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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Zhu Nov 16. 2022

너는 노래들을
나는 춤 외엔 챙길 거 없어

2022 뮤직 페스티벌의 기억

작년 가을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2021(GMF 2021)이 취소됐다. 오랜만의 야외 뮤직 페스티벌이었고 애정하는 싱어송라이터 이승윤이 출연 예정이었다. 그런데 취소라니. 기가 막혔고 마음이 상했다. 코로나라는 응당 납득해야만 하는 이유였지만 개최 확정에서 취소까지 그 과정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아 화도 났다. 그렇게 황당, 실망, 분노를 거쳐 결국 남은 감정은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이었다.


그리고 올해, 그 아쉬움을 달래듯 원 없이 달렸다. 가수가 무대에서 노래하는 게 다 똑같지 싶지만 야외 페스티벌은 실내 공연과는 확연히 다른 무언가가 있다. 그 몇몇의 인상을 불러오려 한다. 후기라고 하기엔 뭣한, 그저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거기’에 떠오르는 장면들.


뷰티플 민트 라이프

GMF의 주최사인 민트 페이퍼가 봄에 개최하는 페스티벌이다. 데인 게 있어서 마냥 기대만 못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 전 이승윤 SNS에 ‘첫’이라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그렇다. 그의 첫 페스티벌이다. 반년이나 미뤄진 게 속상하지만 의리를 지키며 그에게 ‘처음’의 무대를 마련해 준 게 고마웠다. 그리고 그의 처음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코로나로 인한 제약이 몇 있었지만 가수와 관객 간 호흡에 걸림이 되지 않았다. 화창함을 넘어 눈이 부시기까지 했던 파란 하늘에 ‘그댈 위한 장미야~’<들려주고 싶었던 – 이승윤>가 청량하게 울렸다.


청춘 페스티벌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각종 페스티벌 소식이 우후죽순 쏟아졌다. 모조리 쫓아다닐 수는 없다. 아, 정정하자, 재력과 체력, 여력이 충분하면 못할 것도 없지. 다만 여건이 허락돼도 내키지 않을 때가 있다. 마땅한 근거를 댈 수 없는데 청춘 페스티벌이 그랬다. 청춘이란 단어가 너무 오글거렸나? 갈지 말지 고민조차 거의 없었는데 그럼에도 내 가수의 라이브는 듣고 싶은 게 팬의 마음이다. 멀지 않은 곳이라 산책 삼아 가볼까 한다고 하니 E가 합류했다. 우리는 펜스 밖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안에서보다는 당연히 모자라겠지만 노랫소리는 곧잘 들렸다. 시선을 뺏기지 않으면 다른 걸 할 수 있다. E로 말하자면 친구의 친구로 본래 알기는 했다가 이승윤이라는 공통분모로 가까워진 사이인데 이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던 게 기억에 남는다. 달빛 아래 ‘달이 참 예쁘다고~’<달이 참 예쁘다고 – 이승윤>가 감싸 주었던 다정한 기억.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이승윤은 ‘니가 거기 왜 나와? 의 니’를 담당한다고 했지? 나는 ‘니가 거기 왜 가? 의 니’였을지도. 라인업이 발표됐을 땐 멋모르고 반겼지만 티켓을 끊어 놓고서도 직전까지 머뭇거렸다. 먼저 인천이라는 물리적 거리가 부담이었는데 결국 초행길 운전대를 잡는 강수를, 지방에서 올라오는 J는 여러 루트를 강구하다 마침내 비행기를 탔다. 까짓것 ‘날아가 날아가~’<날아가자 – 이승윤>. 사실 거리보다는, 그러니까 무려 락페였다. 역시나 기운이 달랐다. 곳곳에 솟은 깃발들이 화려했고 락 스피릿 충만한 사람들의 움직임은 예사롭지 않았다. 헤드 라이너 자우림의 공연은 아티스트도 관객도 그 기운이 절정이었는데, 거칠게 슬램을 하며 밀려오는 무리들에 잠깐 움찔하기도 했지만 과연 같이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힘차게 펄럭이던 ‘나락도 락이다’라는 문구가 너무도 와닿았던 날.


