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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Zhu Dec 11. 2020

그는 손톱을 남겼다.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

그는 손톱을 남겼다. 날카로운 인상이나 성질, 또는 그로 인하여 할퀸 상처를 비유하는 게 아니다. 진짜 손톱이다. 스릴러 영화 얘기는 아니지만 못지않게 놀라서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TF 조직 하나가 해체되면서 대대적인 사무실 재배치가 이뤄졌다. 이사 나가는 쪽과 들어오는 쪽이 서로 부딪치지 않도록 부서별 이동 시간이 정해졌고 우리 부서처럼 건물을 옮기는 경우, 전날 짐을 빼서 이름과 장소를 표기해 두고 퇴근하면 다음날 새 사무실에 도착해 있게 되어 있었다. 새 사무실로 출근하는 날, 바로 옆 건물이기도 하고 사무실이 다 똑같은 줄은 알지만 조금은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 들어 평소와 다르게 약간 설렜다. 책상은 먼지가 뽀얗고 서랍 속엔 볼펜 두 자루, 메모지 몇 장이 뒹굴고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급하게 이사를 하느라 미처 뒷정리를 못했다면 내가 깨끗이 치우면 될 것이었다. 새 자리에서의 나의 시작을 그깟 것으로 망치진 않을 터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깟 것이 아니었다. 모니터 받침대 아래 사무용 부품함에서 내가 발견한 건 ‘손톱’이었다. 사무실에서 손톱 깎는 행위에 대해 거품 문 글들을 사내 게시판에서 가끔 보긴 했지만 그 잔재를 바로 버리지 않고 모아두는 건 전혀 상상도 못 했다.


‘새 자리, 다시 시작’이 다 뭐람, 여기 앉았던 사람 대체 어떻게 생긴 놈이야!




더러운 기분은 꽤 오래갔다. 얼굴도 모르는 그는 참으로 강렬한 흔적을 남긴 셈이었다. 그만이 아닐 것이다. 그처럼 강렬하지는 않을지라도 지나간 자리에는 어떤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나 역시 이전 사무실 자리에 꽂은 메모는 물론 압정까지 치우고 왔음에도 서랍에 붙은 이름표를 보고 내가 앉았던 줄을 알게 되었다고 연락을 받았으니 흔적을 남긴 셈이었다. 사는 집을 옮길 때는 더할 것이다. 이사를 가면서 가구들을 그대로 두기도 하고, 더는 필요하지 않아 무심히 또는 깜빡하여 두고 오는 살림들이 있을 수도 있다. 혹 티끌 하나 남기지 않았다 해도 새로운 주인이 어느 날 문득 발견할지도 모를 일이다. 싱크대 얼룩에서 전 주인의 식습관을 유추하고 방문에 패인 홈을 노려보면서 격렬한 부부 싸움을 상상하는 건 아닐까. 우리는 모두 어쩔 수 없이 머물던 곳에 흔적을 남기고야 만다.


흔적이 남는 곳은 공간만이 아니다. 혼족이 많아지고 코로나 19로 거리두기가 더욱 강조되는 시대이긴 하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어떤 모양이든 관계를 맺고 산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도 헤어지면 그만이지 않다. 한 곳에서 직장 생활을 10년 넘게 하고 있다 보니 퇴사하는 동료들을 참 많이도 봤다. 가끔 남은 이들의 대화 속에 그들이 다시 소환될 때가 있는데 참 제 각각이다. 칭찬으로 시작해 칭찬으로 끝나는, 보통 후배들에게 이런 선배도 있었다며 본보기로 거론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고통의 시간을 회고할 때 그 주인공으로 등장해 혀를 내두르게 하기도 한다. 자신들이 어떤 인상을 남겼는지 짐작은 할지 모르겠으나 속했던 사회에 어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은 없는 게 분명하다.


얼마간이 아니라 평생 속했던 곳이라면 어떨까. 가정은 태어나 죽기까지 가장 가깝게 묶인 사회다. 아마도 가족이 떠난 자리에 남은 흔적은 그 농도가 훨씬 짙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슬픔, 그리움, 등을 불러오는 매개체일 뿐인 것도 있지만 남은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 태도를 바꾸는 어떤 영향력일 수도 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날 때 자녀에게 남기는 것 중 물질적 유산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부분일지 모른다. 나는 아이가 없지만 지인들의 집을 보면 아이들은 인위적으로 가르치기보다 부모들의 모습을 따라 하는 데서 더 많이 배우는 듯하다. 그렇다면 부모들이 남기는 일상의 자취들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자국을 남길 지 짐작할 수 있다. 실제 어린 시절 부모들의 평소 말과 행동을 자연스럽게 닮은 점들이 성공으로 이어졌다는 유명 인사들의 인터뷰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지 않은가.




손톱에 놀란 마음이 꼬리를 물어 조금 멀리 갔다. 학창 시절 친구들, 학교라기도 직장이라고 하기도 애매했던 대학원 연구실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 문득 궁금해졌고, 현재 회사도 언젠가는 떠날 텐데 그때 발견될 흔적을 지금 내가 새기고 있다 생각하니 갑자기 두려워진 탓이다. 후배들의 롤 모델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소위 성공 가도에서는 많이 빗겨 조용히 갓길을 가고 있는 쪽이므로. 그렇지만 주목받는 일은 아니어도 누군가는 맡아서 해야 하는 일을 구멍 안 나게 하고 있다고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때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책임감 따위 던져 버리고 싶다는 현타가 오기도 한다. 그런데 잘해야 겨우 본전이라지만 제대로 못해서 일을 그르치거나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고 싶다. 도드라지지 않는 건 괜찮지만 발견될 때마다 괴롭게 하는 흔적은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성실이 쌓여 신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부끄럽지 않은 흔적이기 위해, 그래서 나는 오늘도 성실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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