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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Zhu Jun 07. 2020

이건 글이 아니라 몸부림이여

버거운 브런치, 그럼에도 지속하는 이유

“혹시 절필한 건 아니지?”

내게 브런치를 추천했고 첫 구독자가 되었으며 모든 글을 성실히 읽는 친구가 물어왔다. 그러고 보니 글을 쓰지 않은 지 한참이다. 한 시간이면 뚝딱 한 편의 글을 써내는 작가님들도 많은 듯하고 그래서 매일 한 편 이상 새 글이 올라오는 브런치도 있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다만 일주일에 한 편을 목표했고 매주 수요일 발행을 스스로에게 강제했다. 반년 이상 지켜오다 수요일을 넘기는 주가 생겼고 주말이 가기 전에라도 올렸었는데...... 브런치 9개월 차, 보름이 지나도록 단 한 문장도 쓰지 못하는 날을 맞았다.   

“거의 절필하였지”

쓰지 않을 작정은 전혀 하지 않았지만 쓸 자신이 솔직히 없었다. 글을 쓰지 못하는 시간이 훨씬 길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미 여러 번의 고비가 있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소회는 최소 일 년은 써 보고 해야지 했었는데 결국 많이 앞당겨졌다.




뭐든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가 아름답다. 브런치에도 종종 그 흐뭇한 광경이 올라온다. 작가가 되기까지 ‘안타깝게도......’로 시작되는 메일을 반복해 받는 인고를 겪었으나 어느 날 조회수 폭발을 경험하고 어느새 구독자가 OO명을 돌파했다는 화려한 피날레의 글들이다. 나는 딱 반대다. 단번에 작가 신청이 받아들여졌으니 그 까다로움을 토로하는 글들을 감히 우쭐해하며 읽었다. 자신의 도전 경험을 들어 ‘자기소개’와 ‘브런치 활동 계획’을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친절히 설명하는 글이 많았는데, 내가 썼던 것과는 차이가 있어 갸우뚱하면서도 그렇다면 제출한 샘플 글이 먹힌 게 아니겠냐며 어깨를 으쓱했다. 출간 작가도, 인플루언서도 아닌데 바로 승인이 됐으니 그때 나는 내가 정말 ‘쫌’ 쓰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의 브런치는 아름답지 못할 모양이다. 작가 신청 때 계획한 [포르투갈 여행기]를 모두 마치고도 남은 현시점, 구독자는 겨우 스무 명, 이 글을 쓰기 위해 확인한 통계를 밝히자면, 금일 조회수 ‘25’, 그래프는 참으로 잔잔하다. 쭉 그 수준이었다는 말이다.


숫자에 연연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나 ‘읽히지 않는 글은 쓸 이유가 없다.’는 류의 문장을 만나면 겨우 붙잡았던 다짐이 모래처럼 허물어졌다. 결코 쉬이 쓴 글은 아니었기 때문에 읽히고 싶었다. 조회수는 결국 노출에 기인한다. ‘조회수가 10000을 돌파했습니다!’는 알람은 받아 보지 못했지만 두세 편 천대를 넘어간 적은 있었다. 다음이나 카카오까지는 확실하지 않고 브런치 메인에 오른 글들이었다. 결국 노출의 기회는 에디터가 쥐고 있었다. 조회수가 글의 성적표 같은 거라면 에디터는 성적을 매기는 심사위원인 셈이었다. 조회수를 바라는 마음은 에디터에게로 옮겨져 언젠가부터 나는 ‘RECOMMENDED ARTICLES’에서 열심히 내 글을 찾게 되었다. 조회수도 일단 뒷전, 메인까지 오르기도 바라지 않고, 그저 거기 내 글이 있으면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은 것처럼 안심했다. 그러나 적지 않은 목록 속에서 결국 익숙한 제목을 찾지 못해 실망하는 날이 더 많았다. 흥미롭지 못한 소재였을까? 짜임새가 부족했나? 점점 쪼그라들었다.




"이건 글이 아니라 몸부림이여."

내 브런치 '작가소개'를 처음 본 회사 동료였다. ‘제조업 회사 기술 엔지니어’라고 굳이 적은 건 단지 브런치가 직업을 명시하길 권장하기 때문이었다. 그뿐이었는데, 내 직업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동료 눈에는 ‘그런 일을 하다 사무실을 나서서는 글이란 걸 쓴다.’는 게 일종의 발악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했다. ‘그게 뭐든, 아무튼 쓰겠다’는 막무가내 다짐과 아등바등하는 도마뱀 이미지를 괜히 붙였나 보다고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흘렸다.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진지할 것은 아니었으니.


그런데 ‘낙심만 쌓이는 버거운 글쓰기를 지속해야 하는가’를 고민할 때 동료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살려고 쓰는겨, 살려고’

글을 쓰지 않는다고 죽을 리야 없겠지만 뭔가를 하는 살아있는 나이길 바랐고 그게 글이었다. (직장의 일은 내가 한다기보다 월급쟁이 박수석이 한다.)


제조업 회사에서 녹을 받아 먹고사는 엔지니어입니다. 자신을 포함해 아무도 믿지 말고 데이터만 믿으라고 선배들에게 배웠고 후배들에게 가르칩니다. 업무상 작성하는 문서는 완성된 문장보다 숫자가 더 많습니다. 글쓰기와 친하지 않은 직업을 가졌고 더욱 데이터가 아닌 나를 믿고 내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염려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엔지니어도 사람이고 회사원이지만 회사 밖의 삶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염려보다 소망이 조금 더 커서 브런치 문을 두드립니다. 제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아무튼 저를 믿고 써 보려고 합니다.

- 브런치 작가 신청 시 제출한 자기소개 -


처음을 꺼내 보았다. 그때 나도 지금의 나처럼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도 쓰고 싶은 소망이 조금 더 커서 쓰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 신청서를 제출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에는 혹 승인이 되지 않더라도 쓰기는 하겠다는 다짐도 함께였다. 그 마음을 고작 9개월 만에 잊었으니 참 간사하기도 하다.


글이라면 독자가 필요한 것은 맞다. 그러나 ‘수많은’ 독자여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글은 내가 첫 독자이고, 나 말고도 어떤 강요나 혜택이 없었는데 기꺼이 구독하시는 스무 분을 가졌다. 에디터의 선택은 받지 못한 글에도 라이킷으로 공감을 표하시는 분들이 있으시니, ‘RECOMMENDED ARTICLES’은 어쩌면 에디터의 지극히 사적인 취향일지도 모른다. 신경을 완전히 끊을 수야 없겠지만 평가받으려고 쓴 글은 아니니 좀 무심해도 된다. 물론 지금 이런 마음 단속도 또 자주 빗장이 뽑힐 것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브런치를 지속해야 하는 이유는, 그 어느 때보다 깜박이는 커서 앞에서 내 손과 머리가 치열해지기 때문이다. 살아 있음이다. 그러니 다른 이유 찾지 말고 살자고 쓰자. 아무도 봐주지 않는대도 쓴다는 행위만으로 내가 살면, 돈 드는 일도 아닌데 남아도 아주 남는 장사다.


거의 절필이나 거의 계속 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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