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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Zhu Jun 30. 2020

당신에게 묻는다면, '사랑이란?'

영화 [반쪽의 이야기] 리뷰

“쌕쌕을 함께 마시는 것”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면?’ 오래전 누가 물었을 때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대화가 진지해지길 바라지 않았고 특히 그 주제가 ‘사랑’이라면 답이 어디 쉬운가. 바람대로 상대가 헛웃음을 터뜨리는 것으로 상황은 종료되었고 그 옛날 광고가 새삼 고마웠다.


오래된 기억을 문득 떠올린 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반쪽의 이야기: The half of it] 때문이다.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러닝타임 동안 이렇게 줄기차게 ‘사랑은 OOO다.’를 떠드는 영화라니. 위인들의 명언과 성경 구절이 인용되고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서도 여러 번 얘기된다. 그렇다면 사랑에 대해 정답을 알려주는 영화냐고? 그보다는 도리어 질문을 던지는 쪽이다.




주인공 엘리는 생계를 위해 친구들의 리포트를 대신 작성해 준다. 어느 날 그녀에게 리포트가 아닌 연애편지 대필 의뢰가 들어온다. 학교 퀸카 애스터와 사귀고 싶은 미식축구팀의 폴이다. 연애편지는 진심으로 쓰여야 하므로 할 수 없다고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밀린 전기세를 해결하기 위해 결국 수락한다. 연애편지를 대신 써 준다고 잦은 만남을 갖다가 결국 엘리와 폴이 사랑에 빠지거나, 편지를 주고받던 중 엘리와 애스터가 사랑에 빠지거나. 뻔한 하이틴 로맨스를 예상했다. 그런데 이 영화, 조금 다르길 짝을 맺어주는 데 급급하지 않다. 주인공이 대단한 성취를 거두는 것도 없다. 대신 주인공들은 사랑에 대해, 관계 맺기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그 끝에서 한 뼘 성장한다.


"대화는 탁구와 같아"


폴은 그저 애스터가 예쁘고 똑똑해서 좋았다. 눈만 뜨면 그녀 생각이 나니 사랑이라 확신했고 자고로 데이트라 함은 햄버거와 감자튀김, 밀크셰이크를 함께 먹는 것이라는 데 전혀 의심이 없었다. 그러나 엘리의 연애 코치를 받으면서 그는 편지에 언급된 책을 (몇 번 잠들긴 했지만) 읽기 시작했고 대화하는 법을 익혔다. 애스터를 사랑하는 데 쏟은 이러한 노력은 결국에는 엘리를 이해하고 또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된다. 폴은 사람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엘리는 폴을 대신해 쓰는 편지의 첫 문장으로 영화 속 대사를 인용한다. 근사한 문장 몇 줄이면 50달러짜리 러브레터로 충분하리라 생각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그 문장이 인용된 것임을 애스터가 바로 알아채고 지적하는 답장을 보내오면서 편지는 한 통으로 끝나지 않게 되고, 엘리는 폴과, 그리고 편지의 상대인 애스터와 관계를 이어가게 된다. 그런데 아빠를 대신해 생계를 책임지며 무기력하게 지내왔던 엘리의 일상은 두 사람이 들어오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애스터를 관찰하고 그녀와 메신저를 주고받은 것은 폴의 연애를 돕기 위해서였지만 엘리는 묘한 기분이 든다. 또 한심하게만 생각했던 폴의 순수한 태도도 그녀에게는 낯선 것이었다. 전자와 후자의 성격이 조금 다르고 엘리에게 미친 영향의 정도도 차이가 있겠지만 양쪽의 사귐 모두 그녀를 변화시켰다. 결말에서 엘리는 애스터에게 몇 년 뒤를 기약하고, 기차를 쫓아 뛰는 폴을 보면서는 눈물을 흘린다. 분명히 전과는 달라졌다.


보통은 주인공들과의 대비를 위한 캐릭터로만 머물기 마련인 짝사랑 상대, 애스터도 영화는 소홀히 다루지 않는다. 불행할 리 없을 줄 알았던 퀸카의 삶은 나름의 고충이 있어서 그녀는 의외로 외롭고 위축돼 있는데 폴, 실은 엘리,로부터 용기를 얻는다. 나중에 폴과 엘리가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에 화가 나지만 엘리와 교감했던 시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녀는 그림을 포기했었으나 다시 미대 입시 준비를 한다.


"누가 기차를 이겨?" "슬퍼  보이는데"




‘하이틴 성장 로맨스’라고 간단히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반쪽의 이야기]라는 제목도 심상찮고 영화 도입부에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더니 내내 사랑 타령만 한 것도 미심쩍다. 아무래도 사람마다 영화에 대한 해석이 제 각각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앞서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했던 이유다. 그렇다면 감독의 진짜 의도를 파악할 재주는 없지만 ‘그래서 사랑이 뭔 거 같은데?’라고 나에게 묻는다면,


“드디어 나를 이해해 주는 또래 친구를 만난 기분이 어떤지 아세요?”

엘리의 이 대사라고 생각했다. 주인공들은 사랑과 우정 사이를 묘하게 줄타기 하지만 결국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결정적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나를 이해해 주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우리는 어쩌면 그제야 스스로를 지지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러므로 영화에 나오는 사랑의 정의 중 나의 원픽은 “넌 애쓰잖아”다. (감독이 방점을 찍고 싶은 정의는 “사랑은…… 대담한 것 : Love is …… bold” 였다는 데 심증은 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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