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쁘지 않은 결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다’가 아닌 추측의 어미를 택한 건 좀체 아쉬움이 가시지 않아서다.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얘기다. 두 주인공 채송아(박은빈)와 박준영(김민재)이 단단한 사랑을 이뤘고, 상처 받더라도 계속 꿈을 꾼다는 다짐과 함께 무대 앞으로 씩씩하게 걸어 나가는 송아의 성장을 보여줬으니 꽉 닫힌 해피 엔딩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영 속이 개운하지가 않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예고편부터 착했다. 복잡하게 얽힌 요즘 드라마에 피로도가 높아지던 차, 흐뭇한 미소로 편안하게 볼 수 있을 듯해서 반가웠다. 그리고 정말 풋풋한 청춘을 착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이 가을과 어울리는 따뜻한 색감, 귀 호강시키는 클래식 음악도 좋았지만 현실과 맞닿아 있어 공감이 됐다.
송아와 준영이는 속전속결로 이어지지 않는다. 동갑이라며 주변에서 친구 하라고 분위기를 몰아줘도 두 사람은 조심스럽다. 어느 한쪽이 까불거리다 예상치 못한 스킨십이 일어나는 흔한 에피소드도 없다. 대신 둘 사이 감정이 생기는 순간들은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말과 행동에서 온다. 꼴찌 또는 연주자를 돕는 사람 정도로만 취급받던 중에서 자신을 바이올린 연주자로 대하는 준영에게 송아의 마음은 움직이고, 늘 외부의 평가가 중요했던 준영에게 연주에 대한 준영 스스로의 마음을 물어봐 준 송아는 특별해진다. 이렇듯 아주 가볍지도 아주 절절하지도 않지만 나는 주인공들과 함께 심장이 찌릿했다. 억지스러운 우연이 만든 몇 번의 심쿵 포인트로 불꽃이 튀는 것보다 훨씬 자연스럽지 않나.
갈등이 일어나는 지점도 납득이 갔다. 브람스, 슈만, 클라라의 관계가 작품의 모티프였으니 클라라 역할이었던 정경(박지현)이 준영에게 사랑과 음악, 모두에서 지독한 걸림이 될 줄은 진즉 예측이 되었었다. 재능은 있으나 피아노가 행복하지 않은 준영과 바이올린을 너무 사랑하나 재능이 없는 송아 사이가 순탄하면 그게 오히려 억지였을 테니 이 또한 안타깝지만 이해가 되었다.
그놈의 정경, 그놈의 재능
다시 말하지만 현실을 잘 반영해서 더 공감이 됐었다. 중반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작품이 끝까지 놓지 않았던 이 현실성이 후반으로 넘어가면서부터는 나를 괴롭게 했다. 12회쯤인가, 티브이를 보다 무심코 혼잣말이 튀어나왔었다. “작가가 주인공들에게 너무하네.” 박 과장(최대훈)을 비롯한 주변인들의 막말은 그렇다 치고서도, 이교수(백지원)가 무려 대전까지 중고 브로치 직거래 심부름을 시킬 때 갑질 최고치를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헉, 송아는 체임버 연주단원이 아니라니, 뒷목을 잡을 뻔했다. 준영에게도 가혹했다. 피아니스트 집에 피아노가 없는 것은 극적인 설정이라 해도 그 집, 피아노만 없는 게 아니라 답이 없다. 그 애비 낯짝 한 번 궁금하다 싶었는데 결국 어느 날엔가는 정경이가 그 애비한테 돈을 보냈다며 준영이를 잡는 장면까지 나와서 장르가 막장이었나 했다. 주인공들의 사정이 이러하니 어느 회차의 제목처럼 두 사람은 ‘다 카포 : 처음으로 되돌아가서’를 반복했다.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청춘의 시기에 일과 사랑이 어디 쉬이 풀리던가, 제자리를 돌며 한없이 지지부진한 게 사실이다. 맞다, 맞고 또 맞는데, 그런데, 답답했다. 언제나 속 시원한 사이다를 안길지 애가 타기 시작했다.
저 빌런들 그냥 두나요?
그러니 아쉬움이 남는 게다. 주요 인물들 중 한둘은 치고 나가는 한 방을 보여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경후 재단 인턴을 야무지게 해냈던 송아가 공연 기획자로, 가르치는 데 재능을 보인 정경이는 실기 강사로, 반면 수석 졸업에 빛나는 현호(김성철)는 교수가 아닌 연주자를 택한다. 각자의 길을 아주 잘 찾아 간 셈인데, 거기서 한 발만 더, 기획자 송아의 똑 부러지는 장면 하나쯤, 이왕이면 이교수를 멕이는 에피소드였으면 좋았겠다, 강사가 아닌 교수 이정경으로 송교수(길해연)를 맞닥뜨리는 건 오버였을까. 그러니까 이 드라마는 빌런들 응징조차 없다. 사실 가장 바란 건 준영이의 1등이었다. 그가 유교수(주석태)를 떠나 자기 마음대로 연주하여 오히려 그 자리에 오르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자신의 연주에 확신을 갖기를, 진심으로 재능을 축복으로 여길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음대 출신이라는 작가님은 차마 거짓을 쓸 수는 없으셨나 보다. 어떤 판타지도 없었다. 가장 현실적인 청춘들의 사랑과 성장을 그린 작품에서 왜 판타지 운운하냐고 한다면, 드라마의 역할이란 자고로 대리 만족, 그러니까 나는 말이지, 현실 다큐 말고 ‘드라마’가 보고 싶었단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정직한 결말은, 작가가 시청자에게 너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