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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Zhu Sep 23. 2020

서로가 되어 제 이름대로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리뷰

‘지안 <至安>, 편안함에 이르렀나?’

‘네......  네.’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마지막 대사였다. 초반 몇 회를 빼고는 매회 눈물을 쏟게 했던 두 주인공, 동훈(이선균)과 지안(이지은)은 다행히 마지막에 편안한 미소를 지어 나를 안도하게 했다. 직접 발화되지 않고 시청자에게만 들리도록 한 저 대사를 듣고 ‘주인공 이름은 허투루 짓는 게 아니네’ 생각했었다.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를 보고서도 ‘이름’을 생각했다. 원제가 [칠월과 안생 <七月与安生>]으로 주인공들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기도 하다. 처음엔 성의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어쩌면 가장 잘 지어진 제목일지도 모르겠다.


두 주인공은 열세 살 때 처음 만난다. 영화 초반이라 그렇기도 했겠지만 이때만 해도 나는 누가 칠월이고 누가 안생인지도 정확히 몰랐다. 아니 몰라도 되었다. 때가 되면 딸의 브래지어를 직접 챙겨주는 세심한 엄마가 칠월은 있고 안생은 없지만 둘은 그냥 ‘단짝’ 일뿐 어떤 거리낌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학교 졸업 후 칠월(马思纯 Ma Sichun)과 안생(周冬雨 Zhou Dongyu)은 관객이 헷갈릴 수가 없는 게 전혀 다른 모양의 삶이다. 든든한 부모의 지지 아래 칠월은 명문고에서 학업을 이어가지만 안생은 직업학교로 가서 미용실과 클럽에서 돈을 번다. 물론 둘은 여전히 가장 친한 친구로서 함께 있을 때 웃음이 끊이지 않지만 왠지 이 우정이 순탄치는 않을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둘 사이 소가명이라는 남학생이 등장하더니 균열이 생긴다. 그러나 한 남자를 두고 두 여자가 치고받는 삼각관계로 흐르지는 않는다. 소가명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알았지만 그 마음이 ‘칠월’보다 앞서지는 않는 안생은 두 사람을 떠나기로 한다. 이후 거리를 유랑하는 안생을 보면서 그녀의 이름을 처음 생각했다. 물음표였다. 그녀가 늘 말하던 대로 자유로울지언정 절대 ‘편안할 수 없는 생’이기에, 반면 칠월은 고향에서 성실히 대학까지 마치고 취직 후 가명과의 결혼을 바라는 안정된 삶이다.


함께라면 좋을 줄만 알았는데 삐걱거리는 순간이 온다.


수통의 편지로만 서로를 그리워하다 어느 날 안생은 고향으로 돌아온다. 어린 시절처럼 칠월의 집에서 따뜻한 저녁을 보내고 둘은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함께라면 좋기만 할 줄 알았는데 삐걱거리는 순간이 온다. 숙소를 정할 때, 식당에서 주문을 할 때, 다르게 살아온 서로가 부딪친다. 당연하다. 이 우정이 평온하기만 하다면 그건 그야말로 판타지일 것이다. 사실 두 사람은 각자의 삶이 힘들고 외로웠다. 그래서 상대의 고단함은 보지 못한 채 서로가 부러웠을 것이다. 칠월은 땅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듯 가벼운 안생의 삶을 선망하고, 반대로 안생은 칠월처럼 좋은 환경 속에 발을 단단히 붙일 수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이 언제 모두 본인 선택의 결과였나, 어쩌다 보니 그렇게 흘러왔고 그 방식대로 살아야 되는 줄로 여기지 않던가. 칠월은 소가명을 찾아 베이징으로 갈 수도 있지만 고집스럽게 고향에서 그를 기다리고, 안생은 칠월을 초대할 집을 마련하는 꿈을 꾼 적이 있었지만 스물다섯까지 떠돌이로 산다.


그런데, 잠깐잠깐 나왔던 현재 안생의 모습이 문득 낯설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머리를 하나로 단정히 묶었고 표정은 차분했다. 지금 그녀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졌는데 영화는 역시 의외의 결과를 보여줬다. 칠월과 가명은 결혼을 준비했지만 결혼식날에 가명은 사라졌고, 결혼이 깨진 게 계기가 되어 칠월은 고향을 떠나 유랑을 시작했다. 안생은 남편이 나오지는 않지만 아이가 잠든 아파트에서 지내는 걸 보니 가정을 이뤘나 보다. 드디어 이름값을 한다고 생각했다. 뜨거운 칠월 <七月> 공기처럼 들뜬 유랑의 삶을 즐기는 칠월과 편안한 집에 정착한 안생 <安生>이 다행히 진짜 원하는 대로 살게 되었다고 마음을 놓았다.


안생은 유리에 비친 자신에게서 칠월을 본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기 전에 함부로 안심해서는 안되었다. 진짜 반전은 따로 있었다. 영화는 작중 칠월이 쓴 것으로 나오는 인터넷 소설을 이야기하는 액자식 구성인데, 앞선 결말은 소설 속에서다. 소설 밖 실제는, 칠월은 가명의 아이를 낳은 후 과다 출혈로 사망했고, 안생은 그 아이를 대신 키우며 산다. 그리고 인터넷 소설, 『칠월과 안생』의 진짜 작가는 안생이었다. 슬픈 결말이 야속할 차, 작중 소설과 영화의 결말이 과연 많이 다른가 의문이 들었다. 유랑의 첫걸음을 안생이 묶었던 여관에서 시작했던 칠월은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여전히 길 위에 있고 뒤돌아 섰을 때 안생이 그녀의 그림자를 밟고 서 있을 거라고 말한다. 화자는 칠월이지만 안생이 쓰는 문장이다. 아마 그녀는 소설 밖에서도 그리 살 것이다. 칠월이 어느 길 위에 있다고 믿으며, 칠월이 되어, 칠월의 그림자를 밟고. 중국어권 밖으로 나오면서 영화의 제목은 [소울메이트]가 되었다. 이것도 허투루 붙인 게 아니었다. 결국 둘은 상대방이 되어 제 이름대로 산다.


예측 가능한 신파가 없지 않았지만 여자들의 우정을 진득이 다루는 작품이 흔치 않기에 오롯이 두 사람의 감정에 집중하는 게 좋았다. 그리고 나와 친구였고, 친구인, 그녀들이 생각나는 듯도 하다.




사족 하나, 이름을 생각하다 주연 배우의 이름도 주의 깊게 봤는데, 안생 역의 배우 이름이 周冬雨 Zhou Dongyu다. 어쩜, 겨울비야.


사족 둘, 한국 리메이크 기사를 우연히 읽고 찾아본 영화다. 안생 역에 김다미가, 칠월 역에 전소니가 캐스팅되었다고 한다.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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