좋고 다양한 향을 가진 차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커피보다는 차를 마시게 된 것. 거기에 영국식 밀크티의 매력에 빠지게 되면서 사실 영국에서 지낼 때는 거의 커피를 찾지 않았던 기억이다. 


언젠가 어딘가에서 마신 밀크티. 영국식 밀크티는 아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커피 대신 차를 마시면서 확실히 어느 순간, 위와 심장이 편안해졌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커피와 차의 카페인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데, 사실 그램(g)당 카페인의 양은 커피보다 차에 더 많다. 다만 8온스(약 230ml) 커피 한 잔을 만들기 위해서는 보통 15g 원두를 쓰고, 차 300ml에 찻잎 3g이 들어가므로 한 잔당 카페인의 양을 따지면 차가 적은 것. 


커피도 추출법에 따라서 카페인의 양이 달라지듯 차도 종류에 따라서 카페인의 양이 다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용이 많으므로 별도로 글로 쓸 예정. 


영국에서 주로 마신 것은 홍차였지만,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종류 차들과 소위 허브차라고 불리는 대용차들도 셀 수 없이 많이 있어서, 마시면 마실수록 호기심과 즐거움이 커지는 음료였다. 어쩌면 커피의 대체재를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 아직 확신은 없지만 그렇게 생각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차를 마시는 생활은 당분간 계속되었는데 - 안타깝게도 차 마시는 데 드는 비용은 영국에 비해 확 올라갔다 - 가장 필요했던 것은 '티 메이트' - 차를 같이 마시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었다. 당시 내 주변 사람들 중에는 차를 즐겨 마시는 사람이 없거나, 있다고 해도 멀리 살아서 드문드문 만날 수밖에 없는 경우뿐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가면 되지. 차 동호회나 클래스, 그리고 두어 개 차 브랜드의 서포터즈를 하면서 많은 차 애호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직은 국내에서 커피에 비해 인지도나 선호도가 높지 않은 차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모종의 연결 고리를 느끼게 한다. 상대적으로 흔하지 않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동감할 것이다. 그런 모임에서 공통적으로 처음에 나오는 질문은 이것이었다. 


어쩌다가 차를 마시게 되셨어요?


생각보다 사람들의 계기는 다양했다. 나와 같이 위장병을 겪었고 상대적으로 카페인이 낮은 음료를 선택하려다가 차를 찾게 되었다는 사람들도 있고, 유럽이나 캐나다, 일본에서의 티타임 경험이 지속적으로 이어졌다는 사람, 예쁜 티포트와 잎차를 선물받아서 그걸 써 보려고 하다가 차의 세계로 빠졌다는 사람, 친구의 권유를 받고 마시게 되었다는 사람 등등. 


또한 다들 공감한 것은, 차의 맛과 향이란 커피나 술처럼 처음의 강렬함은 덜하지만 어느 정도 꾸준히 마시면서 익숙해지다 보면 어느 순간 나의 취향을 찾게 되고 그 다양함에 빠져들게 된다는 것이다. 달큰한 홍차의 맛, 상큼하고 깔끔한 녹차의 맛이나 코끝 시린 시나몬 차, 구수하고 포근한 우롱차의 맛, 고소하고 따뜻한 밀크티의 맛까지. 나 또한 그러했다. 취향을 작게나마 찾고 나니 제대로 공부도 해 보고 싶었고, 자격증도 따게 되었고, 이제는 주변에 차를 권하고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스스로 생각하건대, 앞으로도 차(Tea)와 함께 하는 생활은 평화롭고 순조롭게 계속 될 것 같다. 마흔이 지나 쉰, 예순이 되어서도 말이다. 갑자기 홍차의 관세가 100배 오르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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