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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동이 Dec 24. 2019

유학 6년,우울함과 독대하는 연구원의 우울 문제 1-1

분노 편: 첫 번째 문제

일본에 체류한 지 6년 차, 폐쇄된 유학생 집단 안에서의 삶과, 집단 밖에서의 외로운 삶 그 둘에 담갔다 뺀 제 인생에 묻은 우울함을 정리하여, 문제와 해설로 나누었습니다. 각 문제와 해설은 약 5분에서 10분 정도의 시간으로 읽을 수 있도록 정리했습니다. 우울함을 정리했다니, 부정적인 것을 이렇게나 모아두었다니, 똥독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위로 혹은 대비책으로서 우리네 삶에 방둑 정도의 역할을 하는 거름이 되기에는 적당하겠지요.

분노 편: 첫번 째 문제


여러분은 지금부터 제 시간으로 들어와, 마이너스 방향에 있는 과거로 갈 겁니다. 원점 O는 이 글을 보는 여러분과 저의 현재일 것이고, 보통의 시간은 플러스 방향만으로 간다고 합시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 어두운 과거를 둘러보며 밝은 미래를 지향하는 겁니다. 


이제, 우리가 출발할 곳은 먼 과거입니다. 과거, 제가 무너지기 시작한 그때의 그곳으로 같이 가는 겁니다. 저도 저의 일기장들을 살펴보고 온 참입니다. 2016년, 그리 멀지 않습니다. 지금 까지 이어져온 고통의 시작점으로서는 먼 과거이지만요.


우리는 우울함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별로 그에 관련한 사건들을 살펴볼 겁니다.

배경 설명과 함께 그 시절의 저를 돌아볼 겁니다. 그렇게 무너져가던 저를 보면, 그 속에 여러분의 힘듬이 들어있을지도 모를 테니, 동봉된 해설집과 함께라면, 어두움 위 밝음을 향할 수 있을 겁니다.


분노 편, 그 첫 번째 문제 출제하겠습니다.


2016년, 선배α와의 마찰, 그 시작


저에게 집을 물려준답시고 계약서를 들이밀던 네 살 많은 선배α의 앞엔 제가 있었습니다. 항상 저와 놀아주며 술을 마시던 그 형을 따라 방 세 개짜리 집에서 동거한 것이 2년 차, 선배α는 이제 졸업을 앞두고 집을 저에게 물려주는 겁니다. 남들처럼 보증금 방값 1개월치를 지불하고 가구를 구입하여 입거 하던 것이 아니고,  오히려 선배α가 지불했던 보증금과 가구를 제게 넘기고 가는 것이니, 퇴거 수리비가 보증금을 넘기더라도 그것이 저의 자취방 보증금이라고 생각하려니 했습니다.


시작은 이렇습니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선배α가 방문을 부순 겁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현명한 선택 뒤에 간단한 수리비 요구만이 남아있을 터, 발생한 것은 돈 문제였고 그래야만 했던 것이 선배α와 저의 감정싸움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주 지겨운 방식으로요. 후회와 분노만으로 연결되는 아둔한 방식. 누구의 탓인지를 논하기엔 우리가 밝은 미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부끄럽습니다. 그렇게, 다시금 서로에 대한 혐오감 그 진흙탕을 일으켜 제 물 잔, 상대의 물 잔을 더럽히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 어떻게 흘러갔는지, 지금토록 자국 남긴 이 홍역 주사 같은 선배와의 다툼, 설명해야 함이 벌써 힘에 부치지만, 애써 담담히, 써보렵니다.


우울, 그 시작이 된 다툼


선배α는 술을 마시곤 장난을 곧잘 했습니다. 다만, 제가 저의 여자 친구와 함께 있던 늦은 시각, 집을 부수겠다 협박하면서 술을 사 오라던 선배α의 술 취한 목소리에 우는 애인을 뒤로하고 억지로 술을 사간 그날의 기억 때문에, 그러고도 종국에 문은 부서졌으니, 저는 도저히 선배α가 부순 문이 곱게 보이지 못했습니다.


저는 퇴거 시에 필요할 수리비는 퇴거 시에 논의하자 라는 말과 함께 졸업 후 떠나간 선배α와의 연락을 차단했습니다. 선배α가 저에게 연락하려고 했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곤 했었어요. 열심히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던 선배α 였습니다만, 그날의 일에 분노했던 제 귀, 제 눈이 모든 것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제가 들을 준비가 되었을 때, 저의 이기주의에 지친 선배α는 마음을 닫았습니다. 그것을 보곤 서투르게 또 잘못을 추궁했던 저에게 선배α의 반박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 강도가 지나쳤습니다. 다른 이의 핸드폰으로 제게 장난전화를 하고, 단체 메시지에 저의 사진을 올린다던지, 저의 주변 사람들과 저를 모욕하는 글을 보냈습니다. 더욱이 개탄스러운 것은 지켜보던 선배들이 그것을 막아주지 않았다는 것과, 선배들은 그것에 관련하여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것에 상처 받은 저는 또 분노했습니다. 


