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Zhu Jun 18. 2020

그것은 완전범죄였을까

모르는 게 약이다.

‘뾰루진가?'

안 그런 퇴근길이 있겠냐마는 유독 더 피곤했다. 생각지 못했던 일이 생겨 어제, 오늘 본래 할 업무는 손도 못 댄 채 종일 시달린 탓이다. 퇴근버스에서 눈이라도 붙였으면 하는데 머리가 등받이에 부드럽게 닿지를 못하고 거치적거렸다. 스트레스가 과해 진짜 작은 혹이라도 생겼나 싶어 양손으로 머리를 가지런히 쓸었...... 아니 쓸다 멈췄다. 설마 했는데 정말 뭐가 잡힌다. 그런데, 이 느낌적인 느낌은?

‘으, 으악!’

차마 소리는 내지 못하고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바로 손으로 움켰다 그대로 내던졌다. 이대로 그것의 행방을 모르게 되었으면, 아마 나는 그 순간의 소름을 착각이라 왜곡하고 억지로 잊었을 것이다. 굳이 실체를 확인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경우가 있다.


그러나 하필, 내동댕이쳐진 곳이 바로 옆 창틀이다. 과자 부스러기 같은 것이기를 간절히 바랐건만 인간의 촉감은 위대해서 틀리지도 않는다. 진짜 ‘그놈’이다. 한두 번 파닥거리다 날아가지는 못한 채 같은 자리에서 배를 내밀고 파르르 떨고 있었다. 직원들을 태운 통근버스는 중간에 서는 일 없이 거의 한 시간을 달리기 때문에 출발하면 바로 소등한다. 그래서 온통 까맣게 보이는 그놈이 정확히 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파리인가? 좀 더 커 보이는데?’

‘설마 벌은 아니겠지? 갑자기 날아올라 쏘기라도 하면 어쩌지?’

‘파리냐, 벌이냐, 아니면 내 곤충 사전에 있지도 않은 다른 무엇이냐’를 시작으로 그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오만 가지 생각을 했다. 우선 어떻게 내 머리에 붙어 있게 된 건지 추정했다. 스스로 날아와 앉았다면, 혹 빨간색이 그놈을 유혹했나 싶어 벌써 몇 년째 잘 입는 티셔츠를 괜히 입었다고 후회했다. 머리에서 냄새가 나는 건 아닌지도 의심했다. 매일 열심히 감는데, 게다가 무려 현빈보다 잘나 보자는 닥**헤어 샴푸인데 다 소용없다고 원망도 했다. 그렇지 않으면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었을 때 나무 위에서 수직 낙하한지도 모르겠다. 저렇게 한 자리에만 계속 있는 모양새가 이미 날아다닐 힘을 잃은 것으로 보이니 이쪽이 더 그럴듯했다. 어느 쪽이든, 왜! 어째서! 나냐고.


그러나 사실 중요한 것은 지난 일이 아니라 앞으로다. 어떻게 저 놈을 처단할 것인가. 창 밖으로 쫓았으면 좋겠는데 손잡이가 자리에서 멀다. 에어컨도 빵빵인 마당에 창문 열겠다고 수선을 피워 시선을 받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집까지 한 시간 이대로 갈 수는 없잖은가. 살려 둘 수는 단연코 없다. 잡자는 결심을 하고도 한참을 노려보기만 했다. 부연 설명하자면 나는 벌레 근처에 가지도 못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벌레를 봤을 때 눈 하나 깜짝 않는 사람도 아니다. 솔직히 너무 무서웠다. 잡으려는 찰나 파드닥 날아오르기라도 한다면, 어디 도망갈 곳도 없는 버스 안에서 나는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한참 고민 끝에 드디어 행동을 개시했다.


