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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Zhu Mar 23. 2022

이승윤 덕질 1년, 결정적 순간들

[싱어게인]으로 대중 앞에 선 싱어송라이터 ‘이승윤’에게 처음 팬심을 고백한 지 일 년이 넘었다. 당시의 예감대로 그 일 년여 ‘이승윤 덕후’로서 충성한 삶을 살았다. 덕질을 권한다는 에세이가 출판되고 지상파 TV에서 어덕행덕을 외치는 토크 쇼가 방송되는, 바야흐로 덕질의 시대에 덕후 레벨 테스트가 있다면 합격은커녕 원서도 내밀지 못할 것이나 적어도 내 인생에서 전에 없던 열렬함으로 한 사람에게 집중한 해였다. 부르는 노래마다 명곡이었고 뱉은 말이 죄다 어록이었던 것은 물론, 그가 웃고 울던 모든 시간에 치였지만, 그중에서도 결정적이었던 다섯 순간을 꼽는다. 지극히 사적인 견해임을 미리 밝힌다.


2021.02.17. 중앙일보 인터뷰

[싱어게인] 출연 계기를 물었고 그는 ‘실은 2020년 12월 31일까지만 음악을 하고 그만두려 했다’고 했다. 다만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해 봤음에도 안 됐다는 말이 필요해서 오디션에도 나갔다고. ‘왜 그만 두려 했는지?’ 이어진 질문에 답이 이랬다. ‘음악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과 음악이 밀접해서 살아가는 환경이 아닌 취미나 후순위로 두는 삶은 너무 힘들겠다고, 그렇다면 아예 하지 말자고.’ 음악이 직업이어야만 했다는 그의 말에서 ‘업(業)’을 생각했다. 우리는 매일 상당한 시간을 일을 하는 데 쓰고 직업은 그 사람을 설명하는 첫 번째 항목이 되곤 한다. 그래서 업은 가볍지 않다. 사실 지금 직장을 좋아서 다니지 않는다. 싫지만 잘하는 일인가 하면 것도 고만고만하다. 정말로 돈 벌기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 그만두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그저 벌이일 뿐이라도 내가 택한 직업이면 진심이어야 한다. 사무실에서 열정을 바라지 않지만 그저 시간을 때우는 모양까지 무력해지는 때가 오면 그의 말을 떠올렸다. 누구는 아주 버릴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붙잡고 있는 것인데 지금 나는 ‘내 일’에 책임을 다하고 있나. 그의 인터뷰 중에는 “이승윤은 뭘 믿나요?”, “전 초콜릿을 믿습니다.”같은 쌔끈한 답변이 곧잘 있었지만 내게 최초의 어록이자 가장 잦은 되새김이기에 꼽는다.


2021.05.23. 2021 SOMEDAY THEATRE CANTABILE 공연

그가 매체에 등장한 이후 첫 오프라인 공연이었다. 당연히 엄청 고대하며 기다렸는데 정작 바로 전날 기분이 확 상했다. [싱어게인] Top 3가 마치 한 팀인 것처럼 다른 두 명의 가수 각각에게 할당된 만큼만 공연하도록 된 시간표를 본 터였다. 특정 프로그램으로 유명해진 스타가 해당 프로그램 꼬리표를 떼기 어려운 줄 알지만 이승윤, 정홍일, 이무진, 이 세 사람을 개개의 아티스트로 대하지 않고 묶어 취급하는 데 화가 났다. 실제 이날의 공연은 ‘[싱어게인] Top 3’에 포커싱 된 구성이어서 여전히 조금 앙금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결정적 순간인 이유는 그야말로 ‘모먼트’, 어느 순간 때문이다. [싱어게인]에서 불렀던 노래 세 곡 후 마지막으로 그의 곡 <달이 참 예쁘다고>를 부를 때였다. 무대 앞 끝, 관객석 가장 가까이 나와 양반다리로 앉아 부르고 있었는데 고개를 숙인 채 감정이 복받치는지 눈물을 훔치느라 노래를 놓쳤다. 안타까워하는 탄식이 여기저기 새어 나오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팬들이 노래를 이어 불렀고 그는 겨우 눈물을 삼키며 마지막 가사를 읊었다. “달이 참 예~쁘~다.고......” 자신이 쓴 노랫말을 세종문화회관이라는 큰 공연장에서 스스로 외워 불러주는 팬들을 처음 대면했다. 모두는 아닐지라도 어느 때 어느 누구에게 닿기를 바라며 견뎌온 10년 무명의 시간이 필름처럼 지나가지 않았을까.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야 없겠지만 수많은 감정을 담은 그의 눈을 보며 나도 조금 울었다.


