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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Zhu Oct 10. 2020

역사를 판타지로, 이렇게나 잘.

드라마 [퐁당퐁당 LOVE] 리뷰

추석특집 방송으로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를 보게 됐다. 세종(한석규)과 장영실(최민식)의 이야기였다. 두 배우의 연기를 보기만으로 시간이 아깝지는 않은 영화였지만 이미 알고 있는 역사여서 그런지 아무래도 극적인 재미는 떨어졌다. 그래서 한 작품이 떠올랐다. 장르도, 성질도 달라 애당초 서로 비교될 수는 없지만 세종과 장영실을 소재로 전혀 새로운 재미를 안긴 웹드라마 [퐁당퐁당 LOVE]다.




주인공 장단비(김슬기)는 두려움으로 수능 고사장에 들어가지 못한다. 대신 비로 움푹 파인 물웅덩이에 발을 담그는데, 물 위로 다시 얼굴을 내밀었을 때 그곳은 기우제가 한창인 궁정이다, 사극 촬영장인 줄만 알았더니 진짜 조선. 한편 조선의 왕, 이도<세종>(윤두준)는 3년 가뭄에 기우제나 지내고 있는 게 못마땅한데 집현전 학자들의 산학 연구는 진행이 더뎌 답답하다. 그런데 특이한 차림으로 갑자기 나타난 아이가 구고현 법 <피타고라스의 정리>을 뚝딱 푸는 게 아닌가. 이도는 단비에게 미래의 산학을 전수받기로 한다.


이도는 단비로부터 미래의 산학을 전수받기로 한다.


타임슬립은 사실 새롭지 않다. 처음에야 서로 다른 시대 사람들이 만나 상대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만 지어도 재미있었지만 이제 그 정도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 또는 미래의 연결이 완벽히 설명되거나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왜 타임슬립인지는 납득되어야 한다. [퐁당퐁당 LOVE]는 주제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타임슬립을 차용했다. 극작과 연출의 김지현 피디는 어느 인터뷰에서 ‘꿈꿔도 되는 시기에 학업 때문에 자신의 가능성을 의심하는 요즘 친구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단비는 바로 그 요즘 친구, 수포자<수학포기자> 고3이다. 이도가 누구냐고 처음 물었을 때 그녀의 답은 ‘단비’가 아닌 ‘고3인데요’다. 이것은 '고삼'을 다른 의미로 아는 조선인들에게 오해를 일으키는 웃음 코드로 쓰였지만, 언뜻 ‘내’가 아닌 ‘고3’으로만 살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렇기에 갈 수 있는 대학이 없는 것은 곧 쓸모없음이 된다. 그런데 여기는 조선이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뿐인가, 태양계, 인간의 몸, 등 모르는 게 없는 고3, 단비는 과학과 수학의 월등한 실력자로 쓸모 있는 자가 된다. 그렇다면 헬조선인 현재를 떠나 조선에 가서 살라는 말인가? 아니다. 작품의 진짜 주제는 후반부 이도의 말을 통해 명확하게 전달된다. 


“사람이 쓸모가 없으면 좀 어때, 사람인데. 아직 오지 않은 날들 때문에 오늘을 버리고 도망하지 마라.

세상에서의 쓸모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거라.”


세종의 한글 창제를 당시 사대부들은 반대했다. 자신들만 알던 글을 백성 모두가 읽고 쓰게 되었을 때 그들의 입지가 불안해지기 때문이었다. 버려질까 두려워하는 신하에게 하는 이 조언은 입시를 피해 도망친 단비에게도 맞춤이었을 것이다. 현재로 돌아온 단비는 고사장으로 거침없이 뛴다. 이렇게 작품은 대한민국의 위대한 영웅, 세종대왕을 빌어 요즘 친구들을 위로하고 격려한다. 조선으로 시간 여행을 한 이유다.


현재로 돌아온 단비는 도망치지 않고 고사장으로 거침없이 뛴다. 


쓸모 얘기를 좀 더 해 보자. 세종대왕님은 쓸모가 없어도 괜찮다고 하셨다지만 현실은 또 그렇지는 않을 테니. [퐁당퐁당 LOVE]가 탁월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무심히 넘길 수도 있는 현재 단비의 일상들이 조선에서 하나같이 절묘하게 활용된다. 지 맘대로 뛰는 말을 노래방에서 신나게 불렀던 [강남스타일] 말춤으로 조련한다거나 집현전 화재의 범인을 [복면가왕]에서 목소리 맞추던 실력으로 밝혀내는 식이다. 그 어떤 사소한 행동도 쓸데없지 않다고 작품은 말하고 있다.


‘한 교시에 한 양동이’, 급기야 수업에는 관심이 없어 늘 끝나기만 가늠하느라 새는 물이 양동이를 채우는 것을 관찰했던 단비의 ‘딴짓’이 물시계의 발명으로 이어진다. 어머! 세종 시대 과학에 뛰어난 자, 단비는 장영실이었다. 무릎을 치고 말았다. 장영실의 생사는 따로 기록되지 않아 불분명하다는 것에 착안하여 미래에서 잠깐 왔다 갔다는 설정이라니. 괜히 온 것도 아니었다. ‘단비를 내려주옵소서’라는 간절한 부름에 진짜 ‘단비’가 온 것이었다. 세종과 장영실, 역사적 인물을 데려다 판타지를 만들었다. [퐁당퐁당 LOVE]는 이 어려운 작업에서 개연성을 전혀 놓치지 않았고 어느 한 장면도 허투루 쓰지 않고 메시지를 담아냈다.


이 잘 차려진 밥상을 김슬기, 윤두준, 두 배우가 또 맛있게 소화했다.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에서 귀신을 연기했던 김슬기를 두고 함께 출연했던 모 배우는 '귀신으로 살기에는 예쁜 처자'라고 했다. 김슬기의 장단비를 보니 정말 그렇다. 그녀에게는 요즘 아이의 생동감이 있다.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를 보면서 윤두준의 연기가 어색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는 일상 연기를 잘하는 거였다. 곤룡포를 입고서 축구를 하는 왕이라니, 이게 어색하지 않은 건 세종대왕마저 이웃집 오빠처럼 연기한 윤두준 때문이다. 본래 관심 밖이었던 이 배우에게 나는 두준두준하게 되었다.




2015년에 처음 방송되고 다음 해 설날특집으로 재방송됐다. 그렇게 두 번째 보고 당시 썼던 리뷰를 바탕으로 다시 썼다. 몇몇 기억이 희미한 장면들을 다시 찾아봤는데, 여전히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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