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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Zhu Feb 24. 2021

너 누구야?

승윤님, 애프터 신청받고 고백드립니다.

[싱어게인] 우승자, 이승윤에게 단디 빠졌다.


시작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재간’이었다. ‘허니 <Honey – 박진영>’였는지 ‘연극 <연극 속에서 – 신해철>’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워낙 꺼려서 [싱어게인] 역시 초반에는 보지 않았기에 우연히 클립 영상을 본 거였는데 노래가 너무 맛있었다. 말장난 걸 듯 저음에서 발음을 짧게 끊어 대더니 내지를 땐 또 어찌나 카랑카랑 끌던지, 그야말로 ‘혹’ 했다. 이후 TOP 10을 가리는 열다섯 명의 경연부터 방송을 제대로 봤는데, 그중 원픽은 주저 없이 이승윤이었다. 심사위원들의 극찬 속 ‘All Again’였던 ‘주단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 산울림>’은 말할 것도 없고 명명식에서 짧게 부른 ‘게인 <게인 주의 – 알라리 깡숑>’까지 모든 무대가 한낱 ‘재간’이라고 하기엔 홀리는 힘이 많이 셌다.


“그런데 네가 이런 거 좋아하는 거 의외다.”

그의 파이널, ‘물 <물 – 이적>’ 클립을 본 친구 반응이었다. 이미 이승윤에게 푹 빠진 나로서는 그 반응이 의외였다. 그런데 20년 지기의 눈은 꽤나 정확해서 문득 나의 플레이 리스트 속 퍽이나 무난한 노래들과 틀을 깬다느니, 파격이니 했던 그의 음악은 결이 좀 다르기는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왜 이승윤이었을까, 취향을 넘어 마음을 잡은 무대 때문이겠지만 말재주도 한몫했지 싶다. ‘장르가 뭔가요?’라는 질문에 ‘30호’라 답하는 센스 하며, ‘주단을 깔아 놓고 수많은 72호들을 기다리겠다’ 거나 ‘틀을 깨는 음악인이라는 틀에 갇히고 싶지 않다’라며 선곡과 무대의 의의를 명확히 밝히는 솜씨는 확실히 보통이 아니었다.


만약 [싱어게인] 속 모습이 그의 전부였다면 지금쯤, 그러니까 방송이 끝난 지 보름이 더 지나고 있는 때쯤, 에는 슬슬 시들해야 맞다. 그런데 웬걸 앓이는 오히려 막방 이후 더해졌다. ‘무명’이었다지만 엄연히 ‘가수’였던 시절이 짧지 않은 탓? 덕!-적어도 지금 나에겐 덕-에 발표된 그의 노래는 제법 많았는데 이게 정말 ‘찐’이었다. 하나같이 다 좋다. 물론 뭘 들려줘도 모두 좋다 할 준비가 되어 있기도 했으나, 그러나, 가사만큼은 팬심 내려놓고도 감탄이 그저 나왔다. ‘구겨진 하루를 다려야만 잠이 들 수 있어요. <구겨진 하루를 – 이승윤>’라니, ‘숨고 싶을 땐 다락이 되어 주고 죽고 싶을 땐 나락이 되어 준다고 <달이 참 예쁘다고 – 이승윤>’ 저 운율 보소. 따로 모아 옮겨 적어 뒀다 어느 날 무심히 펼쳤을 때 어느 페이지가 나와도 위로받으리라 확신이 드는 문장들이랄까. 이후 말할 것도 없이 나의 유튜브는 그의 노래로 도배가 되었다.


‘너 누구야?’

그런 가사를 쓰고 저렇게 노래하는 사람이 궁금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감사하게도 [싱어게인]은 끝났지만 인기 폭발한 그를 부르는 곳이 많고 그의 영상과 인터뷰를 찾아보는 게 요즘 일상이 되었다. 유희열이 그랬던가, 결국 그 가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의 매력’이라고. 알면 알수록 이 사람, 매력이 한이 없다. 칭찬이 쏟아졌던 경연 무대에 대해서는 원곡자에게 공을 돌리며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도 자신의 편곡 실력을 새삼 알게 됐다고 타당한 자랑도 할 줄 아는 태도. 뒤이어 커버 곡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제 새끼들’이란 표현을 쓰며 자기 음악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고집은 그가 핫 했던 예능의 부풀어진 잠깐 거품으로 지나가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을 줬다. 웃기자고 한 말인 줄 알았던 [싱어게인] 속 멘트들이 창작자로서의 확고한 신념이었다는 데서 그 신뢰는 더욱 견고해지니 앞으로도 호불호, 일희일비에 흔들리지 않고 정확히 이승윤의 길을 가리라. 스스로 물리는 일도 모르는 수포자라 했지만 경험치에 기반하여 결과를 분석하는 지극히 이과스러운 그에게 지금의 데이터를 믿어 의심치 말라고 이과생으로서 보태고 싶은 맘이다. 여기까지면 까탈스러운 예술가로 보일지도 모르겠는데 평소 모습은 또 그냥 딱 장난기 많은 옆집 남동생이다. 자기보다 열한 살이 어린 친구에게 촐랑촐랑 치대고 사람들의 칭찬 앞에서 수줍음을 감추지 못해 웃어버리고 마는 순수한 사람. 방구석에서 혼자 음악을 했다는데 밖에서 저리 까불거리다 방문만 열면 다른 사람이 되는 거였나 의심될 만큼 양끝의 매력을 다 갖췄으니 이 누나가 반하지 않을 방도가 있을 리가.


연예인이 좋아진 게 당연히 처음은 아니다. 지조도 있는 편이어서 두루두루 적당히 좋아하기보다 몇 명에게 진득한 팬심을 오래 지속하는 쪽이다. 그러나 ‘연예인을 향한 팬심’, 이 선은 잘 넘지 않았다. 배우라면 작품, 캐릭터로 시작해 그의 연기를 아끼는 마음, 가수라면 그의 노래, 무대에 대한 사랑이다. 그래서 혹 사생활이 시끌시끌해도 별로 영향을 안 받았다. (물론 범죄로 연결되는 부분은 얘기가 다르다. 다행인지 좋아한 연예인 중 그런 경우가 아직까지는 없었다.) 그런데, 이승윤의 경우 조짐이 좀 달라 걱정이 되기도 한다. 싱어송라이터 이승윤을 넘어 ‘사람 이승윤’을 놓지 못할 것 같다. 이왕 그렇다면 부디 그가 쭉 ‘이승윤스럽길’ 바란다. 배신하지 않는다면 안심하고 충성할 준비는 벌써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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