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1일 작성
아침에 일어나 학교로 향하면 아침 해는 너무 밝았고, 그것이 나를 환영한다는 감상을 줌과 동시에, 내가 어울리지 못한다는 느낌 또한 주었다. 오늘,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난 것이 나에게 적당한 빛을 줬는데, 이제서 내가 어울릴 수 있는 세상의 시간을 알아챈 것 같아 안도감이 들었다.
사는 건 무던해서 매일의 차이점을 찾는 것이 어렵지만, 또한 매일의 도전에 자신감을 갖는 것 또한 어려워서, 부담스러운 나날들이 조금씩 힘들면서 조금씩 괜찮다. 괜찮은 것과 부담스러운 것 모두가 나의 나날들을 조금씩 평범하지 않게 만들어주면서 조금씩 평범하도록 해준다는 것이 고맙지만, 이토록 오랜 시간을 견뎌야 얻어진 다는 것이 고깝다. 조금씩 일찍 알았어도, 그렇게 나에게 여유를 주었으면 조금 더 특별한 감정에도 손을 뻗어볼 수 있었을 텐데 라고.
미래의 막막함이 벅차지만 그것을 손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 두는 것이 정말 보람찼다. 그렇지만 나의 길이 아직은 흙속에서 기다려야 하는 과정 속에 있음이 답답하다. 그저 내가 모자란 것이라고 자책을 하면서 언제 까지고 인내해야 하는 시간이 고깝다. 눈 감고 숨 참으면 그 잠깐 사이에 주어졌던 것들이, 눈 뜨고 지켜보는 내 시야에서 형태조차 보이지 않는 것, 혹은 그것이 내 시야에 들어오고도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다.
때로는 기쁘고, 빈번하게 슬프고 답답한 감정 모두를 물에 흘려보내야 하는 것, 시간을 기다리는 것, 시간을 보내주는 것, 마지막으로 담담해야 하는 것이 막막하다. 주체적으로 하지 않았지만, 행하는 주체가 나라서 이 모든 것이 내 가슴에 박히게 되는 것이라,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니거니와, 내가 잡은 것도 아닌 모든 것들이 내 이름을 담아 내 안에 들어와 그것이 내가 되는 무력함 앞에서 내가 무엇을 하리. 나는 내 발로 걷지만, 나와 외부 그 어딘가 어중간한 지점에서 섞이는 자의로 매일 자기 전, 일어난 후 수면 약을 먹는다.
내가 힘들 때 엎드려 빌어야 할 곳은 거울로 마주한 내 앞이라고 생각한 다만, 가끔 그것이 정말 나인지 궁금해진 얼마 전부터 나는 그만 의지할 곳마저 잃어버렸다. 하지만 오히려, 그럼에 서야 내가 진정 홀로 서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새로이 믿어본다.
살아가는 것이 뭘까, 생각하면 할수록 미궁으로 빠지다가 미궁 속에서 미궁 속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저는 공학부 출신이니까, 그것의 성질에 대해 면밀히 조사해봅니다. 읽고 계신 당신께서는 이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미궁에 천착하면, 달라붙을수록 우울이라는 덩어리가 커지는 것이 얼마나 의아스러운 일인지, 이런 것을 저는 몰랐습니다. 그렇지만서도 관성에 의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천착을 계속해 나아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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