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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Zhu Apr 28. 2020

아쉬운 캐릭터, 그러나 힐링 드라마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리뷰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가 종영했다. 시청률이 높지는 않았지만 마니아층은 있었던 모양이다. 나도 첫 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꾸준히 챙겨본 시청자 중 한 사람이다. 다만 원작 소설을 좋게 읽었던 독자로서 아쉬움은 남는다.


이도우 작가의 소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첫 장을 펴고 마지막까지 단번에 읽었다. 책 읽는 속도가 그리 빠른 편은 못되고 웬만큼 재미있지 않고는 드문 경우여서, 그래서 기억이 난다. 대단한 스토리는 아니었다. 다만 두 주인공 건 피디와 공 작가가 서로에게 닿는 과정이 어찌나 아슬아슬한지 중간에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니 같은 작가의 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를 신간 코너에서 발견했을 때 당연히 주저 없었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처럼 주인공들과 함께 마음이 콩닥하지는 (이십 대에 읽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않았지만 작가의 섬세한 심리 묘사는 여전하여 역시 잘 읽혔다. 그리고 어느 날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반갑기도 했지만 염려도 되었다. 원작의 힘은 스토리보다는 문체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걱정했던 부분은 의외로 비교적 화면에 잘 담겼다. 역시 한지승 감독이었다. 드라마 [연애시대]에서 글의 결을 백이십 퍼센트 살려내어 원작 팬들의 탄성을 끌어내지 않았던가. 작품의 배경인 북현리는 한 겨울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방송 내내 따뜻한 느낌을 잃지 않았다. ‘굿나잇책방’에서 독서모임을 하는 장면들도 잘 살아서 독립서점에 대한 로망을 참 여러 번 펌프질 했다. 도시 생활에 지쳐 마음을 닫은 주인공이 한 계절을 보내며 치유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힐링 드라마로서 좋은 평이 많은 것을 보면 주인공의 변화에 시청자들도 공감했다는 것이므로 원작을 관통하는 톤은 충분히 잘 옮겨진 셈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갸우뚱하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 이야기를 전개시키기에 갈등 축에도 끼지 못했던 삼각관계를 굳이 배치한 것이나, 엄마를 꼭 직접 등장시켜 두 자매가 서로 잘했네, 못했네를 따져야 했을까 하는 점들이 그랬다. 그러나 영화도 아닌 16부작 TV 드라마이기에, 서로 사랑한다는 결론이 자명한 두 주인공만으로 끌고 갈 수는 없었다고 한다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정말 아쉬웠던 것은 캐릭터였다.


먼저 여주인공 ‘해원’의 직업은 원작과 달리 첼리스트로 설정되었다. 뽀대가 나긴 한다. 그러나 너무 가성비 낮은 선택이었다. 드라마 속 가상 인물의 직업일 뿐인데 가성비라니, 무슨 말인가 할 텐데, 작품 속에서의 기능이다. 해원이 첼리스트여서 일어나는 일은 전혀 없다. 남주인공 은섭이 해원에게 처음 반하는 순간마저도 첼로가 아니라 피아노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해원이 첼로를 제대로 연주하는 장면은 플리마켓 행사 때 사람들이 부추겨서 얼떨결에 연주하는 장면이 전부다. 없어도 드라마에 아무 영향이 없을 장면이었다. 하다못해 은섭은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다. 반면 소설 속 해원은 미술 전공자이다. 해원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어서 자연스러운 장면은 자주 나온다. 책방 굿즈로 연하장을 제작하면서 은섭은 해원에게 삽화를 부탁한 후, 그날 블로그 일기에 한 줄 쓴다. ‘그녀의 그림은 아름답습니다. 아직 보진 않았지만요.’ 은섭의 마음을 이렇게 잘 보여주다니. 또 기와집 주인 어르신들을 찾아뵈었을 때 해원은 할머니를 그린다. 이 에피소드는 사람이 불편해서 인물화는 안 그린다던 해원이 변했음을 스스로 자각하는 계기가 된다. 드라마에서는 은섭이 소설을 쓰는 이야기가 빠졌지만 작품 속에서 아주 중요한 책방 일기를 쓰는 은섭의 정체성은 확실히 글을 쓰는 사람이다. 글 쓰는 남자와 그림 그리는 여자, 이렇게 찰떡인 궁합이 있을까, 해원의 직업이 바뀐 것이 못내 아쉽다.


은섭의 경우, 겉모습은 원작과 동일했다. 그러나 은섭도 조금 아쉬웠다. 소설을 읽고 내가 느낀 은섭은 매우 건강한 인물이었다. 산에 살다 아버지가 죽은 후 입양된 사연이 있지만, 친구들이 수군대도, 그러든 말든 스스로 불행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해원과 감정을 키워가는 과정에서도 조심스럽기는 해도 주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드라마 속 은섭은 굉장히 방어적으로 나온다. 해원의 직접적인 고백을 듣고도 한참을 받아주질 않다가 결국 해원이 포기 직전까지 가서야 마음을 표현한다. 게다가 툭하면 산으로 숨는다. 해원이 은섭을 통해 온전히 치유될 수 있는 것은 은섭이 그만큼 건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드라마에서는 은섭이 너무 나약하고, 그래서 일견 더 좋아하는 쪽이 질 수밖에 없다는 연애에서 제멋대로인 해원에게 휘둘린단 생각까지 들었다. 외유내강의 매력 쩌는 캐릭터를 기대했건만 순수한 시골청년 이상이 되지 못했다.


사족이 되겠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캐릭터는 한 명 더 있다. 바로 ‘현지’다. 드라마로 옮겨지면서 추가된 캐릭터가 여럿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은섭의 동생 ‘휘’다. 드라마에서는 은섭의 양부모님과의 관계 등, 가족 간 애틋함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해서 더욱 동생 캐릭터를 넣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고생이 두 명이 되다 보니 여고생의 발랄한 분위기가 아무래도 ‘휘’ 쪽으로 많이 치우쳤다. 자연스럽게 힙합 소녀 ‘현지’는 ‘휘’의 친구, 그 이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원작에서 ‘현지’가 뱉는 말들은 다 주옥이었다. 그 대사들이 드라마에서 사라진 게 조금 아쉽다. 전개 상 필수는 아니었겠지만, 휘의 짝사랑 드립보다는 더 극에 어울리는 대사들이었지 싶다.


바람직한 독서모임 : 양  갈래 땋은 머리가 현지, 주옥같은 대사를 기대했는데......


원작이 따로 있는 작품들은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것이 원작과의 비교다. 나 또한 원작의 팬으로서 아무래도 본전 생각이 났다. 그러나 사실 원작의 따뜻한 공기를 예쁜 화면으로 잘 전달한 것만도 성공한 것이다. 몇몇 아쉬움을 완전히 거둘 수는 없지만 강원도 어느 시골의 기와지붕을 한 책방의 이미지가 더 크게 남았다. 초등학생 꼬마부터 나이 사십을 부정하는 아저씨까지 함께 책을 읽는 풍경이 못 덮을 게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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