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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Zhu May 06. 2020

불친절할 거면, 재미라도 있던가요.

영화 [사냥의 시간] 리뷰

영화 [사냥의 시간]을 봤다. 이제훈의 팬일뿐더러, 그의 팬이 되기로 작정하게 한 영화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 작품이었다. 제작 소식을 처음 알린 후 후반 작업 중이라는 기사로 애태우기만 얼마나 오래였는지, 2월 개봉이 확정되었을 때 정말 날짜를 손꼽았는데 코로나 19로 개봉 연기, 또 두 달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봤다.


그런데, 실망하고 말았다. 기대가 컸던 탓에 미치지 못했노라고 애써 달랠 맘도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재미가 없다. 얼마나 재미가 없었나 하면 보기 시작한 지 두 시간 가까워질 때부터는 몸이 배배 꼬여 자세를 여러 번 흐트러뜨렸다. 극장이 아닌 내 집 거실인 탓이었겠지만, 긴장감은 떨어진 지 오래고 집중력은 일찌감치 잃었단 얘기다. 그래도 끝까지 본 건 아무렴 기막힌 결론이 있을 거라는, 제작진에 대한 팬심이었는데...... 정말 저한테 왜 이러세요.


경제 악화로 황폐해진 시대, 네 친구들은 한탕을 노린다. 작전은 성공했고 이제 유토피아로 떠날 일만 남았다. 그런데 한 사내가 그들을 쫓는다. 추격전이었고 게다가 맨몸 날아 차기가 아닌 총이었다. 작품성은 몰라도 시간 순삭은 너무 당연해 보였다. 그러나 이 영화가 준 확실한 깨달음은 총싸움도 이유를 알아야 재미있다. 준석(이제훈)이 물었듯이 원하는 걸 가졌음에도 한(박해수)은 왜 계속 그들을 쫓을까? 경찰인 듯 경찰 아닌 한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 그들을 죽이는 게 목적일까? 그렇기엔 5분 도망갈 시간을 준다는 게 좀 어색하다. 사냥 자체를 즐기나? 그렇다면 상수(박정민)도 함께 데려다 놓지 왜? (박정민 끝내 다시 안 나온 게 나에게는 가장 큰 반전이고 충격이었다.) 언젠가 소설 작법을 안내하는 책에서 보기를 소설은 현실과 달리 개연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당연히 영화도 그렇다. 무턱대고 쏘아대는 총소리는 조금 허망하기까지 했다.



충무로 가장 핫한 젊은 남자 배우들이 한 자리에서 인터뷰하는 것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았다. 그래서 듣기도 참 여러 번 들었던 그들 각자의 캐릭터는 똑 부러졌었다. 사건의 설계자이자 리더, 준석, 그의 오른팔이면서 분위기 메이커인 장호(안재홍), 의리뿐인 반항아, 기훈(최우식)과 정보원, 상수까지, 대단한 작당모의를 기대하게 했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고작 강도짓 해서 도박장 털기다. 비밀 통로가 그려진 설계도라도 빼오는 줄 알았더니 상수가 가져오는 정보라는 것은 겨우 건물 내 CCTV 위치다. 준석은 주동자임에는 틀림없지만 설계라고 하기엔 조악한 그림이었고 오른팔 왼팔 가리지 말고 넷이 한 마음으로 총만 휘두르면 되는 일이었다. 장호가 준석의 오른팔인 이유는 혹시 가장 먼저 동조해서일까? 기훈이 의리뿐인 건 장호가 동조하니 바로 마음을 돌려서이고?


고작 도박장을 털어도 사실 괜찮다. 영화가 추구하는 바가 애당초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머리싸움이 아니므로 작전 수행에서의 역할 분배는 없어도 그만이다. 캐릭터가 살지 못한 진짜 이유는 각자의 서사가 모두 편집되었기 때문이다. 준석은 엄마와 어떤 사연이 있어서 그리도 하와이를 꿈꾸는지,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장호에게 친구들의 의미와 또 천식을 앓도록 한 이유도 알 수 없었다. 준석과의 과거와 아마도 현재의 상수까지 설명할 수 있었을 상수 어머니의 병과 기훈네 사정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표정 하나에 만 가지 사연을 담을 수 있는 배우들이었다. 그 사연들이 설명됐다면 그들의 연기가 더 빛났을 것이다.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사냥의 이유든 인물들의 서사든, 어쩌면 그 모든 이야기들은 일부러 넣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감독이 의도한 것은 드라마가 아니고 ‘사냥의 시간’ 자체이므로. 영화 속 인물들처럼 앞뒤 따질 겨를 없이 쫓고 쫓기는 그 시간에 관객이 함께 바짝 쪼이기만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극장이 아닌 방구석 1 열이어서 조명과 사운드가 제 효과를 못 낸 것일까. 전혀 한 바탕의 쫄깃한 액션이 되지 못했다. 한은 그다지 압도적이지 않았다. 신출귀몰처럼 묘사됐지만 준석 일행이 한이 쫓아올 시간을 늘 충분히 허락한 셈이었고, 서두르지 않다가 쏘는 한 방이 멋은 있었는데 결연한 사냥 의지가 빠진 ‘겉’ 멋 같았다. 총포상 쌍둥이 형 일당과의 한 판에서도 꽤 오래 잘 싸우지만 사냥꾼으로서의 완벽한 능력을 증명하지는 못했다. 그러니 군대에서 쏴 본 게 다인 준석보다 ‘조금’ 더 숙련된 사수일 뿐인 한의 추격은 시선을 끌어당기지 못했다. 개인적인 취향 차이일지도 모른다만, 나는 점점 심드렁해졌다.


앞에서 이미 말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결말을 궁금해하는 예의를 지켰다. 그런데 한이 살아있다는 소식이 어이없게까지 들렸던 건 나뿐일까? 실력을 갈고닦아? 다시 그에게로 가는 준석을 (‘아서라’ 했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감독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나의 모자람일까? 두 시간 남짓 내내 품은 의문 부호를 한 방에 날릴 결론을 결국 포기했을 땐 차라리 상수와 기훈의 결말을 보여주길 바랐다. 그런데 이 영화 끝까지 불친절했다. 그 점 하나는 참 일관성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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