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지거나, 날아가거나
화려한 직장에 디자이너 패션, 금수저 약혼자까지 뉴욕에서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완벽한 삶을 일군 아니. 단 하나, 그녀에게는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었다. 이를 완벽히 숨기기 위해 오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범죄 실화 다큐멘터리 pd가 찾아오면서 평온했던 그녀의 삶에 잔잔한 파장이 일었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 일어났던 총기사건의 거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아니에게 그날의 진실에 대해 인터뷰 요청을 한다. 그러나 지옥 같던 그날의 기억을 다시 꺼내고 싶지 않은 아니는 그를 피하는데 사력을 다했다. 그녀가 그랬던 것엔 친구들에게 강간을 당한 아니를 보고 괜찮냐는 말보다 역겹다는 말이 먼저 나왔던 엄마의 역할이 컸다. 좋은 대학, 좋은 대학 커뮤니티에 소속돼 집안이 좋은 남자와 결혼하는 것만이 성공한 인생이라 믿었던 엄마는 아니를 키우기보단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녀도 그것이 옳은 삶이라 여기고 엄마의 말을 따라 살아왔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뉴욕타임스로 이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하지만 그녀의 커리어보다 본인의 커리어가 중요했던 약혼자는 아니에게 유학을 제안하며 영국행을 떠나자고 한다. 약혼자의 가족과 만난 자리에서 모욕감을 느끼기도 한다. 직장에서는 이나가 쓴 칼럼에 대해 상사는 진실이 없는 글 그저 겉을 맴돌 뿐이라며 그녀를 자극한다.
그녀는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자 생각이 든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보다 남들이 듣고 싶은 말만 하는 태엽인형까지 느껴진다. 약혼자의 할머니가 주신 비싼 반지를 만지며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던 아니는 어느 날 문득 본인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pd를 찾아갔다.
용기였다. 숨겨왔던 자신의 얘기에 소리 낸다는 것. 그리고 일궈온 것들을 한 번에 잘라낸다는 것은.
아니는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숨겨왔던 얘기들을 모두 얘기했고, 직장에서는 온전한 진실이 담긴 글을 썼으며, 약혼자에게는 이별을 고했다.
인터뷰쇼에 초대된 딸을 티비너머 멍한 표정으로 엄마는 바라보았다. 그 숨 막히는 벽을 뚫고 나와 빛나는 아니의 모습을 그녀는 그렇게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영화는 끝이 났고 올라오는 엔딩크레딧을 한참 바라봤다. 영화는 미투를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용기에 집중이 갔다. 그녀의 삶이 이전보다 순탄할 거라곤 장담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자신만이 낼 수 있는 빛을 온몸으로 내뿜고 있었다. 그렇게 온전한 본인의 발자취를 남겨낼 것이다.
소속감에 집착하던 지난날이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의 평판이, 나의 명함이 나를 멀리멀리 데려다줄 것만 같았다.
오히려 갇혀버렸다. 뻗어낸 손이 천장이 닿고, 밀어낸 발이 바닥에 닿는다. 잠시 늘어진 모양을 만들어 낼 뿐 웅크린 몸에 다시 제 모양을 만든다.
어쩌면 소속된다는 것은 갇혀버린다는 말의 예쁜 버전일지도 모르겠다.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 덕에 먹고 싶은 것 사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선물을 줄 수 있지만 문득 찾아오는 공허함이 그 반증이 아닐까.
내가 만들어낸 소속감 안 사람들과 함께 손잡고 늪에 천천히 빠지는 기분이 든다. 똑같은 속도로, 서서히..
그 손을 놓으면 더 빠른 속도로 늪에 빠질까, 아니면 세차게 하늘을 향해 날 수 있을까. 이를 확신하지 못한 자들이 오늘도 꾸역꾸역 출근을 해낸다.
무채색을 띠고 바이러스처럼 번져가는 나의 색을 끝내 지킬 수 있기를. 나의 마음 속 하고 싶은 얘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여유와, 소리 낼 수 있는 용기가 생기길. luckiest girl alive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