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고.
책을 덮었을 때, 아마 읽는 중에도 방송인 김소영이 쓴 추천사의 첫 문장이 자주 생각났다.
태어날 때부터 나의 존재가 ‘잘못’이나 ‘손해’는 아닌지 되물어야 하는 입장에 나는 한 번이라도 서 본 일이 있던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기에 좀 모자란가?라는 생각은 가끔 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없어져야 할, 아니 처음부터 없었어야 할, 있음으로 잘못된 대상으로 실격 처리한 적은 없다. 앞으로도 쭉 없을까? 혹시 모를 사고로 인한 후천성 장애를 염두하고 살라는 경고는 아니다(포함될 수는 있겠다). 존재에 대한 실격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존재를 부정당한 이들이 있다면 그 사유는 타당한가? 사유를 따질 게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존재에 대한 실격은 없어야 한다. 그게 맞다.
몰랐던 건 아닐 터다. 카페나 공원, 또는 지하철에서 장애인을 봤을 때 딱히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내 갈 길을 간다면 비교적 편견 없는 사람이 아닌가? 솔직히 의문을 품지 않았기에 보통 그리 했다. 그런데 김원영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은 묻는다. 과연 당신의 태도는 괜찮은가? 그리고 말한다. ‘개인의 개별적 인격성을 인정받지 못할 때 사회적 존재로서의 존엄성은 훼손된다.’고. 장애를 그저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 그래서 자신의 선의를 표현할 수단으로 삼거나, 또는 반대로 자신과는 상관없이 (장애를 가진 이가 스스로) 극복해야 할 무엇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은 존재의 고유성을 철저히 상실시키는 것으로 존엄성을 훼손한다.
골형성부전증으로 휠체어를 탄다는 저자 소개를 봤을 때 동의를 감정에 호소할까 우려가 있었는데 매 장 논리가 정연하다. 논리적인 글은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데 재미도 있다. ‘재미’라는 단어가 어울리는지 물음표를 그리지만 굉장히 경쾌하게 읽혔다. 몇몇 허구를 포함해 저자의 경험, 국내외 사례들, 또 주석이 적절해서 이해가 쉬웠고 저자가 원체 위트가 있다. (휴가인 덕이었지만 끊지 않고 단번에 읽었다.) 뭣보다 서울대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가 된 장애인이 쓴 책이면 지레 예상되는 ‘숭고한 인간 승리’로 저자를 바라보게 되지 않고, ‘이러이러한 경험, 저러저러한 사회적 관계를 통한 반응으로 어떤 ‘생각’을 세우고 확장하여 책을 쓰기’를 자신의 인생 책 한 페이지에 두기로 한 고유의 사람으로 보게 한 점이 반전이었다. ‘1980년대 초 저자의 출생을 ‘손해’라고 느꼈을지 모를 저자의 어머니와 저자의 만남을 2016년에는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라고 하기까지 그 삼십몇 년 켜켜이 쌓인 ‘김원영 고유의 초상화’는 얼마나 찬란할까. 이 책도 저자의 ‘초상화’를 ‘화가’들 앞에 맡길 매개 중 하나로 본 이유로 기꺼이 추천하고 싶다.(개취를 이유로 책 추천은 본래 거의 안 하는 편이다.)
사족을 하나 붙이면 ‘아름다울 기회의 평등’을 위한 방법이 제시된 중 ‘TV 프로그램에서 구체적이고 섬세한 감정과 표정을 드러내는 장애인 캐릭터를 만날 기회를 제공하기(그 캐릭터는 조인성보다는 정말로 장애가 있는 사람이 연기해야 할 것이다)’가 있었다. 2016년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조인성은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서연하 역을 맡았다. 책이 출판된 게 2018년이니 저자가 이 드라마를 보고 많은 배우 중 굳이 조인성을 언급한 건지는 밝히지 않았고 드라마 역시 서연하의 장애에 포커싱 된 작품은 아니다. 다만 같은 작가는 2022년 봄 실제 장애인을 자신의 작품에 출연시킨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영옥과 정준 그리고 영희> 에피소드는 영희 역의 다운증후군 정은혜 씨가 더 화제가 됐었다. 책이 쓰인 때보다 조금은 더 이 사회가 나아졌구나 생각하다, 그 화제 속에서 대중이 정은혜 씨를 기호화한 적은 혹 없었을까 염려도 됐다. 전자의 비중이 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