2021.09.03. 2021 Soundberry Theater 공연

“저 언제까지 <Honey> 불러야 해요?”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가 한 말이다. 배가 아파서 집요하리만치 커버는 하지 않았다는 이가 커버 곡 경연에서 우승을 했다. 이제 더는 안 부르겠다고 다짐했다는데 이어진 스케줄이 [유명가수전]이어서 또 줄기차게 커버 곡을 불렀다. 오디션 출신이 지켜야 하는 약속, 또는 치러야 하는 유명세일 터이고 팬 입장에서 각양각색의 곡들이 그를 통해 새롭게 들리는 호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저 말은 어쩔 수 없이 너무 안타까웠다. 스스로를 가수가 아닌 ‘창작자’로 지칭하는 경우가 훨씬 자주인 그였기에 더욱 그랬다. 그래서 이날의 공연이 특별하다. <교재를 펼쳐봐>로 시작해 마지막 앵콜 <기도보다 아프게>까지 열두 곡 셋리스트를 모두 그의 곡으로 채웠다. 그 스스로 “비로소 첫 공연을 하는 느낌이 듭니다.”라고 했고 팬들은 비로소 [싱어게인] 우승자가 아닌 ‘이승윤의 공연’을 본 셈이었다. 곡 이야기를 할 때, 밴드 멤버들을 소개할 때, 잘 부르지 못하는 곡이라며 밑밥을 깔고서 결국 삑사리를 한두 번 내고는 엉망진창이라며 웃어젖힐 때도, 자기 무대를 온전히 즐기는 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굳이 진부하자면 사랑해’라는 그에게 팬들은 핸드폰 불빛 가득으로 답했더랬다.


2021.11.24 정규앨범 [폐허가 된다 해도] 발매

발매 사나흘쯤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이었다. 4번 트랙 <사형선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앞이 뿌예졌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힌 탓이다. 정확히 어디라고 집을 수 없겠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살아갈 거야’ 근방이었던 것 같다. ‘미련하게도’로 고쳤던 부분인데 녹음할 때 처음 가사대로 부르고 말았다고 했었다. 두 가사가 함께 떠올랐고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인데 어느 쪽이든 참 아팠다. 운전 중이었으므로 곧바로 눈을 여러 번 깜박여 시야를 확보하면서 생각했다. ‘이승윤은 사고다’. 솔직히 막귀라 뮤지션의 음악적 성취도를 이렇다 저렇다 평할 줄 모른다.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좋다’고 느꼈지만 한 곡을 빼고 이미 공개된 곡들이었으므로 사운드가 좀 더 풍성하다는 점 외에 엄청 감탄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기하게 들을수록 때마다 다른 가사에 ‘사고’를 당했다. 그리고 더 놀라웠던 건 개개의 가사들이 귀에 박히는 것과 별개로 ‘빈정거리는 희망’이라고 했던 앨범 전체의 서사가 너무 완벽히 읽혔다. 그 서사의 중심이었던 5번 트랙 <폐허가 된다 해도>는 ‘좋다’는 의미의 형용사를 모조리 갖다 붙여도 한없이 조악하게 느껴졌다. 생각해왔던 것보다 월등히 큰 그의 세계가 담긴 명반이 세상에 나왔다.


2022.03.19,20 이승윤 콘서트 ‘Docking’

내 가수의 얼굴을 보겠다면 단 한 줄이라도 무대 가까운 자리가 아쉬운 법인데 <시적 허용>의 조명 쇼가 한눈에 들어온 순간 ‘상층 중앙 스탠드석, 이 자리가 명당이구나’ 생각했다. 정녕 황홀하도록 아름다웠다. 여섯 번째 곡이었으니 비교적 앞쪽이었는데 그때부터는 아무래도 무대 전체를 더 보게 됐고 소리, 영상, 조명, 등 모든 부분에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느껴졌다. ‘이름 석자를 내걸고 단독 공연이라는 것을 하는 날이 오고야 말았네요 아마 2005~6년 언젠가부터 막연히 상상하던 날입니다’ 공연장 자리마다 놓여 있었던 이승윤 손편지의 첫 구절이다. 온라인, 오프라인 가릴 거 없이 그의 무대를 볼 때마다 간절히 ‘단독 공연’을 바랐고 적지 않은 참전 이력 중 가장 치열한 피켓팅을 치렀으며 날짜가 임박해서는 마냥 설레기도 모자라건만 코로나 때문에 매일이 살얼음판이었다. 그러나, 그래 봤자 나는 일 년이었다. 팬과 아티스트의 시계를 나란히 둘 것은 아니나 그에게 이 공연의 의미는 감히 가늠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쏟은 정성이 넘치게 갚아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의 목소리와 표정이, 손짓과 발놀림이 ‘그 자신에게도 부족하지 않은 기쁨’으로 노래하고 있다고 믿게 해서 안도했다. 진심으로 기쁘게 부르는 노래가 듣는 이의 마음을 채우고도 남음은 당연했으니 진정 노래 안에서 ‘도킹’이 이뤄졌다. 이승윤은 ‘서로가 서로를 잊으면 사라져 버릴 순간’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멘트를 날렸지만 단연코 ‘잊기’가 그리 빠르지는 않을 테다. 혹 다음 도킹을 곧 바로 마련해 준다면 모를까, 아무렴.


자칫 주접이 될까 다섯으로 한정한다고 애를 먹었다. 예상치 않게 ‘쿵’ 한 게 얼마나 자주였겠는가. 그렇게 사고를 당할 때마다 생각했다. ‘기꺼이 들이받겠다’고. 그래서 앞의 ‘순간’들을 갱신할 다음 ‘순간’이 또 너무 기대된다. 어디서든 범상치 않은 말솜씨를 보이는 작사가 김이나가 덕질과 관련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취향이 생기고 그에 맞는 아티스트를 찾았는데 앞뒤로 파보아도 한결같이 좋을 때 저는 그건 덕질 인생에 있어서 로또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난 로또를 맞은 게 아닐까. 이승윤은 로또에 당첨되면 이 바닥을 뜬다고 했던가? 난 로또를 맞았지만 그는 바짓가랑이 붙잡고 말려야겠다.

“오빠~ (멋있으면 다 오빠!) 로또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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