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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몬 Jul 22. 2024

소심한 비행

며칠 전 부모님 집 거실에 누워있었다. 누워서 뒹굴뒹굴하며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다 천장을 봤는데, 뭔가 이상했다. 부모님 집 거실은 네모 반듯한 편인데, 거실 천장이 묘하게 길쭉해 보였다. 그래서 집을 둘러보니, 부엌의 모습과 식탁 배치도 익숙한 듯 낯설었다. 뭐지? 하고 두리번거리다 깨달았다. 나는 꿈속에 있었다. 그 집은 내가 어릴 때 살던 집과 지금 부모님 집이 묘하게 합쳐진 모습이었다.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걸 깨닫자 내가 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당장 테라스로 가보았다. 3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래서 뛰어내려보려는데, 한 줄기 이성이 나를 붙잡았다. '혹시 모르잖아. 꿈이 아니면 어떻게 해?' 나는 얼른 1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엄마집을 올려다보았다. 아까 뛰어내려 보려고 했던 테라스가 보인다. 저기에서 뛰었다가 떨어졌다면? 휴~ 난 역시 현명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마침내 도전할 시간이 찾아왔다. 난 지면에서 폴짝 뛰어올랐다. 오? 나는 중력과 무관하게 너무나도 가볍게 지면에서 30cm 위에 떠 있었다. 아 역시 내 생각대로였다. 나는 날 수 있었다. 이제부터 서울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시간이었다. 나는 건물을 요리조리 피하며, 남산 주위를 신나게 날아다녔다. 시원한 바람에 머리가 날렸고, 난 자유를 느꼈다.


하늘을 날며 공중에 나를 맡겼는데, 문득 묘한 안락함이 느껴졌다. 나를 발끝부터 감싸 앉는 듯한 포근함에 몸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아무리 날아도 마치 진공 상태에서 나는 것처럼 머리가 나부끼지 않았고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나는 점점 날아다니는데 흥미를 잃었다. 그렇게 지면에 사뿐히 내려와 조금 전부터 날 감싼 따듯한 느낌을 느끼다 눈을 떴다. 난 내 방 침대 위에 이불을 폭 덮고 누워있었다.


하늘을 내 멋대로 날아다닐 수 있었는데 조금 더 있다 잠이 깼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있는데, 꿈에서도 겁이 많아 땅에서 폴짝 뛰었던 게 웃겨서 웃음이 났다. 꿈속에선 물리 법칙도 작용하지 않고, 부모님 집도 과거와 현재가 뒤 섞여 있었지만, 내가 겁이 많은 애라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었다. 이토록 일관적으로 겁이 많다니, 꿈속의 내가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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