누구는 잠을 청하고 누구는 핸드폰으로 자신만의 유희를 즐기는 어둡고 고요한 퇴근버스, 호들갑을 떨 수는 없었다. 가장 먼저 세정제와 물티슈를 꺼내 손부터 닦았다. 그놈이 닿은 느낌이 어찌나 찝찝하던지 정말 열심히 닦았다. 다음 휴대용 티슈를 꺼내 네 겹으로 곱게 접었다. 한 장? 에이 설마, 최소 열 장은 넘게 꺼냈을 것이다. 차곡차곡 쌓으니 도톰하기가 절대 그놈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다. 숨을 죽이고 최대한 조용히, 그놈이 느끼기에 살랑바람도 없어야 한다, 다. 가. 가. 덮. 쳤. 다. 성공! 그대로 오므려 두 번, 세 번, 더 힘주어 (확실히 죽으라고) 접었더니 뭉치가 거진 탁구공만 해졌다. 잣 알맹이만 한 벌레 한 마리 품은 탁구공이라니, 어이는 없지...... 만 그제야 나는 안심했다.

‘이제 집에 갈 수 있다.'

마무리는 간단했다. 탁구공은 좌석 바구니에 임시 유기하고(가지고 내려 버스 밖에서 최종 처리했다.) 놈이 앉았었던  창틀은 물티슈로 닦아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세정제를 손에 많이도 뿌렸다. 일을 치르는 동안 직접 닿은 일 없었는데도 참으로 찝찝했던 이유다. 그리고 티슈와 세정제를 도로 가방에 넣는 것으로 거사가 끝났다.


완전 범죄(그놈도 생명이라고 죽인 게 죄라면)라고 생각했다. 내 옆자리도, 건너편 좌석도 비어 있었으니 내가 뭘 하는지 본 사람은 없었다. 혹시라도 버스 안 고요를 깰까 또 얼마나 조용히 일을 치렀는데 들켰을 리 없었다. 정말 아무도 보지 않았다는데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모든 긴장이 풀려 그제야 제대로 등받이에 딱 기대려는 순간까지는.


그때, 깨달았다. 오늘 내가 앉은 좌석이 맨 뒤에서 두 번째, 그러니까 두 턱은 높은 맨 뒷좌석에 앉은 사람이 ‘내려다보고도 남을’ 자리라는 것을! '봤을까?' 그렇다고 가정하고 내 행동을 곱씹으니, 이게 참, 뭔가 짠한데, 그런데, 그보다는 웃기다. 한참 벌레를 어쩌지 못하고 쳐다보다 티슈를 꺼내 겹겹이 접고 있는 꼴이라니. 생각은 꼬리를 물었다. 언제부터 봤으려나. 애당초 나보다 먼저 내 머리에 붙은 그놈을 발견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그 모습이 상상되어 눈을 질근 감고 말았다. 한번 보고 말 사람이면 상관없겠지만, 여기는 통근버스,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매일 출퇴근을 같이 하며 얼굴은 익은 사람들이다.

‘아냐, 아냐 못 봤을 거야, 자고 있을 수도 있고......’

차마 뒤를 돌아보지는 못한 채 애써 마음을 달랬지만 걱정은 그치지 않았다. 급기야 내일 회사 게시판에 'O시 OO행 버스, 뒤에서 두 번째, 벌레 잡던 사람'이란 글이 올라오는 상상까지.


그런데, 따지고 들면 잘못한 일은 없다. 가까운 친구면 웃자고 꺼낼 무용담이지 않는가. '웃자고', 다시 생각해도 '웃기다'는 게 안타까운 포인트이나, 절대 들켜서는 안 될 일일까. 게시판에 정말 글이 올라올 일도 없으려니와 설사 올라온들 코미디지 고발문도 아니잖는가.


그럼에도 버스에서 내릴 때 살짝 뒷사람의 표정을 살폈다.

'못 봤어, 못 봤어.'

내 멋대로 결론이다. 굳이 확인하지 않는 것이 나은 경우는, 어쩌면 그놈의 실체가 니라 바로 '지금'.

작가의 이전글 이건 글이 아니라 몸부림이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