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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호레 Jul 08. 2023

이해를 못 하겠네

저도 진짜 이해를 시켜드리고 싶은데요..


하루종일 불특정 다수인의 불만을 듣다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과 함께 두통이 찾아온다.

각기 다른 얼굴과 목소리와 표정을 한 사람들이 각기 다른 형태의 불만을 날 향해 던진다.

피할 새도 없이 쏟아지는 날쌘 항의를 온전히 흡수해 버린 나는 출근과 함께 기분이 썩 구려졌다.

그들의 감정과 날 분리하는 게 나의 큰 숙제 중 하나. 이럴 땐 가끔 T들이 부러워..



"아가씨, 나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어. 이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해?

고개만 끄덕이지 말고 어디 한번 말을 해봐!"



오늘도 홍길동 님의 불만을 고스란히 흡수해 내는 나. 그들은 나에게 답변을 맡겨둔 사람들처럼 정답을 내놓으라고 소리친다.

있는 힘껏 귀를 막고 소리치면서 본인을 이해시키란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내가 이해시키고자 입술을 떼면 내 말을 가로막고 볼멘소리를 쏟아내기 바쁘다. 아니, 방금 이해시켜달라매요.. 뭘 들으셔야지 이해도 하시지요..



20,30년 차 선배들은 네 월급에 욕먹는 게 포함이 돼있으니 참고 견디라는 말을 즐겨하시곤 했다.

이 말을 들은 이후로는 민원인이 날 향해 욕을 할 때마다 눈앞에 ’+$$$$‘ 알림이 뜨는 상상을 가끔 하곤 했는데, 그럼 타격이 조금 덜 한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아, 그리고 너무 장황한 욕을 하시거나, 똑같은 얘기의 반복을 하실 때는 수화기를 잠깐 귀 옆으로 내려놓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늘 들켜서 빡시게 혼나기도 했다.



“야, 지금 내 얘기 안 들어???? 너 어디야! 지금 당장 찾아간다!!”




오늘은 민원 12호의 등장. 지난번에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문서를 가지고 똑같은 민원을 제기하러 오셨다.

그날 횟감에 따라 메뉴가 결정되는 일식 오마카세도 아니고 그땐 안되는데 오늘은 되는 일이 절대 될 수 없기에 나도 똑같은 표정으로 똑같은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지난번보다 조금의 넉살을 더했을 뿐.



“아이고, 아버님 또 오셨네~~ 그때 안된다고 말씀드렸던 거 같은데~ 집도 머신데 자꾸 오시면 어떡해요”



이게 문제였다. 내가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 생각이 들었던 건지, 말동무가 필요했던 건지 모르겠으나, 이제 전화번호를 내놓으라고 쩌렁쩌렁 소리친다.



“아가씨, 내가 나쁜 짓은 안 할게. 직통전화번호 줘봐. 아니, 나쁜 짓은 안 한다니까?”


  

 

 언젠가부터 ‘이해를 할 수가 없네’라는 문장에 이상하게 꽂혀버렸다. 파블로스의 개처럼 반사적으로 이해시켜야 할 답변을 찾아내야 할 것만 같았다.

이게 직업병이라는 건가.. 남들의 직업병은 조금 더 멋졌던 거 같은데.. 난 왜 이리도 노예스럽고 슬픈 거야.


퇴근하는 차 안, 생기하나 없는 표정으로 바로 앞 차의 전조등만 바라보며 브레이크를 밟아대는 내가 있다.

휴- 오늘도 끝났다. 오늘 고생했으니 집에 가서 햇반에 뜨끈한 스팸이나 올려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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