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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Zhu Nov 27. 2019

관계는 때가 있다.

그렇지 않은 사이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

“안녕하세요. 저를 잘 모르시겠지만 제가 H 동기거든요. 결혼을 하게 돼서요”

팀 후배 K가 청첩장을 건네면서 한 말이다. K 생각과 달리 나는 그 후배가 누군지 알고 있었지만 함께 일한 적이 없긴 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당연하게 청첩장을 내밀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나 보다. 상황이 좀 우스웠지만 축하한다고 짧게 대답하며 받았고 K가 애써? 찾았을 연결고리, H를 통해서 축의금을 전달했다.


지난달은 결혼 시즌이어서 K의 것 말고도 사무실 책상에는 청첩장이 여럿 쌓여 있었다. 일일이 다시 펼쳐 보기 전에는 각각 누구의 것인지 알 수도 없다. 그래서 받았을 때 바로 확인하고 달력에 표시를 해 두는 편이지만 정신없이 업무를 보는 중에는 일단 받아 둔 채 잊기도 한다. 그렇지만 팀 사람일 경우, 경조사 안내 메일이 빠지지 않고 오므로 날짜를 놓치는 일은 거의 없다. 후배 P의 결혼 소식도 메일로 받았고 축의금을 전달했는데, 어느 날 이미 날짜가 지난 청첩장을 정리하다 P는 나에게 청첩장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같은 팀이라면서 왜 저런 상황이 생기는지 의아할 수도 있는데 워낙 팀 규모가 커서 그렇다. 나는 제조업 회사의 기술 엔지니어다. 인사에 표기된 기준으로 내 소속 팀 전체 인원은 약 오백 명 전후이다. 한 부서 인원이 오백 명이라니, 조직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짐작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만, 당연히 팀 조직도가 참으로 복잡하다. 커버하는 제조 라인이 세 곳이다. 각 라인의 엔지니어들은 담당하는 업무에 따라 공정, 설비로 나눠진다. 라인에 속하지 않고 팀장 직속으로 특화된 기술 지원이나 품질 관리 등을 하는 조직이 따로 있다. 큰 줄기가 이렇다는 거고 그 아래로도 제품이나 모듈 단위로 담당 업무는 쪼개진다. 그러니 신입사원 서너 명이 함께 부서에 들어왔어도 정작 내가 속한 그룹에 오는 친구는 단 한 명 있을까 말까이다. 인사 상 한 조직이므로 팀장 재량 하에 팀 내 인력 이동은 자유로운 편이어서 일이 년 후 함께 일할 기회가 오기도 하지만 서로 단 한 번도 만나지 않기도 한다. 그러니 이름과 얼굴은 알지만 말 한 번 섞지 않은 동료들이 있고 모르긴 몰라도 서로 한 부서인지조차 전혀 모르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나는 경험이 없지만 결혼을 한 지인들 말이 청첩장은 얼굴에 철면을 깔고 ‘아는’ 사람에게 모두 돌린다고 한다. ‘축의금을 주면 고맙고 안 줘도 그만이고’. 부서 사람들도 비슷한 기준으로 청첩을 돌리겠지, 당시는 아니어도 단 한 번이라도 함께 일한 적이 있다면 말할 것도 없고 그렇지는 않지만 사무실에서 오가며 얼굴은 익었다면 명단에 올릴 것이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 상대는 어떤지 모르지만 적어도 자기는 안다면 한 부서라는 타당한 근거를 들어 일단 건네고 볼 것이다, K의 경우처럼. 이러한 행태는 청첩장을 받는 입장인 나도 익숙해서 P와 나의 친밀도와는 상관없이 P가 청첩장을 주지 않았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안 한 것이다.




경제관념이 발달한 사람들은 촉이 서기도 했을까? 소위 시즌이라고 하는 시기에 나는 대략 축의금으로 얼마를 쓸까? 나는 사적 인간관계가 정말 좁다. 워낙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걸 잘 못하고 일대일로 깊은 관계를 맺는 쪽이다. 게다가 이미 마흔이 넘었으니 이제 친구들의 결혼은 거의 생기지 않는다. 회사 말고는 달리 소속된 곳도 없으니 축의금 지출의 대부분은 회사인데 지난 시월에는 건당 오만 원씩 대략 삼사십 쓴 거 같다. 아직 미혼이긴 하나 앞으로도 내가 청첩장을 돌릴 객관적 확률은 아주 낮을 테다. 누군가는 내게 아깝지 않느냐는 질문을 할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스노우캣 snowcat 다이어리]에서 ‘관계는 때가 있다’라는 문장을 봤다. ‘어느 시기에 맺는 관계는 그때 유의미한 관계이고 보통의 바람과는 달리 영원한 관계는 드물다’는, 문장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고, 스노우캣의 의도를 곡해했을 수도 있지만 십여 년 전 본 것을 지금도 기억하는 것을 보면 전혀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고개를 끄덕였음에 틀림없다. 그렇다. 나는 이 마음으로 축의금을 낸다. 지금 이 시기의 나의 소속이고 그 관계를 지키는 마음이다. ‘내가 A에게 줬으니 나중에 내 경조사를 치를 때 A에게 돌려받겠지’ 하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때는 그때 내가 속한 곳의 사람들이 챙겨줄 것이다. 그래도 관계다운 관계여야 하지 않냐고? 맞는 말이다. 이십 대 중 후반, 식사는 물론, 커피 한 잔도 같이 해 본 적 없던 대학 동기가 문자로 결혼 소식을 전해 오면 나도 갖은 짜증이 다 났다. 그런데 그것도 젊은 머리로 따질 기운 있을 때 얘기고 지금은 친밀도를 따졌다가 어디 모르는 곳에서 싫은 소리를 듣느니 충실히 사회적 관계 유지 비용을 지불한다. 오해는 마시라, 돈 오만 원을 펑펑 쓸 만큼 많이 벌지 않는다. 평범한 회사원이다. 그리고 관계다운 관계에 한정한다면, 친밀한(하다고 믿는) 관계는 과연 ‘때’의 논리를 벗어날까.