썸데이 페스티벌

순도 이백 퍼센트의 완전한 설렘이었다. 이미 락페까지 입문한 몸, 주저할 게 없는 페스티벌이었고 보름여 전 코로나도 영접했던지라 정말 거리낄 게 없었다. 그랬는데......, 태풍이 오셨다, ‘매미’, ‘루사’보다도 강하다던 ‘힌남노’. 차라리 주최 측에서 취소를 하면 미련이 없겠지만 일단 강행한다고 하니 불안하지만 나도 강행이다. 앞 순서 땐 소강상태였다. 이승윤 공연을 조금이라도 가까이 보고 싶어 두 타임 전인 카더가든 무대부터 스탠딩존으로 갔는데 중반쯤 비가 시작되었다. 이 때는 비교적 무난했다. 하지만 다음 윤하 공연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말 그대로 폭우, 빗방울이 얼마나 굵던지 어깨를 때릴 때마다 아플 정도였다. 그러나 옴짝달싹할 수 없는 스탠딩존 깊숙한 곳에서 피할 궁리, 어쩌나 싶은 걱정은 어차피 소용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어리석다. 요구되는 마음은 단연 아랑곳없이 즐기겠다는 다짐뿐이랄까? 누구의 기도도, 누구의 화도 개의치 않고 비는 계속 거세게 쏟아졌지만 그럴수록 도리어 질 수 없다는 듯 더 열광적으로 뛰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마...... ‘우주라는 구와 원을 다 들이켜 버렸을 걸’ <우주 like 섬띵 투 드링크 – 이승윤>.


리슨 어게인 페스티벌

이날 잠실 일대가 들썩였다고 한다. 종합운동장에 아이유 콘서트가 있었고 페스티벌이 열린 올림픽공원 내에도 다른 공연이 여럿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공연에만 집중하면 될 일인데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집에 돌아갈 방법은 마련해 두고 즐기라는 말이 농담으로 안 들리길, 돌아가기는커녕 함께 하기로 한 J가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 아예 오지를 못한 것이다. 갑자기 동행을 잃은 상황, 물론 혼자서 보려면 볼 테지만 십만 원이 넘는 표를 그냥 버리기는 아까웠다. 그래서 급구한 그날의 동행, 조카 1호였다. 조카와는 꽤 친한 편이지만 단 둘이 시간을 보낸 적은 거의 없었다. 이게 참 묘했다. 친구와 보호자 사이를 줄타기하는 느낌이랄까. 대학생을 보호할 게 뭐 있겠냐마는 음악 페스티벌이 처음인 조카가 낯설지 않았으면 했고 이왕이면 재미나게 즐기기를 바랐다. 다행히 제법 성공한 것 같다. 무대를 보면서 떠든 수다가 적지 않다. 아티스트에 대해, 노래에 대해, 각자의 취향에 대해. 이모와 조카는 그날 ‘노래 안에서 만나’ <도킹 – 이승윤> 찐친이 되었을까.


그리고 10월. 민트 페이퍼가 ‘한 해를 빛냈던 아티스트에게 축하를 건네고 내년이 기대되는 아티스트를 응원하는 곳이자, 비슷한 것을 아끼고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공감을 나누는 곳’으로서의 의미를 담아 개최한다는 마지막 야외 음악 페스티벌 GMF 2022가 열렸다. 1년 전 어이없게 취소됐던 그 GMF. 그때 지었던 세상 무너진 듯한 표정이 이젠 가물거린다. 그동안 신나게 달려서도 그렇고 GMF 2022가 모토대로 좋은 마무리가 돼서도 그렇다. 이승윤은 같이 무대에 선 밴드들과 함께 뛴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함으로 끝을 고하더니 신곡을 공개하면서 ‘다시 시작’을 알렸다. 최고의 마지막인 셈. 나의 대답은 ‘너는 노래들을 나는 춤 외에 챙길 거 없어~’ <날아가자 - 이승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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