부동산에 수리비를 의뢰해 그것을 그대로 스캔하여 보낸 저에게 이 것은 단가를 조작한 사기라는 의견을 선배α가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선배들이 잠시 동안 믿은 사실이 되고, 저는 여러 연락을 받았습니다. 선배들을 모아 해명을 해야 했어요. 저의 관계를 망가뜨리고, 문을 부순 주체와 해명하는 주체가 일치하지 않는 것에 불합리함을 느꼈습니다. 그 때라도 저는 부동산에서 증명을 한번 더 받은 뒤, 사무적으로 그것을 입증해야 했습니다만, 이 연극 같은 비극이 벌써 끝나면 문제집에 실리는 문제가 못되죠. 쇼의 주연, 정작 중요한 서류처리를 하지 않았던 저에게 주어지는, 따끔하고 없어지지 않을 주사가 남아 있습니다.


이쯤 되면 부모님도 엮여 들기 마련입니다. 다만, 저의 부모님의 도움은 필요 없다는 의욕으로 가득 차 호기롭게 선배α의 부모님께 연락을 하곤, 사기꾼이라는 구박을 들었습니다. 긴 말씀 하지 않으셨지요. 끊긴 통화를 붙잡는 제 손이 눈앞에서 보기 좋게 벌벌 떨리는 꼬락서니를 보는 때에 희미해지는 이성으로 붙잡는 정신의 동아줄이라는 것은, 분노를 잔뜩 머금고 저를 노리는 뱀 한 마리였습니다. 보기 좋게 물렸습니다. 아드님의 편일 테니, 증명이랍시고 보여드린 것 없으니, 당연히 그리 생각하실 겁니다. 막연하게도, 어른들은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저의 생각을 들어줄 것이란 순진한 생각, 그것이 간단히 부서진 위력에, 강력함에, 돈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 이 것들을 마냥 내버려 뒀습니다. 우둔한 감정싸움을 서투르게 마무리짓지도 않고 응어리로 만들어버린 겁니다. 


후에, 저는 선배α의 정신적 고통이 상당했음을 알게 됩니다. 죄책감이 들 정도로요. 그렇게 저는 죄책감과 분노, 모순적인 두 개의 감정이 응어리에 들어차 저를 고통받게 했습니다. 제거하지 못했던 분노는 선배α에게 미안하다는 연락을 하지 못하게 했고요. 나중에는, 퇴거 시에 지불했던 상당한 수리비에 대한 부담감과, 그것을 선배의 빈자리로 들어와 동거 하던 후배와 동기, 그리고 제가 나눠 지불하도록 부탁한 것에 대한 죄책감까지 더해졌습니다.


이번 첫 문제에서는, 진정으로 제 마음속 균열이 발생하던 때, 다른 선배들에게 해명하던 나, 철저히 부서지던 나를 봐야 합니다. 다른 선배들과의 단체 메시지에서 제가 쓴 글을 보여드리겠습니다.



- 글로 쓰면 좌절, 말하면 분노 -


근래에 지속적으로 잠이 오지 않습니다.

여자 친구랑 헤어지고는 메모장에 글로 장황히 적으면 마음이 가벼워져 잠이 잘 왔습니다.

이번에는 쓰면 쓸수록 제가 가관입니다.

쓰면 쓸수록 손이 벌벌 떨리다가 그만둡니다.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는 줄곧 힘든 심정들을 글로 쓰곤 했지만.

그것은 힘든 나를 위로하는 글이었습니다.

나를 위로하고 앞을 바라보는 희망을 가지자 라는 글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쓰는 글은 나를 위로하고 앞을 바라보자라는 내가 쓰던 글의 성향과 상이하여, 앞뒤 좌우 모르고 뻗칩니다.

이것들을 글로 쓰면 좌절이 되고 말로 하면 분노가 됩니다.

이런 글은 쓰기만 하면 온갖 소리가 다 들리는 것만 같고, 그것을 듣느라 내가 무엇이 힘든지 온전히 찾아내기 힘듭니다. 

잘잘못이라는 단어는 통통 튀어 온갖 곳에 관계 지어지고 부딪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날아다닙니다.

사막이 있다면 모래바람일 것이고 내 옆에 물웅덩이 조그마하게 있습니다.

그만하고 싶다고 예전에는 많이 되뇌었습니다.

이런 고민, 고생 그만하고 멋진 게임을 하거나, 즐거운 영화를 보자고요.

어째 지금은 멱살을 잡혀 매달려 있습니다.

숨이 막히기도 하고, 고개를 돌려 모른 척하지 못합니다.

멱살을 잡히면 앉을 수가 없는 것처럼 가만히 편안해지지 못합니다.

목이 졸리고 가슴이 뛰면, 손 들고 벌 받던 어린 시절처럼 그저 이 것이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바닥을 바라보고 딴생각하면 이제 그만 나를 혼내 겠지 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거대한 분노 앞에 겁이 질려, 그만 이 것을 끝내 달라고 빌게 되던 제 모습, 답은 있을까요.

어두움이 제 눈을 가리고, 가슴이 쿵쿵 뛰며 눈만 감으면 부아가 뒤집히던 그때의 저는, 어떻게 분노를 가라앉혔으며, 그것을 지금의 저는 어떻게 생각하여 정리해두었을까요.

16년으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에 도달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음 시간, 제가 풀어본 저만의 답을 정리해볼 겁니다.

추측에 앞서, 힌트 하나 드리겠습니다.

원자 두개가 공유 결합을 하곤 분자가 되는 것은, 둘 만의 적당하고도 가까운 거리를 찾았다는 뜻입니다.




Photo by Ryoji Iwat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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