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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호레 Jul 16. 2021

사회초년생의 정신의학과 방문기

마음이 아픈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정신의학과는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았다. 병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었지만, 다들 각자의 이유로 아파 보였다. 보이지 않는 아픔이었다.

‘제가 혼자.. 죽으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었는데요...’라는 말들이 진료실 너머 들려왔다. 멀리서 들려오는 그 말에 나는 왼쪽 엄지로 오른쪽 손바닥을 마구 긁어대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불안해 보이는 것이.. 누가 봐도 오늘 처음 정신과에 방문한 사람 같았을 것이다.

 

 병원을 오기 전까지 걱정했었다. 나는 아픈데 내 마음을 내가 잘 전달 못 하면 어떡하지. 모두들 다 이렇게 산다고, 별 일 아니라고, 내 마음이 나약해서 그런 거라고 의사가 말한다면.. 나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할까 고민했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나의 진단은 꽤 빨리 났다.

대한민국 우울척도 테스트 한 장을 작성했고, 왜 왔냐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바로 눈물부터 흘렸을 뿐이다.


종이 한 장에 내 증상이 검진된다는 게 허무했다.

27점. 

따라서 당신은 우울증입니다.


나의 감정 상태의 정확한 판단이 아닐지 모르겠으나, 이 복잡한 마음의 상태가 세 글자로 정의되다니.. 허무하면서도, 의사에게 내 마음의 상처를 인정받았다는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나 이제 마음껏 힘들어도 되는 건가? 나는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사람이니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답을 찾은 느낌마저 들었다. 안쓰럽게도 나는 그랬다.




 





 나는 기질 자체가 우울한 편이다. 이것을 나는 과한 리액션으로 숨기곤 하였다. 나는 나 자신을 숨기는 것에 꽤나 능숙해서 깊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를 밝다고 좋아했다. 그런 피드백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내가 정말 그런가? 잠깐 기쁜 착각에 빠졌다가 이내 다시 우울한 나로 돌아오곤 했다.

 걱정과 후회는 나에게 습관과 같았다. 나라는 가장 무서운 사감 선생님을 항상 옆에 두고 나를 채찍질하기 바빴다. 자존감에 관한 책도 무수히 읽었다.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해라. 나에 대한 기준을 낮춰라. 나에게 굉장히 필요한 말이었지만, 실천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힘들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나 스스로에게 마음껏 힘들어할 시간을 주지 못한 것 같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아. 그래도 나는 나를 사랑해주는 부모님이 계시잖아? 지금 힘들어할 때가 아니야. 내가 선택한 길이 있잖아. 공부해야지. 네가 멘탈이 약해서 그런 거야. 더 어린 나이에 더 어려운 일에도 다른 사람들은 다 이겨낸다고! 따위의 말을 나에게 끊임없이 되뇌었다. 매일 이유 없이 울면서도 나를 돌보기보단, 그냥 내가 눈물이 많은 거라도 외면했다. 내가 왜 지금 우는지, 왜 눈물이 많아졌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나는 참 나에게 잔인했다.

 나는 나조차도 내 편이 아니었기에 유치하게도, ‘내편‘이라는 말에 참 약한 사람으로 자랐다. 이렇게 나를 만든 건 나이기에 그 누구도 탓할 수 없었다. 자책의 반복. 알면서도 계속 습관처럼 나를 채찍질하는 내가 우스우면서도 무서웠다.



 우울증은 모든 일을 뒤로 미루게 했다.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도 마음이 안정된 이후를 기약하곤 했다. 그러나 나에게 마음의 안정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이런 나에게 연고지 없는 시골의 첫 사회생활은 나를 갉아먹기에 충분했다. 소리 지르는 민원들을 상대하며 내가 가장 못하는 일을 꾸역꾸역 견뎌내고 있는 생각이 들었다.


 1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나는 꾸역꾸역 적응해가고 있다. 정신의학과에서 처방받은 약은 한 번 먹고 호르몬의 큰 변화를 느껴 자발적으로 중단해버렸다. 그리고 미라클 모닝과 달리기를 시작했다. 건강하게 이겨 나고 있는 나 자신이 기특할 따름.

 


해남 할머니, 미라클 모닝의 흔적들.



하지만 분기마다 찾아와 나를 덮쳐버리는 암울한 기운은 여전히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내가 요새 뜸했지? 라며 잊을만하면 안부를 묻는 징글징글한 녀석. 서른이 되면 너를 꼭 잊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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