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의무실에는 가정의학과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선생님이 한 분씩 계신다. 가벼운 감기 증세가 있거나, 갑자기 체하거나, 가볍게 다쳤을 때 의무실을 방문하면 진료 후 일반 의약품으로 하루치 약도 챙겨주시고 상처엔 약도 발라주신다. 증상이 나아지지 않거나 하면 처방전을 써주시기도 하고, 다른 병원을 추천해 주시기도 한다.
나는 보름 전 독감을 확진받고 이제는 다 나았다. 하지만 아직 기침을 조금 해서 내일 이비인후과에 가기 전까지 먹을 기침약을 받으려고 의무실에 갔다. 의사 선생님 진료를 받고 나온 나에게 기침약 하루치를 챙겨주시던 간호사 선생님은 내 왼쪽 손을 유심히 쳐다보셨다. 나는 그제 밤 주차장에서 스탑퍼에 발이 걸려 넘어졌었는데, 그때 왼쪽 새끼손가락에 지름 1센티 정도로 쓸린 상처가 생겼다. 그 상처에 밴드를 대충 감아놓았었는데, 간호사 선생님 눈에 띄어버린 것이다.
이 간호사 선생님은 50대 중반 정도에 야무진 인상으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인상적인 분이다. 감기 증상이 있어 의무실을 방문했는데 목이 드러난 옷을 입고 있으면, 온갖 잔소리를 하시곤 한다. "선생님, 나는 선생님 같은 사람이 제일 싫어. 아니, 감기에 걸렸는데 목을 내놓고 다니면 어떻게 해. 내가 늘 강조하죠? 목을 따듯하게 해야 해요!" 그래서 난 오늘도 의상을 체크하고 의무실을 향했다. 기침약을 받으러 가는데, 목이 훤한 옷을 입고 갔다간 또 잔소리를 한가득 들을 게 뻔했다. 오늘은 반목티를 입고 왔으니 혼날 일은 없겠네, 하면서 의무실에 간 것인데, 내 새끼손가락이 또 다른 복병이었다.
"선생님, 손 그거 뭐야. 이리 내놔봐요. 어머어머, 내가 뭐랬어요. 상처는!!!" 하고 간호사 선생님이 그 뒷말을 기다리셨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상처는...?"이라고 그저 선생님 말을 따라 했다. 간호사 선생님은 "상처는 오픈하지 않는다!!!"라고 했죠. 물론 난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말을 보태봤자 말만 길어지니, 가만히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밴드를 벗겨냈는데, 쓸린 상처 주변이 살짝 빨개져 있었다. "어머어머, 이거 보여요? 이거 빨간 거? 이게 염증이 생긴 거라고. 손은 우리가 너무 많이 사용하니까, 작은 상처도 무시하면 안 돼요. 상처는 꽁꽁 싸매놔야 해. 알겠어요?" 선생님은 내 상처에 소독약을 바르고 밴드를 감아주시면서 속사포처럼 잔소리를 쏟아내셨고 나는 그저 "넹" 하는 대답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의무실을 나섰는데, 내 새끼손가락은 습윤밴드와 방수밴드로 구부러지지 않았다.
간호사 선생님은 의무실에 나서는 나를 불러 주말에 교체해서 붙일 밴드와 소독약을 싸주셨는데, 약봉지를 들고 나서면서,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본가에 갔다 집에 가려고 나설 때 엄마가 멸치볶음이며 진미채며 과일이며 가방에 하나라도 더 넣어주려고 챙겨줄 때의 느낌이랄까? 아파서 누가 '호~'해줬으면 좋겠는 날, 그럴 땐 의무실을 방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