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Zhu Aug 30. 2020

내공이 하루 쌓였습니다.

언젠가 기립성 저혈압 (orthostatic hypotension : 기립 시 혈압조절기구에 장애가 있기 때문에 혈압이 낮아지고 어지럽고 때로는 실신하게 되는 상태) 증상이 잦아서 한의원을 찾은 적이 있다. 홍채를 검사하고 맥을 짚더니 하는 말이 수압 낮은 고층아파트의 꼭대기층 수준이란다. 어떻게든 머리까지 피를 보내보겠다고 심장은 매우 빠르게 펌프질을 하고 있지만 찔끔찔끔이라는 말이었다. 침을 맞고 뜸도 뜨고 약까지 지어 병원을 나서려는데 선생님이 문득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어릴 때 학교에서 발표 같은 거 잘했어요?”

“네. 빼거나 하지 않았어요.”

“지금은요?”

“음...... 지금은 잘 못하는 거 같네요. 많이 떨기도 하고”

“왜요?”

“음......”


만병의 근원이라는 ‘스트레스’, 선생님 질문의 의미는 ‘본래 그렇지 않았다면서 왜 그렇게 긴장도가 높냐’는 것이었다.


주눅이 들어서다. 회사에 와서 칭찬을 받은 기억이 거의 없다. 반면 혼이 나기는 일상이다. 나만의 경우라기보다 업의 성질이 그렇다. 제조 Fab. 기술 엔지니어의 숙명이랄까. 제조업의 성과는 결국 팔 수 있는 물건을 많이 만드는 것, 즉 생산과 품질이다. 무수히 쪼개진 각 부서들의 역할은 제 각각이지만 최종 이 두 가지 성과를 내는 과정 안에 모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중 기술팀은 설비와 공정을 담당한다. 즉 생산과 품질에 가장 직접적인 부서가 된다. 그렇다면 언뜻 회사의 성과가 곧 나의 성취로 이어져 매일매일이 뿌듯함 100% 일 듯도 한데 실제 조직이 돌아가는 모양새는 그렇지가 않다. 생산량이든 수율이든 늘 모자라다는 피드백이다. 기술팀은 늘 ‘더’ 해야 한다는 숙제 속에서 산다. 몇 개월에서 일 년 이상 진행되는 큰 프로젝트에서 목표를 세우고 결과를 따지는 시작과 끝에서만 일어나는 얘기가 아니다. 설비 한 대가 에러가 발생하여 몇 시간 가동을 못했다든가 하면 그것에 대한 사죄를 하는 일이 하루에도 몇 건이다. 죄인이 숙명.




졸업 후 첫 회사였지만 박사과정은 경력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나는 입사 교육을 경력 입사자들과 함께 받았다. 회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별 토론 중 상사에게 질책을 받았을 경우가 주제로 나왔었다.


“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요.”


이미 십 년 이상 사회생활 경험이 있는 과장님이었다. ‘우선 잘못을 시인한 후 지적된 부분을 수정해서 다시 보고를 한다.’는 모범 답안이 오가던 중 나온 이 발언에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경력자들은 ‘현실적인 답이 이제야 제대로 나왔네’라는 표정을 지었고 반면 초긍정으로 회사를 재패하리라 열정이 넘쳤던 나를 포함한 초짜 신입들은 당연히 의아해했다.


내가 당시 경력자들의 표정을 이해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상사의 훈계가 부하직원의 성장에 정말 훌륭한 거름이 되기도 하지만 개인의 성장보다는 당장의 조직의 성과만 고려하기에 나오는 질책들도 있고 더욱 지적을 위한 지적도 많다. 상사의 훈계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태도를 옳다고 말할 수 없지만 모두 수용하다간 마음이 다치기 일수다.


그러나 사실 나는 머리로 알면서도 쿨하게 잊기를 잘 못하는 쪽이다. 유리 멘탈 중에서도 초박막유리라고 할까. 그러니 업이 그런 줄을 알면서도 늘 바짝 어깨를 곧추 세우고 스트레스를 온 몸과 마음으로 받은 게 아니겠나.




며칠 전 아침이다. 눈과 귀를 어디에 둬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이 정신이 혼미했다. 아침 미팅에서 상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훈계였다. 업무에서 문제가 된 부분들을 조목조목 집는 것으로 시작해서 급기야 “정신들 차리세요!”로 끝냈다. 나만 콕 집어 지적한 게 아니었음에도 듣는 내내 기가 빨렸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에 앉기 무섭게 전화기는 울려댔고 메신저 알림은 셀 수없이 깜박이고 있었다. 마치 사방에서 웅성웅성 소리들이 나를 향해 공격해 오는 느낌이었다. 잠깐도 더 못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마음의 소리와 다르게 몸은 책상에서 떠나지 않았다. 수화기를 머리와 어깨 사이 끼었고 키보드를 치는 손은 빨라졌다. 점심시간이 되어 사무실이 소등되고 나서야 숨을 돌렸다. 아침에 테이크 아웃한 커피는 그대로 남아 식어 있었지만 급한 건들은 우선 해결되었다. 긴급한 것들을 먼저 처리하느라 오전을 보낸 탓에 차분히 집중해서 할 일들은 여전히 쌓여 있었고 그래서 오후도 결코 여유롭지 않았다. 시계 시침이 8시가 넘어갈 쯤에야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다.


미팅 직후에는 분명히 쩍쩍 소리는 안 났어도 마음에 금 한두 가닥은 이미 시작되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금 간 정신이라도 붙잡고 앉아 일에 집중하다 보니 그날의 업무는 웬만큼 마무리가 됐고, 무엇보다 바쁘게 일하는 중에는 아침에 혼난 일을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정신에도 책상에 앉아 있게 하는 힘은 월급이고 마음의 스크래치를 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쁜 탓이라는 게 슬픈 사실이지만 여하튼 사라지고 싶었던 하루를 온전히 견뎌냈다.


조금도 더 못 있겠다 싶은 날은 사실 손에 꼽는 게 의미 없을 만큼 자주 있다. 나는 여전히 유리 멘탈이어서 그럴 때마다 대미지를 입는다. 그러나 나가려는 넋을 억지로라도 붙잡고 앉아 일에 집중하려고 한다. 그런 날들이 쌓여 나는 좀 더 단단해질 것이다.


아침 미팅에서 함께 싫은 소리를 들었던 친한 부장님에게서 메신저가 왔다.


“박수석, 오늘 잘 버텼네요. 시간 늦었는데 얼른 퇴근해요.”

“네, 내공 하루 또 쌓았습니다. 부장님도 수고하셨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삑사리를 내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