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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모몬 Jul 15. 2023

This is 마이클.

Hmm... You Know...

Who's 마이클? 


얼마 전 한 임원의 퇴임식이 있었다. 그는 조직에 대한 자부심과 충성심이 꽤나 높은 사람으로, 30여 년간 그 분야의 전문가로 일해왔던 사람이다. 나름 직원들과의 스킨십을 중요하게 여겨, 특별한 약속이 없는 날은 항상 돌아가면서 직원들을 점심에 초대하여 애로사항도 듣고 본인의 경험도 나누는 그런 분이었다. 그 퇴임식 날, 꽤나 잘 만들어진 그의 활약에 대한 감동적인 동영상도 준비되었고, 직원들은 모여서 박수를 치며, 감사와 존경을 표했다. 


그 모습을 보며 또 누군가는 참 유난이다라고 평한 사람도 있었는데, 항상 기념할 건더기만 있는 날이면 이런 식의 자리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그런 행사를 직접 요구한 적은 없다(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대부분의 행사는 서프라이즈로 진행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자리를 마다하거나 다음부터 준비하지 말라는 으름장을 놓지도 않고 매우 즐거워했다. 이쯤 되면 과한 의전이 문제인지 그런 자리를 내심 좋아하는 사람이 문제인지 하는 의문이 들긴 하지만 여하튼 내 기억 속 그의 전임자를 떠올려 볼 때 그가 유별났던 건 사실이다. 


마이클의 유래


우리(라고 지칭하는 내 주변의 사람들)는 그를 "마이클" 또는 "클형"이라고 지칭했다. 그의 영어 이름이 마이클인 데서 유래하였지만, 우리가 만든 건 아니다. "이 업무를 누가 시킨 것인지?" 묻자 한 과장이 "마이클이!!!"라고 분노에 차올라 대답한 걸 누군가 듣고 흉내 낸 것이 재밌어, 우리도 그를 "마이클"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보안유지에도 도움이 되는 만족스러운 별명이었다. 


마이클과 영어


마이클은 영어이름을 갖고 있을 만큼이나 영어공부에 열정이 있던 사람이었다. 나와 같은 말단 직원이 그 열정을 들어 알 정도였다. 그가 승진하기 전에 사용하던 사무실은 나의 보스의 보스 사무실과 맞닿아 있었는데 본인의 사무실에서 웅변톤으로 화상영어 수업에 참여하곤 해 나의 보스의 보스를 포함해 사무실 밖에선 심각한 화상회의가 진행 중인 줄 착각하게 만들곤 했다. 그의 음(Hmm), 유노(You know)와 같은 우렁찬 필러(fillers)를 듣게 된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만하다. 그래서 그는 영어를 잘하는 직원을 대단히 아끼기도 했다. 그런 직원들을 모아놓고 참석해야 할 국제회의 준비를 철저히 하곤 했는데, 그의 열정은 그 "아낌"을 받는 직원을 넌덜머리 나게 만들기도 했다. 그 "아낌"을 받던 직원은 이직을 했는데(마이클 때문 아님, 더 좋은 곳으로), 후에 그래도 마이클이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추억했다. 


마이클의 숲


마이클이 직원들의 이름이나 얼굴을 잘 기억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업무 보고를 받는 중 직원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자네"라고 지칭하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직원들과의 식사자리가 마련되면 메신저를 보고 직원들의 얼굴과 이름을 외워오는 성의를 보이는 사람이었다. 갑자기 성사된(또는 동원된?) 점심 식사자리에서, 그가 내 이름을 또박또박 부르며 내 생각을 물었을 때, 외워온 티가 역력하다는 생각과 함께 노력은 높이살만 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그가 직원들의 대대적 원성을 샀던 일이 있다. 연말이었다. 새해였을 수도. 모든 직원들에게 카톡으로 새해인사와 함께 "덕담"을 건넨 것. 그런데 그 덕담이라는 것이, 듣기에 따라서는, 부정적 피드백 같기도 한 것부터 무슨 말인지 단박에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까지 다양했다. 예를 들면, "000 올해 고생 많았음. 새해에는 좀 더 제너러스 해질 것" "000 올해 00가 참 좋았음. 새해에는 나무보다 숲을 볼 것". 물론 이렇게 일일이 직원들에게 카톡을 보내고 하는 것도 참 쉽지 않은 일인데, 대단하시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나무보다 숲을 보라는 게 무슨 뜻일까요?"라며 찜찜해했다. 그 뒤로 우리는 마이클놀이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뜬금없이 서로에게 "나무보다 숲을 보세요" 하는 식이었다. 


클체


마이클 놀이를 하다 보니 마이클이 보내오는 메시지에서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일단 직원들 이름 실수를 자주 했고 (은정을 은주로 부르는 식), 몇 가지 대답(굿, 좋음, 수고)을 돌려서 사용했다. 그리고 일명 날아라 슈퍼보드의 저팔계말투(~하셔)를 즐겨 사용했다. 우리는 메신저로 클체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서로의 이름을 한 글자를 틀리게 부른 후, 마이클이 자주 사용하는 클리셰를 덧붙이고, 더 나아가 "00 하셔"로 이상한 지시를 내리는 식이었다. 예를 들어 "포카칩"이라는 동료가 있다고 가정하면, "포카칭. 굿. 내방으로 설명자료 들고 올라오셔^^" 하는 식이었다. 지각을 한 동료가 메신저를 부랴부랴 켠 순간 "카칭. 늦었군. 나무보다 숲을 보셔^^"라고 보내는 식. 클체 공격은 생각보다 엄청난 공격력을 발휘했는데, 마이클이 워낙 특징적인 말투로 메시지를 보내다 보니 거의 음성지원이 되는 격으로 파급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제발 그만해 달라는 사람도 있었고, 내게 곧바로 클체로 되받아 치는 사람도 있었는데, 내가 먼저 시작을 해놓고도 클체 공격을 당하면 나도 공격당한 기분이 들어 대단히 언짢아지곤 했다. 


Goodbye 마이클


외국인과 말하기 좋아하는 마이클은 퇴임식을 마지막으로 회사를 떠났다. 내가 기억하는 마이클은 내가 통역을 해야 하는 자리에서 꽤나 나를 편안하게 해 주려고 노력하던 모습이다. 물론 우리는 마이클을 꼰대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고, 그가 과한 의전을 꽤나 좋아하는 탓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임원인 마이클에 대해서 이만큼이나 자잘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고 심지어 클체까지 사용했던 건 그에게 분명 밉지만은 않은 구석이 있었고, 그가 직원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일정 부분 성과를 이룬 덕이 아닐까 한다. 외모가 "힘든 아버지 상"이나 천재로 불리는 이가 마이클이 떠난 자리를 채울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마이클과의 이별에 다들 박수를 보낸 까닭이 하나더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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