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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삼삼 Jan 27. 2023

미세먼지 같은, 미세공격

 미세공격이라는 말이 있다. 영어로는 microaggression, 말 그대로 상대방이 미세하게 공격한다는 뜻이다. 대놓고 노골적이고 모욕적인 언사로 차별하거나 모욕하진 않더라도, 피해자에게는 지속적 상처를 줄 수 있는 은근한 편견과 멸시, 차별, 무시를 가리킨다. 누구나 한번쯤 당해봤을 것이다. 듣는 당사자는 기분이 나쁜데, 막상 '차별'이라 칭하기에는 약간 좀스럽고 소소해보이는 말. 그래서 제3자에게 하소연했다가 "글쎄, 그게 차별적 발언이라고?", "왜 그게 모욕적이지?" 같은 반응도 종종 듣는 말. 남에게 털어놨다가 오히려 그 미적지근한 반응에 또 다른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어쩌면 대놓고 하는 것보다 더 추잡한, 그런 말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도 미세공격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30대 여성 지혜가 거래처의 50대 남성 현수를 만났다. 현수는 지혜를 처음 보자마자 이런 말을 했다. "아니, 전화통화했을 때는 몰랐는데 실제로 만나 보니까 완전 에이스네~", "그 회사는 직원 뽑을 때 인물 순으로 뽑나봐?"라고. 일순간 얼굴이 굳어진 지혜. 여기서 현수가 잘못한 건 무엇일까? 일단, 칭찬을 빙자한 외모 평가로 지혜에게 성희롱을 했다. 그리고 미세공격을 했다. '전화통화했을 때는 몰랐다'는 지혜의 능력을 '외모를 보고서야 이해했다'고 이야기 함으로써, 취업에 성공한 30대 여성의 경쟁력이 외모에서 나온다는 성차별적 인식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떨까. 이번에는 지혜가 퇴근길에 회사 주차장을 걷고 있다. 이제 막 자신의 차에 타려는데, 바로 맞은편에서 청소 중인 40대 흑인 남성 영준과 마주쳤다. 회사 유니폼을 입은 걸로 봐선, 같은 회사 직원이다. 그런데 지혜는 문득 흑인 남성에 대한 알 수 없는 불안에 휩싸여, 후다닥 차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다. 영준은 어리둥절해하다 이내 얼굴을 찌푸린다. 여기서 지혜의 행동도 미세공격일까? 그렇다. 지혜는 영준이 흑인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가 자신을 해칠 우려가 있는 위험인물로 간주했다. 무의식 중에 있던 흑인에 대한 편견, 즉 자신을 해칠 우려가 있는 위험한 인종이라는 편견을, 처음 보는 영준에게 대입했기 때문에 그에게서 도망친 것이다.


 현실에서 미세공격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한다. 그들의 공격은, 대개는 무의식 속에 쌓인 어떤 이미지나 사회화된 가치관에서 비롯된다. 또 그 공격들 대부분은 그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이 가진 선입견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탓에, 잘못임을 깨닫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래서 미세공격은 꼭 미세먼지와 같다. 둘 다 처음에는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장기간 노출하면 상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상처와 피해를 주는, 불가한 존재다. 그리고 가해자는 스스로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모른 채 (혹은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며) 우리 주변을 동동 떠다닌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세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이상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어떤 것들이 미세공격인지를 조목조목 알고, 그것을 실천 안하면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든 이가 그렇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니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 미세공격 가해자일지도 모른다는 자기반성적 의심, 나에게로 의심의 활사위를 당겨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면서 손쉬운 해법이지 않을까. 내가 오늘 누군가와 대화하면서 상대의 얼굴을 찌푸리게 한 적 있다면, 나의 어떤 말이 문제였을지 한번쯤은 되돌이켜 보는 일. 그리고 '이 말이 상처를 줬을 수 있겠다' 싶으면, 용기를 내서 상대에게 사과하는 일. 아무 문제가 없다고 확신하다가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비차별주의자의 책을 찾아 뒤적여보는 일. 작게나마 인권 감수성을 잘 벼리려는 나와 당신의 이런 일상 속 노력이, 어쩌면 미세오염이 덜한 내일을 앞당기는 최선책일지도 모른다.



※ 참고하면 좋을 책들 : 「미세공격」 (저자 데럴드 윙 수, 리사 베스 스패니어만, 번역 김보영, 다봄교육)

「선량한 차별주의자」 (저자 김지혜,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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