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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Zhu May 17. 2020

'200'이란 숫자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뮤지컬 전문 잡지 [더뮤지컬] 200호 발간을 축하합니다.

코로나 19로 집과 회사만 오가는 생활 두어 달 만에 시내에 나온 참이었고 김에 서점에도 들렀다. 일부러 찾지는 않지만 잡지 코너는 아무래도 화려한 표지 때문에 눈이 갈 때가 있는데 거기 [더뮤지컬] 5월호가 있었다. ‘200호’였다. 몰랐다면 모를까 ‘200’이란 숫자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샀던 때가 언제였더라......




1996년, 대학생이었던 언니가 재미난 것을 보여준대서 따라나선 게 처음이었다. 한 바탕 신나게 노래하고 춤을 추더니 끝에 가서는 뭉클한 감동까지 있었다. 촌뜨기 고등학생의 마음을 제대로 훔쳤다. 그 공연이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였다. 공연이 끝나고 간단한 개인 정보를 적고 왔더니 당시 제작사였던 TNS에서 얼마간 뮤지컬 홍보책자를 보내왔었다. 내용이라야 간략한 작품 소개가 전부였지만 함께 실린 공연 사진들은 늘 흥미로웠고, 그래서 언젠가부터 오지 않자 괜히 섭섭했다. 몇 년 뒤 아쉽고 궁금한 마음에 검색하다 알게 되었다. TNS에서 분리된 회사, 클립서비스에서 뮤지컬 전문 잡지 [더뮤지컬]을 발행하고 있었다. 바로 구독신청을 했고, 2003년 1월 처음 책을 받았다. 16호였다.


시동이 걸렸다. [사랑은 비를 타고]가 지핀 불씨가 작지는 않아서 기회만 되면 뮤지컬을 찾아보긴 했다. 그러나 [더뮤지컬] 때문에 확실히 심화되었다. 스스로 ‘전문’이라 타이틀을 붙인 잡지였다. 홍보성의 짧은 기사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퀄리티 정보가 가득했다. 내용이 담고 있는 주제, 음악의 특징, 제작진과 배우의 면면까지, 참으로 꼼꼼히 작품을 소개했다. 취향 저격하는 작품이 있으면 극장으로 갔다. 기자들이 강력 추천한다면 더욱 주저할 게 없었다. 나보다 뮤지컬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임에 틀림없었으므로 성공률은 높을 것이었다. 실제로 덕분에 나는 [쓰릴 미], [스위니 토드], 등의 한국 초연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작품을 고를 때만 도움이 됐던 게 아니다. 보고 난 후에 기사를 읽으면 그보다 차진 복습이 따로 없었다. 음악에는 전혀 문외한인데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어떻게 구성됐는지 설명해 주고 장면 속 숨은 연출 이야기도 있었다. 작품 속에서 비중이 크지 않았지만 무대에서 눈에 띄는 배우를 발견했는데 마침 인터뷰가 실려 연기에 대해  들으면 인물이 또 다르게 해석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더뮤지컬]은 나의 친절한 뮤지컬 선생님이었다. 주워들은 게 많아지니 무대에서 보이는 것도 많아졌다. 보이는 게 많다는 것은 작품을 훨씬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여러 각도에서 작품을 보니 한 권 잡지를 받았을 때 인터뷰든 리뷰든 버릴 기사가 하나도 없었다. 당연히 흥미를 돋우는 작품이 더 많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새 덕순환이었다.


[더뮤지컬]은 일상이었다.


문화계 전반을 다루는 게 아닌 한 분야, 게다가 영화나 방송만큼 대중적이지도 않은 뮤지컬이라면 그것은 ‘레어 아이템’일 수 있는데, 나에게 [더뮤지컬]은 일상이었다. 해마다 정기구독을 갱신하고 매 달 우편함에서 새 책을 꺼내 드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누가 검사를 하는 것도 아닌데 목차부터 편집후기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읽는 것도 너무 당연했고. 오래된 연인처럼 ‘애(愛)’를 의식하지 않는 ‘애’독자였달까. 그러나 일상에 안착한 연애에도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사건이 생기듯 [더뮤지컬]과도 몇 가지 기억에 남을 일들이 있다. 내가 쓴 리뷰가 잡지에 실리고 생애 첫 원고료를 받은 것이나 ‘10주년 기념 골든벨 이벤트’에서 (작품이 아닌 [더뮤지컬]에 대한 문제였다.) 단 다섯 명뿐이었다는 만점자 중 하나가 되어 확실한 애독자 인증을 받은 것은 소소할까? 독자 방담에 초대되어 [더뮤지컬]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즐거운 대화를 했던 것과, 작품 호불호를 두고 뜨겁게 토론하고 빨강 펜 난도질당하며 비평 글쓰기 지도를 받았던 [더뮤지컬] 리뷰어 1기 활동은 정말 소중한 추억이다.




집에 와 책장을 확인하니 2015년 9월호가 마지막이다. 바빠서 공연장을 직접 찾는 빈도가 현저히 줄은 때에도 계속 구독은 유지했었는데 고된 직장 생활에 치여 그마저 안 한지도 벌써 5년 전이라니, 오래 무심했구나. 200호를 펼쳤다. 코로나 19 때문에 공연계가 어려운 때라 그런지 작품 기사는 조금 적다 싶은데, 딱 시기에 맞춰 ‘공연 실황 영상’을 ‘Special’ 주제로 비중 있게 다뤄 흥미롭게 읽었다. 또 200호를 기념하여 이전에 실렸던 기사 중 100개의 기록을 선별해 모아뒀다. 예전에 읽었던 각각의 기사들이 생각나서 여러 번 웃었다. 오랜만에 다시 봤지만 여전히 ‘뮤지컬 전문 잡지’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꾸려져 있었다. 변화가 있다면 편집장이 바뀌었고 (전 편집장은 고문으로 이름을 올렸고 리뷰어 1기 활동을 담당했던 기자가 새 편집장이다.) 5년이 지나는 동안 고작 천 원이 오른 것뿐. 그런데 편집장의 ‘Editorial’ 하단에 쓰인 문구가 마음에 걸린다.


“공연계가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 [더뮤지컬] 역시 어둠으로 가득한 터널 속에서 보이지 않는 앞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달에는 ‘112쪽’이라는 독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문득 지금만 어려울까, 생각했다. 내가 처음 뮤지컬을 보기 시작한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인터넷에서 공연 정보를 찾기는 아주 쉽고, 일반 책도 e-book으로 대체되고 있는 시대다. [더뮤지컬] 기사도 대부분 웹에서도 볼 수 있다. 이런 시대에 잡지를 만드는 일이 어렵지 않을 때가 있을까. 편집장이 말하는 ‘지금’은 코로나 19의 특수한 상황을 말하는 것인 줄은 아는데, 그렇지 않은 때에도 한 달에 한 권, 책을 만드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꺼이 칠천 원을 내고 잡지를 사서 읽는 독자들을 위해 ‘112쪽’을 성의껏 채웠을 것이다. 그렇게 20년, (올해 7월이면 20주년이다.) 200권의 책을 만들어준 편집진에게 감히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야겠다. 덧붙여 십 년 전 독자 방담 때 쭉 살아남아 달라 해놓고 오래 무심했음에 미안함과 내가 뮤지컬을 사랑했던 그때 그 시절을 다시 떠올려 줌에 개인적인 고마움까지 전하고 싶다. ‘축하’라는 단어에 이 모든 마음이 담겨 [더뮤지컬]을 만드는 모든 이들이 흔쾌히 뿌듯하길 바란다.

[더뮤지컬] 200호 발간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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