학교를 졸업한 지 이 년이 채 안 되었을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조사는 결혼과는 달라서 일일이 알릴 사람을 추릴 정신도, 시간도 없다. 회사에는 당시 직속 상사를 통해 알렸고 그 외 사회적 관계에 대해서도 대신 부고를 띄워줄 대표자 한 사람에게 겨우 연락했다. 친구들에게 알릴 때 평소에 없던 머뭇거림이 있었다. 갑작스럽게 내 아버지의 죽음을 직접 알려줄 만큼 친한가, 상대가 오히려 부담스러워하지는 않을까, 멈칫했던 번호들은 결국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그러는 중에도 J에게는 직접 전화를 했다. 학교가 있던 대전에서 살 때 적을 뒀던 커뮤니티에서 가깝게 지낸 후배였다. 그때도 ‘관계의 때’에 대한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J와는 어느 시기의 사회적 관계 수준은 이미 넘어선 사적인 사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실제 일 년 전, 그러니까 내가 졸업을 해서 대전을 뜬 지 이미 일 년 가까이 되었을 때, J의 결혼식에 나는 직접 걸음을 하였었다. 그 커뮤니티에 속했던 세월이 6년 반이었고, J는 더더욱 서울에서 이미 알기는 했다가 대전에서 다시 만나 가까워진 경우로 안 시간이 십 년이 넘었다. J가 커뮤니티의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해주면 정말 고마울 것이고 그렇지는 않더라도 J 본인은 조문을 오거나 적어도 부의금을 보낼 줄 알았다. 상을 치른 후 정산을 할 때 결혼식에 오만 원을 냈는데 삼만 원을 보낸 이름에 섭섭하지 않았다. 그런데 J에게는 섭섭했다. 이후 J와는 연락을 끊었다. 그리고 ‘관계의 때’는 더 견고해졌다.




지난 목요일, L의 모친상 소식을 전해 들었다. L은 5년 전 퇴사한 전 상사다. 당시 직속 상사였기에 나간 직후 몇 번 톡을 주고받은 적이 있지만 회사와 좋지 않은 모양새로 나간 경우여서 연락이 지속되지는 않았다. 이후 남자 동료들과는 다시 연락이 닿는 것 같았으나 더도 덜도 아닌 딱 상사와 부하였던 여자 후배인 나까지 술자리에 부를 리가 있었겠나. 나와는 지난 5년 끊어진 관계였다. 그런데 부고를 들었을 때 조문을 갈지 말지 고민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보통 부서 동료 조사에 오만 원을 넣는데 조의금으로 십만 원을 준비했다. 아버지 상을 치를 당시 L이 그만큼을 했었다. 그때 L은 내 직속 상사도 아니었다. 같은 라인에서 함께 공정을 담당했으나 맡은 모듈이 달랐다. 팀 규모가 있으니 부의금을 보낸 부서원 명단은 노트 한쪽을 채웠는데 거기서 그 숫자는 몇 되지 않았다. 나여서가 아니라 어느 누구든 경조사비로 기본 십만 원을 내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런데 받는 입장은 그렇지가 않더라. 삼만 원을 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넘치게 하신 분들의 이름은 잊지 않는다. 금액으로 가르는 게, 받은 만큼 갚겠다는 게 속물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그렇게 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아니 굳이 다짐하지 않아도 기억되었다.


조문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문득 평소 내 생각, ‘관계의 때’와는 맞지 않는 걸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L의 상가에 조문을 가게 한 데 십만 원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그게 전부였을까. 이 년을 매일 한 공간에서 지지고 볶던 동료였다. 그 관계가 시간이 흘렀다고 쉽게 휘발될 만큼 가볍진 않다. 5년 동안 모르고 살았고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긴 하나 다시 연락이 닿을 리 없는 쪽에 가깝다. 부고도 다른 이를 통한 것이니 못 들은 셈 치면 그만일 수도. 그런데 사람이 맺은 연이 그렇게 느슨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슬픈 일을 당한 이에게 예의를 표하는 것이 아는, 알고 지냈던 (과거형일지라도) 사람으로서 도리일 것이다.




‘관계는 때가 있다’라는 말에 여전히 공감한다. 적어도 경조사비를 주고받는 것에는 확실히 들어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바람은 조금 다르다. 사람과 사람이 맺는 진짜 관계는 때를 넘어선 무게를 지녔으면 좋겠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을 사귀기가 더 어렵다. 그래서 만나는 모든 사람과 그러하기를 욕심내지는 않는다. 비용으로 여기며 유지하는 관계에서는 당연히 기대도 않고. 다만 사람을 대할 때 예의를 갖추고 최선을 다하기를 스스로 다짐한다. 어떤 만남이 단단한 인연으로 이어질지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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